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다섯 시간에 이르는 긴 통화(여러 곳이었다만)가 있었다.

특수학급 6학년 한 아이의 중학 배치 건을 위한.

유치원 때 엄마를 잃었고 아버지는 알콜중독 치료시설에 지금도 있다.

이름 석 자 말고는 한글도 모르는 할머니가 돌보는 아이,

어쩌라고 한 번에 버스로 닿는 곳이 아닌 중학교로 배치된다나.

관련 두 교육청과 특수교육지원센터의 방기도 있었다.

이제 내 손에 이후 과정의 일이 떨어졌다.

물론 아무도 내게 이 일을 하라고 하지 않았고,

오늘부로 담임 일을 벗어났으니 후임자가 나서기도 할 일이나

이 일이 원하는 방향에 이를 때까지 안고 가기로 마음먹다.

마침내 저녁 6시 직전 담당 장학사가 전한 마지막 말을 들었다.

이의신청 서류를 내면 특수교육위원회를 다시 열겠다는.

다른 편으로는 좋은 소식을 기대해도 좋다는 전언도 슬쩍 있었다.

비로소 저녁이 다 되어서야 거창에 다녀올 일을 보았고,

돌아오며 무풍에서 늦은 저녁밥을 먹었다.

스물일곱 아들이 어머니의 식당을 돕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네.

여기 다 그래요. 자식들이 다 부모님 하시는 식당 돕고...”

 

제도학교 지원수업이 끝나는 날이라.

자정을 넘기고 글월 하나 써

소통메신저로 그간 동료였던 이들에게 전하다.



○○의 동료이자 동지들께

 

○○의 끝날은 연가였으나

한동(작은 학교라 이렇게 이름만 말해도 아실)의 중학 진학 건으로

학교와 관련 지역 두 교육청과

간헐적이긴 하나 거의 5시간에 이르는 통화 연결이 있었더랍니다.

같은 건으로 내일 아침부터 ○○으로 달려갑니다만

공식적인 근무는 오늘까지!


코로나19 아래 작은 학교에서의 아름다운 한 철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인류 초유의 사태라 하지만

사실 인류는 언제나 내일 앞에 처음을 겪어오지 않았던지요.

인류는 세계 1,2차 대전도,

중세 유럽인구 3분의 1을 집어삼킨 흑사병도 무사히 건너왔습니다.

내일 앞에 우리는 언제나 처음이었던 거지요.

어째도 삶은 계속되었던.

여전히 우리는 밥을 먹고 학교를 가고 아이들을 만나고.

특별한 시기였지만 한편 그저 아이들과 보낸 학기 하나였던.

코로나19의 시절이 특별했던 게 아니라

○○에서의 날들이 특별하였단 말씀 :)

코로나19가 어떻고 신이 어째도

우리는 오직 우리의 하루를 모실 뿐이라는.


분교의 주무관님과 풀을 매고 꽃밭을 돌보고 텃밭에서 거둔 것들을 나눈 일이며

한 아이에게 일주 세 차례 4차시(2시간)씩 하던 방문수업,

1학년 아이들과 아침마다 하루 수업을 시작하기 전 1시간씩 놀던 시간,

주마다 달날과 쇠날 2교시 특수학급 식구들 모두가 숲에 들어가 연 숲교실

(, 정말 보물의 공간이어요. 숲을 가진 학교!),

진새를 비롯 1학년들과 주마다 한 차례 물날에 예능실에 좇아가 치던 풍물이며,

도서관을 교실로 쓰며 책 사이를 누비던 시간,

무어니 무어니 해도 최고는 진새와 태음이와 은별이와 한동이랑 하던 국어 수학 수업(, 가끔 성말이도)!

빛나는 날들을 허락해주신 ○○

곁에 있었던 동료이자 동지분들께 무한 감사.


아이들과 하는 공부도 신명났지만

어른들과 보낸 시간도 못지 않았습니다.

같이 꽃밭 풀도 뽑고

특수학급에 차린 찻상 앞에 모여 울고 웃던 시간들,

제가 ○○ 어른들한테 밥을 낸 일도 있었군요.

밥이 하늘인 줄 압니다.

제가 물꼬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풀을 매는 일.

같이 수행하는 인연도 깊지만 밥상에 같이 앉는 인연은 또 얼마나 진한 연줄인지.

(그러므로, 그래서도 증약 급식실에 인사를 빼놓을 수 없는.

자샘, 순샘, 미샘, 영샘, 어디 가서 단체급식에서 개인 특별밥상을 받을 수 있답니까!

감사, 감사, 감사!)

, 그래요, 배구를 빼놓을 수 없군요.

배구 멤버 구성해야 할 때 모자라면 제게도 연락을 주십사. ㅎㅎ

모자라지 않아도 억지로 깍두기로라도 :)

분교에서의 특강 시간, 학부모들과 나눈 이야기도 깊었지만

끝나고 교장샘과 분교샘들 모두와 앉아 퇴근시간도 잊고 마신 찻시간을

또한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도학교를 마감하며 한 생각들 가운데 두어 가지는 같이 나눠도 좋을 듯합니다.

외람스러우실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자주 묻더군요,

코로나19 사태 앞에 공교육을 어찌 생각하느냐고.

적어도 초등교육에서만큼은 공교육이 강화되어야 하지 않을지.

여러 모로 같은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을 듯하여 덧붙이는 말은 생략.

또 하나.

학사일정에서 아름다운 겉도 좋지만 또한 아이들이 내실 있기를.

그래서 보다 학습에 공이 들여지면 좋겠다는 생각.

아이 한 명 한 명의 학습권에 더욱 관심이 기울여지길.


이제 끝인사.

때로 내 선의가 상대방에게는 얼마든지 악의가 될 수 있음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혹 저는 좋은 의도였으나 그것이 상처가 되기라도 했다면... 그저 죄송할.

나이를 먹어도 사는 일에는 자주 어리석고,

멧골에 너무 오래 들어와 살아 세상살이 더욱 서툰.

아무쪼록 혜량하여주시기.


특별히 본교 특수샘인 금주샘께 감사를.

저를 불러주신 교장샘을 비롯 교감샘과 다른 샘들인들 그렇지 않을까요만.

마지막까지 서툰 제 몫을 안아준 덕에 오늘 무사히 ○○을 걸어 나온.


존재는 흐르지요.

시간도 흐르고.

어디서든 교차할 테고.

그간 만난 것만도 엄청난 인연.

어제 보고 오늘 또 만난 듯 보아요, 어디선가.

부디 강건하시기.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안녕, 김꽃 교장선생님,

안녕, 조소 교감선생님,

안녕, 두 영샘, 석샘, 일샘, 희샘, 애샘, 성샘, 규샘, 화샘

안녕, 큰 형님 희샘과 숙샘, 늘 긴장의 연속이었던 보건교사 례샘,

안녕, 애샘, 상샘, 인샘, 해샘, 하샘.

우리 ○○아이들도 모다 안녕.


2020. 8.31.달날

자유학교 물꼬 옥영경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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