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24.쇠날. 맑음

조회 수 297 추천 수 0 2020.08.04 11:26:09


 

해건지기.

제도학교의 사택에서 시작하는 이른 아침,

날마다 랩탑을 켜던 여느 날과 달리

식탁이자 책상에 그냥 앉았다.

뭘 그렇게 쪼개며 시간을 쓰나,

오늘은 그저 있기로 한다. 천천히 아침을 연다.

분교 이웃 교실 두 교사와 낮밥을 같이 먹자 했고,

샐러드를 넉넉하게 도시락으로 쌌다.

 

분교를 들어서서 교실 문부터 열고 청소를 하고.

2층으로 된 교사이지만 전체 규모로는 물꼬보다 그리 크지 않다.

그래서 꼭 물꼬 우리 학교로 들어서는 것 같은.

고요하다. 한참은 더 있어야 사람들이 들어설 것이다.

분교는, 아무래도 아직 아이들이 등교개학을 하지 않아서도

아침 시간이 늦다.

쇠날이면 더 늦다.

나이 드신 교사 한 분이 출근길에 우리 학급부터 들리셨다.

우리 특수학급은 분교의 본관을 들어서며 바로 왼쪽에 있다.

어제 분교 식구들이 김치부침개를 해먹었다고,

내가 본교로 출장을 가 있어 나누지 못했다고,

아침부터 그걸 부쳐서 가져오신.

직장인들의 출근시간이 바쁘다고들 하는데,

어찌 그럴 마음을 다 내셨던 걸까.

찡했다. 사람이 참... 사람으로 산다.

 

오늘은 오후가 아니라 오전에 특수아 방문수업이 있다.

가족들이 먼 길을 가야 한 대서 수업 시간을 당겼다.

돌아오니 돌봄실에서 분교 식구들이 막 낮밥을 먹고들 앉았다.

분교장샘이 샌드위치를 준비했다며, 내 몫을 남겨놓았다.

 

낮밥을 먹은 뒤 몇 샘과 분교 뒤란 너머 들에서 나물을 뜯었다.

코로나19가 어째도 봄이 왔고 풀이 자랐다.

망초며 머위며 한 봉지 뜯어왔다.

바람이 불었다. 바람결에 노래도 실었다.

봄처녀마냥 모두 하늘거렸다.

곧 아이들과도 그리 노닐 수 있기를.

 

번번이 퇴근에 서둘다.

제도학교의 이른 퇴근 시간이 퍽 적응 안 되는.

한창 뭐 좀 해야겠다, 한다, 흐름을 좀 탄다 싶으면

금세 퇴근이라고 사람들이 몰려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두어 시간만 더 책상 앞에서 머물면 좋겠는데.

민폐가 되지 않으려 서둘지만 역시 오늘도 맨 꼬래비였고,

밖에 분교 주무관님이 잠금장치를 위해 서 계셨다.

분교는 본교처럼 원격잠금이 안 되나...

 

제도학교가 있는 소읍에서 장을 보고

물꼬 가마솥방에서 뜯어온 나물을 데쳤다.

덜어내 좀 무치고 나머지는 채반에 널었다. 묵나물

달골에 이르니 밤 9시였다.

 

내일은 빈들모임.

세 사람이 신청을 했다.

코로나19 아니라도 이번 학기에 있는 주말 일정은 딱 이만큼의 규모가 좋다.

안에 있는 식구들까지 예닐곱.

 

, 오늘 코로나19로 온라인개학 아래

시골 소읍의 특수학급을 위한 변(보도자료) 하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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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49일부터 전국 초··고교가 순차적으로 온라인 개학을 한 가운데

장애가 있는 학생을 위한 대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계속 되어왔다. 대다수 특수교육대상자에게

온라인 수업은 쉽지 않은 도전이다. 장애의 종류도 다양하고 수준도 천차만별이라 전일제

완전통합하는 학생을 제외하고는 학습자의 개별적인 지원이 절대적이다. 그런 속에 일선에서

특수교사들은 특수교육대상자들의 교육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찾아 실천하고 있다.

