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도둑비이더니 아침에도 조용히 내리는 비였다.

오전에 그었던 비는 낮 3시를 넘기며

시커매진 하늘과 함께 천둥을 앞세우고 사납게 몰아쳤다.

어디에서는 우박도 떨어졌다지.

 

분교에 일찍 들어선다. 날마다 그러하다.

아침이면 샘들보다 먼저 온 긴급돌봄교실 아이들과 노닥거린다.

뭔가 일정이 시작되기 전 몸풀기 같아서 좋다.

아직 어른들이 들어서기 전 아이들만 있기보다 

보호자로서 내 자리에 있는 것 같아서도 마음 좋다,

누구도 내게 맡기지도 요구하지도 않은 일이나.

오늘은 비가 와서인지 

다른 때보다 더 늦은 어른들과 아이들이 저들 일정으로 돌아가자

그제야 특수학급 교실 환기를 시키고 청소하고

교사용 컴퓨터를 켜고 음악을 틀고 차를 달이고.

완벽하다! 이제 여기 아이들만 오면 된다.

 

온라인개학 동안 특수학급 아이들은 방문수업을 하기로.

먼저 일정을 결정한 6학년 아이를 위해 수업안을 짜고,

당장 다음 주 월수금 출장신청도 하고.

2시간이니 따로 쉬는 틈 없이 30분 단축수업으로 4차시까지,

그러면 112차시까지 소화할 수 있다.

아이에게 형아가 있지만 고3 수험생으로 제 공부만도 바쁠 테고,

어른이라고 있지만 아이 학습에 서툰 할머니다.

정교한 수업이 아니라도 온라인학습 동안 방치되는 시간이 아니게,

마치 물꼬에서처럼 보육과 교육이 같이 가는 시간일 수 있도록 애쓰기로 한다.

도서관에서 수업에 쓸 책들도 좀 챙겨오고.

교과서가 재미가 좀 없는 측면이 있으니 동화책들을 잘 쓰려는.

4학년 아이는 아직 수업시간 조율 중.

 

오늘은 쇠날, 서둘러 분교를 나와 물꼬행.

주중에는 한 초등학교 교장 사택에서 지내며 분교살이,

주말에는 물꼬살이,

제도학교와 비제도학교를 오가는 이중생활 중인 이번 학기.

엊그제 한 유치원에서 공사를 하며 나온 멀쩡한 유아교구들 몇이

오늘 물꼬에 부려졌다.

잊으셨을라, 물꼬는 영유아과정도 있음요~

 

날마다 개운한 한 주였다.

넘의 동네 낯선 일정에 무리하지 않고, 잠을 충분히 확보하다.

무엇보다 일찍 잤다(자정도 한참 넘기는 게 예사인 물꼬에서의 생활이니...). 그러니 일찍 깨고.

05시를 넘기며 일어나니 물꼬에서라면 물꼬스테이를 하는 일정에 가까울.

일 한 판하고 출근한다.

(늘어지지는 않지만)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어 참 좋은.

이렇게 살살하면 오래도록도 하겠는.

안정이 주는(제도가 주는? 혹은 임금이 주는?) 달콤함이 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이렇게 늙어 가버리겠구나,

한 생이 지나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내 기쁨은 역시 야전(野戰)에 있었다. 살아 숨 쉬는 경이가 있는!

제도학교에서는 뭔가 죽어있는, 정체된 시간인 것 같은 느낌이 이는.

(물론 아직 등교개학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머잖아 아이들이 올 것이다. 오겠지, 올 수 있겠지!)

물꼬에서는 살아 펄펄 뛰는 생명력이 있다!

 

제도학교에 있는 동안에도

물꼬에 바쁜 일이 생기면 움직일 여지도 적잖다.

물꼬로서는 제도학교지원이라 일컫지만

제도학교에서야 기간제교사.

기간제교사들이 연가를 챙기기도 수월치만은 않다고들 하던데

최대한 쓸 수 있는 연가일수를 제도학교 측에서 알려오다, 물꼬 일에 어려움 겪지 말라고; 11일.

아무래도 긴급한 상담이나, 특히 연어의 날은 어째도 사나흘 써야 할.

이러저러 아직은 순조로이 흘러가는 날들이다.

오늘 여기는 물꼬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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