2011. 4.29.쇠날. 흐림

조회 수 1230 추천 수 0 2011.05.11 01:42:32

 

 

어느 분이 해건지기가 무어냐 물었습니다.

이곳에서 하는 아침수행(몸수련 더하기 마음수련)을

모르고 묻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해건지기’는 ‘해맞이’랑은 또 좀 다른 뜻을 지녔습니다.

떠오르는 해를 맞는 게 해맞이라면

해건지기는 주체적으로 아침을 연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이래도 저래도 해는 떠오릅니다만

그런 아침조차 내 의지를 더하여 맞고자 하는 것이 해건지기이지요.

수동적이냐 능동적이냐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산살림’이 있는 오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왔던 날이던가요,

이 산골짝에 웬 큰바다(대해)라는 이름이 붙었는가를 들려주었더랬지요.

이바구 때바구 강때바구,

큰불이 난 뒤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붙인 이름이라고도 했지만

너른 바다 같은 호수가 있었던 적도 있다 전했습니다.

그곳에 해마다 청둥오리 날아들었는데,

어느 해 이른 겨울에 갑자기 큰 추위 오고 호수가 얼자

아침에 발이 얼어붙어 놀라버린 청둥오리들이 일제히 날아올랐습니다.

곧 그 발이 딸린 얼음들이 툭 떨어졌고

그렇게 작은 대해못도 생겼더라지요, 믿거나 말거나.

그 못을 지나 아이들이 산에 들었더랬습니다.

못가에서 아이스팩까지 넣은 스티로폼 상자를 열었습니다.

“와아!”

아이스크림부터 먹고 말이지요.

취나물을 뜯고, 파드득나물을 뜯고, 그리고 고사리를 꺾었습니다.

“어, 저깄다! 처음에는 안보였는데요, 자꾸 보니까 보여요.”

여해가 그랬답니다.

산 하나를 휘휘 젓고 내려왔지요.

꽃 대롱대롱 매달린 귀룽나무 한 가지도 꺾었습니다.

뒤에 처져있던 고운이다운이와 선재와 머위도 뜯었지요.

“우리 집 꽃밭인데... 그래도 교장선생님이니까 주는 거야.”

오랜만에 만난 댓마 할머니 한분이 반가움을 그리 전합니다.

“교장선생님이 애들 본을 보여야지(왜 훔쳐가고 그러는 거야)...”

아주 친하게 가까이 지내는 이웃집 할머니도 한 말씀을 보태시지요.

소박한 이런 마음 나눔들로 얼마나 부자가 되던지요.

당신들의 따스한 그늘에서 여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지내는 동안 그러할 것입니다.

“옥샘!”

고운이다운이가 부릅니다.

“교장샘이라 부르니까 옥샘이라 부르는 거랑 느낌이 되게 달라요.”

음...

 

오후엔 비설거지를 했습니다.

낼 엄청난 비가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올 거라는 예보가 있었지요.

아이들이 있으니 더욱 긴장됩니다.

달골이 비에 취약합니다.

비닐을 가져와 햇발동 앞 흙벽을 덮어 파이고 쓸리는 것을 막고

햇발동과 창고동 앞 풀도 맸지요.

준환샘이 있어 참 든든합니다.

요즘은 그를 기대고 사는 이곳 생활이라니까요.

창고동 지붕에도 오릅니다.

아이들도 따랐지요.

한 눈에 마을이 다 담깁니다.

엎드려 홈통을 막는 지난 가을을 살아낸 낙엽들을 죄 긁어 담았습니다.

같은 시간, 희진샘은 바람도 쐴겸

자전거를 타고 면소재지에서 장을 보고도 왔네요.

 

이른 아침, 소사아저씨와 준환샘이 읍내장을 다녀왔습니다.

병아리 일곱을 데려왔지요.

식구가 늘었고,

아이들은 그들을 키울 것입니다.

물꼬를 떠나 서울로 돌아갈 때 긴 자전거여행을 한다하기

몸보신을 시켜 주리라 생각하는데,

저들이 키운 것들을 막상 잡아먹을 수 있을지는 모를 일입니다.

오랫동안 기침이 잦은 준환샘한테

잠시 짬내 인산선생이 전수한 방식으로 구운 소금으로 가글액을 만들었고,

가끔 앓는다는 눈을 위해

결명자를 하루 우리고 그것을 다시 끓여 진액도 만들었네요.

 

산에 들었을 적 불개미에 물렸습니다.

아이들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어 다행입니다.

밤이 되니 붓기 시작하였지요.

며칠을 갈 겝니다.

그러나 몸이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몸이 스스로 견딜 수 있는 훈련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그리고 번번이 이겨냈지요.

아이들도 짧으나마 그런 시간 될 겝니다, 이 곳의 삶.

 

늦은 밤, 낼 아침을 위해 바게뜨를 굽습니다,

완전채식이지요.

불려놓았던 콩을 갈아 콩물을 내 30분 반죽을 하고 40여분 1차 발효,

다시 공기를 빼고 5분여 2차 발효,

마지막으로 성형한 걸 빵틀에 넣고 40여분 3차 발효,

그리고 20여 분을 구웠습니다.

이런 시간은 사유의 시간이기도 하지요.

생각이 많습니다.

아주 가끔, 옳고 그른 게 어딨냐,

아이들에게 그런 걸 가르치는 건 위험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음...

교육에 중립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육은 자고로 정치적입니다.

어차피 각자가 옳다고 믿거나 옳기를 바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

그게 교육 아닐는지요.

그러므로 교육은 어떤 세계관이 승리하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나쁜 것과 옳은 것이 있다고 보며,

옳은 것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한편 절대선이 어딨고 절대악이 어딨더냐며

그 속에 삶의 균형을 가르쳐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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