현재 ○○초에서는 학부모의 동의 아래 방문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특수학급 학생이 현 사태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우려를 지우고 있다.

 

□ ○○*** 교장은 "모든 아이들의 교육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선교사들이 수고가 많다.

특히 특수교육대상자들은 개인차가 있기는 하지만, 온라인 학습이 쉽지 않은 속에 특수교사들이

방문수업을 하여 교육 공백을 메우고 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립다.”고 전했다.

 

방문 수업은 감염병 예방을 위해 방문 전과 방문, 방문 후로 3단계 예방수칙을 철저히 지킨 뒤

진행한다. 방문 전 학생과 가족의 발열 여부와 건강 상태를 미리 확인하고, 학습에 필요한

교재교구를 사전 소독하며, 방문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도 가져간 체온계로 발열을 체크하는 것.

수업 중에는 교사와 학생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소독도 필수다. 교사는 교실로 돌아온 후에

발열 및 건강 상태를 확인한 후 입실하며, 사용한 학습교구를 소독하고 있다.

 

마을이 학교다, 라는 명제는 교육계의 고전적 테제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학교에서

아이들 목소리를 앗아갔지만, 한편 아이를 둘러싼 마을 환경을 교과서로 수업할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한다.

6학년 한 특수아동의 수업을 따라가 본다.

방문수업을 온 교사가 아이랑 공부할 책상에 물통을 꺼내놓자 아동의 할머니가

마실 물도 안 줄까 봐서요...”하며 웃으신다.

1교시는 발열 체크가 끝난 뒤 야외수업이다. 일상이 바쁜 요즘 아이들은 정작 자신이 사는

마을에서 자라는 것들을 모르는 경우도 흔하다.“저거 본 적 있어?”

쪽파, 마늘, 시금치, 상추, 부추, 열무가 한창이다.

과수밭 역시 꽃이 흐드러져 있다. 길가 벚꽃을 지나 밭으로 이어진 길을 걷노라니

복사꽃 배꽃 사과꽃잎이 흩날린다.

교사랑 아이는 걸음을 멈추고 주저앉아 들꽃도 들여다본다. 앉아서 들여다봐야 보이는 꽃마리,

꺾으면 애기똥물처럼 노랗게 물이 나는 애기똥풀, 큰개불알꽃이라는 재미난 별명을 가진

큰봄까치꽃...

마을이 훌륭한 교과서였다!

 

2교시는 집으로 돌아와 그리는 연필화. 오늘은 진달래를 꺾어 들어왔다. 스케치북에 그것을

옮겼다. 손감각도 키우고 관찰력도 키우고 집중력도 기르고,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명상으로도

보였다.

이어 교사는 교육청에서 지원한 기기로 인터넷을 켜서바로학교에 들어가 둘러보며

국어와 수학을 제외한 과목은 통합학급 수업으로 할 수 있도록 안내도 하였다.

3교시는 수학. 두자리수와 두자리수 더하기. 바쁜 마음에 자꾸 틀리는 아이를 교사는

찬찬히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숙제도 한 페이지 나갔다.

4교시 국어. 언어장애가 있어 연철 발음이 어려운 아이에게 교사는 가져간 동화책을 읽어주었다.

첫 번째 읽는 과정에서 아동은 그림을 보며 따라갔고, 교사가 다시 읽을 때는 글씨를 따라가고

있었다. 세 번째는 아동이 띄엄띄엄 자신이 읽어나갔다.

 

갈무리 시간. 오늘 무엇을 했나 짚었고, 다음 시간을 확인했다. 수업 각 차시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40분 수업 대신 단축된 30분 수업이었고, 내리 2시간 이어졌다. 짧지 않은 시간을

내리 진행하고 있었지만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 ○○초 +++교감은 이 사태가 가라앉을 때까지 학교는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개학에 대비해서도 교육과정과 일과시간, 수업 변경에 대해 논의가 활발하며,

급식시간과 쉬는시간에 대해서도 여러 대책을 모색하며 언제든 아이들을 맞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는 중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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