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6.불날. 맑음

조회 수 397 추천 수 0 2020.01.10 11:34:24


 

오늘 날이 참 좋다!”

가을볕이 아까워라시던 울 어머니,

겨울 오늘 볕도 아까우신갑다.

통화하며 감탄사부터 내셨네.

 

날마다 옥상에서 올라 낙엽을 쓰는 학교아저씨.

그게 홈통을 막으면 물이 얼고,

갑자기 녹으며 본관도 가마솥방 건물 사이, 그러니까 안으로

쏟아져 내리는 일이 생기기도.

그러므로 이 계절 낙엽을 부지런히 좀 쓸어주어야 한다,

한 번 올라가기 쉽지 않으니 올라간 길에 한참을.

 

어제부터 배앓이를 하더니 저녁이 오자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다행했다, 사람들을 맞아야 할 저녁이어.

남도 섬을 다녀온 이가 가리비와 석화를 들여 주었다.

이웃 덕조샘도 불렀다. 마침 준한샘도 왔다.

(사이집 앞 돌담을 같이 쌓아오고 있었다.

125일 전까지는 어찌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들 하는데...)

생굴회에 굴전에 가리비탕이 놓였다.

올해는 또 이렇게 수산물을 푸지게 먹네.

산골서 귀한 것들이 어디라고 안 가는 요새 세상이냐만

쉬 또 먹어지지 않는 살림이라.

사람들도 살고 또 산다.

 

165 계자 품앗이 샘들 마감.

그들은 누구인가,

이 겨울 따뜻한 곳들을 밀치고 이 매서운 겨울 멧골로 오는 이들은.

왜 그들은 쉼을 두고, 혹은 일을 밀고, 여기까지 오는가.

그들이 또 나를 살리고,

그들이 필요할 때의 나를 위해 나는 다음을 살아야 하리.

유달리 든든해서 걱정이 사라지는 샘들 구성이라.

자칫 그래서 늘어지고 일이 마지막으로 내몰릴라 경계하기.

 

계자 모임값에 대한 질문들이 있다.

사정이 어려워서 하는 질문일 것이다.

왜냐면 우리 아이들 일에 우리는 대개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니까.

작은 덩어리라면 그도 이곳도 그리 어려울 일이 아니나

비용이 크면 쉽지 않으리, 내는 이도 받는 이도.

그런데, 좀 냉정하고 기계적인 답변을 썼다.

사실은 그날 그날의 마음에 따라

글은 더 정중하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지만

또 다르기도 함을 고백한다.

정해진 매뉴얼이 있는 건 아니다.

오늘 답은 이러하였다;

 

물꼬입니다.

편하지 않은 질문일 수도 있을 것을 메일 주셔서 고맙습니다.

 

1.

자신의 상황은 자신이 가장 잘 알지요.

어려운 형편을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굳이 관련 서류 같은 걸 낼 까닭도 없습니다.

적어도 물꼬가 돈이 없어서 보낼 수 없는 곳은 아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참가비를 형편대로 내주십사 합니다.

(다만, 이왕이면 사정을 알려주신다면

아이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지요.)

 

2.

그런데 물꼬가 참가비를 안 내도 되는 곳이라 인식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예컨대 지나친 비용까지 감당하며 여행이라든지 다른 경험은 하면서

물꼬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같은 거요.

물꼬에서는 아무도 임금을 받지 않고, 모두 자원봉사로 꾸려집니다.

교사 임금이 고스란히 학교 유지비용에 쓰인다 할 수 있겠지요.

후원도 살림의 한 축이구요.

그래서 내실 수 있는 만큼 힘껏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한 예로 어느 어머님은 아주 어려운 한부모가정이었는데,

달마다 2만 원씩 수년을 적금 붓듯 외려 더 많이 주셔서

저희를 오래 감동케 하기도 하셨더랍니다.

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훌륭한 마음공부가 되는 과정이 되더군요.

물꼬에서 일하며 그런 생각을 늘 합니다,

돈은 돈의 길이 있고 행위는 행위의 길이 있다는.

적어도 돈의 크기로 아이들을 보지는 않습니다!

 

부디 좋은 연 지어지기를 바랍니다.

 

나는 우리 아이를 물꼬에 보내고 싶다.

그런데 돈이 없다.

그런 이에게 이 답변은 당신 정말 돈 없냐고 묻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물꼬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그곳의 그도 이곳의 나도 사람이 나빠서 그런 건 아니리.

이래도 저래도 아이들이 오면 좋겠다.

돈이 벽이 아니면 좋겠다.

올 수 있다!

어째도 우리가 당당했으면 좋겠다.


늦은 밤 배앓이가 다시 심해지는 건 불편한 주제 때문이기도 한가...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496 6월 7일주, 우리 아이들이 한 일 옥영경 2004-06-11 1950
6495 39 계자 이틀째 1월 27일 불날 옥영경 2004-01-30 1949
6494 품앗이 여은주샘 옥영경 2004-02-20 1948
6493 124 계자 이튿날, 2008. 1.14.달날. 꾸물꾸물 잠깐 눈방울 옥영경 2008-02-18 1947
6492 8월 23일, 류기락샘 출국 전날 옥영경 2004-08-25 1947
6491 2009. 7.13.달날. 지난 밤 큰비 다녀가고, 두어 차례 더 옥영경 2009-07-30 1938
6490 계자 둘쨋날 1월 6일 옥영경 2004-01-07 1935
6489 계자 네쨋날 1월 8일 옥영경 2004-01-09 1932
6488 계자 세쨋날 1월 7일 옥영경 2004-01-08 1932
6487 12월 21일 불날 맑음 옥영경 2004-12-22 1928
6486 128 계자 닫는 날, 2009. 1. 2.쇠날. 맑음. 맑음 / 아이들 갈무리글 옥영경 2009-01-08 1926
6485 129 계자 이튿날, 2009. 1. 5. 달날. 꾸물럭 옥영경 2009-01-09 1925
6484 124 계자 사흗날, 2008. 1.15.불날. 맑음 옥영경 2008-02-18 1921
6483 6월 15일, 야생 사슴과 우렁각시 옥영경 2004-06-20 1918
6482 122 계자 여는 날, 2007.12.30.해날. 눈 옥영경 2008-01-02 1917
6481 4월 10-11일, 밥알모임 옥영경 2004-04-13 1916
6480 2005.12.19.달날.맑음 / 우아한 곰 세 마리? 옥영경 2005-12-20 1913
6479 아흔 다섯 번째 계자, 6월 25-27일 옥영경 2004-07-04 1913
6478 10월 13일 물날 맑음, 먼저 가 있을 게 옥영경 2004-10-14 1912
6477 39 계자 닷새째 1월 30일 옥영경 2004-02-01 1912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