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그리고 장마전선이 올라오고 있다.


“...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수십 년 동안이나 부엌에서 가족을 위해 식사 준비를 해온 사람이야. 일반적으로 주부들이란 그렇잖아. 신선한 생선을 신선할 때 가족에게 먹이는 것은 어쩌면 어머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였는지도 몰라. 냉장고에 사둔 생선이 먹지도 않은 채 놓여 있어. 어머니가 그때 당신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자각하셨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명백한 죽음을 앞두고도 어머니에겐 미련이 가득했다는 거고, 그런 의미에서 볼락은 세상에 남은 미련의 하나인 거지.

그래서 나는 어머니에게 ‘냉장고에 넣어둔 볼락은 상하기 전에 먹을 테니까’라고 말한 거야.

그리고 널어둔 이불 시트는 여동생이 걷어서 들여놨다고 말했지. 그것도 신경이 쓰였을 거야. 또 부엌의 수도꼭지는 철물점에 부탁해서 고쳐두겠다고 했지. ...

나는 어머니가 마음에 두고 있을 것 같은 일상의 세세한 일들을 상상하면서 걱정거리를 하나하나 놓고 가시도록 어머니에게 말을 걸었지. 인간은 이 세상에 남긴 미련이 하나씩 없어질 때마다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된다고 생각했거든.”

(후지와라 신야,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가운데서)


이러다 일을 물고 우즈벡으로 떠나겠다.

거기 일은 거기 일대로 다 못하고 마는 건 아닌가, 서둘렀다.

번번이 공항에서의 풍경처럼 이번 길도 마구 집어넣은 여행가방을

공항 한쪽에서 정리하며 비행기를 타고야 말겠구나.

그런데,

바쁜 마음으로 여느 때보다 더 탁탁거리며 자판을 두들기고 있는데 전화가 들어왔다.

우즈벡 가시는 날이라 해서 소식 전하는 게 맞나 하다가...

잘 했어요, 하며 전화를 끊었다.

장순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우리는 어머니 얼굴도 모르면서 벗의 어머니라고 문상을 가지 않던가.

헌데 나는 가까운 이웃이었다.

자주 뵈었다. 뵌 적 없어도 갈 문상이다.

빈소에 적확하지 않은 옷을 입은 채 영안실에 들렀다.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고마웠다.

아프다 하고 병원 가신지 채 며칠도 안 되었다.

문병을 가지 못해 미안타고 통화한 게 엊그제.

편히 가셨다는 누이의 인사였다.

나오며 후지와라 신야 글 한 대목을 생각했다.

사람을 어찌 보내야 하는지, 나는 어떻게 갈 것인지 알려준.


책 말미 저자의 말은 이렇게 끝났다.

‘... 인간의 일생은 무수한 슬픔과 고통으로 채색되면서도, 바로 그런 슬픔과 고통에 의해서만 인간은 구원받고 위로받는다는, 삶에 대한 나의 생각과 신념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것 같다.

슬픔 또한 풍요로움이다. 거기에는 자신의 마음을 희생한, 타인에 대한 배려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결코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꺼지지 않는 성화이기 때문이다.’


22일과 23일이 석 달을 이어온 봄학기 산오름 마지막 주말 일정.

결국 22일을 끝으로 갈무리를 지었다.

내일은 우즈베키스탄행 비행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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