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휘영청 달...

아름다운 멧골이여, 눈부신 세상이여!

 

어깨가 결려 일어나기 힘들었던 아침,

앉아 하는 수행으로 90일 수행을 이어감.

여느 때 압력밥솥 불에 올려 하는 밥만 해도

가끔 검박한 멧골 살림답게, 혹은 수행자답게

냄비밥에 김치, 그리고 냄비에 눈 누룽지를 삶아 먹다.

그렇다고 두문불출까지는 아니고

일상에서 할 일들도 이어가는.

오늘은 읍내 볼일들을 번호 붙여서 챙기다.

자동차 검사며 서점이며 도서관이며 농협이며 우체국이며...

학교에서는 또 한 벽면 창에 뽁뽁이를 붙여나가고.

 

그리고, 그대에게.

 

- 메주를 쑤고 멸치젓국을 달이고

 

지난주의 제 희망은 메주에 있었습니다.

콩 두 말을 들이고 씻고 건지고 가마솥에 넣어 메주를 쑤기 시작하는데,

치지직! 솥단지 아래서 물방울이 맺혀 장작 위로 떨어지는데...

흘러내린 물이거나 안팎 온도차이려니,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도 마르지 않는 물방울,

심지어 더 심해지는데...

이런!

두 해(재작년은 물꼬 안식년, 작년은 바르셀로나에서 보냈으니) 쓰지 않았던 가마솥 밑창에

구멍이 났던 겝니다.

얼른 상황을 수습하여 큰 스텐 들통으로 3분의 1씩 나눠 넣고

부엌으로 들어와 가스 불 위에서 삶았습니다.

이윽고 콩이 맛나게 익고,

쏟아서 찧어 메주를 덩이 짓고,

한 살림 장만해서 배불러졌지요.

그 메주 봄이 오면 소금물에 담겨 된장이 될 게고 간장이 될 게고,

맛난 밥상에 오를 온갖 것들에 간이 될 테고,

사람들을 멕여 보낼 테고,

그렇게 든든히 먹고 세상으로 나가 한 걸음을 걸을 테고...

 

엊그제 제 절망이 또한 메주에 있었습니다.

메줏덩이를 따끈한 방에 짚을 깔고 한 번쯤 뒤집어주며 하루 이틀 말리고 매달 것을

그만 다른 일에 밀려 좇아다니느라 까마득하게 잊었던.

어쿠, 한 주가 지나서야 부랴부랴,

노랗게 맛난 색을 내야 할 메주에

그만 검은 곰팡이가 벌써 자리 잡은.

그렇다고 메주가 똥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바람 들이고 햇볕 들이다보면 메주 제 노릇은 하겠지만,

소금물에 담글 때 싹싹 솔로 밀면 그리 문제 될 것도 없겠지만,

, 나는 왜 한 해 혹은 여러 해도 먹을 중요한 먹을거리를 그리 허술하게 했더란 말인가,

의기소침해져서는...

어째 나는 이 모양인가 잠시 자책했다는.

그래도 무사히 메주는 매달렸습니다요 :)

 

어제그제는 멸치젓국을 달였습니다. 이건 희망으로 분류합지요.

해마다 멸치젓을 보내주는 선배가 있었는데,

만든 건 아니고 마산 어시장에서 제일 잘한다는 집에서 사서 보낸,

뭐 지금은 사정이 어려워졌는지 작년부터는 못 오고 있지만,

그 젓을 달였습니다, 가마솥에 구멍이 나 가스렌지에 올려.

그걸 바구니에 천을 깔고 받혀두면 말갛게 물이 내려진단 말이지요.

그것으로 김치도 담고, 구운 김이며 만두며 생선이며 찍어 먹을.

 

김장도 했고,

곧 아이들이며 사람들이 이 멧골로 들어올 것입니다.

북으로 골짝이 난 대해리의 혹독한 겨울,

그러나 뜨거운 한 철이 될 테지요.

희망입니다, 하하.

 

희망과 절망이 줄타기를 하는 생이지만

대체로 희망 쪽이기로.

상황이야 내 몫이 아니지만

반응은 내(우리들의) !

오늘은 희망에 희망을 더해 온통 희망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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