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가을 건들장마인가 싶더니

태풍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이선

한반도 중앙을 강타한다던 예보는 다행히 비껴갔다.

상륙하지 않고 동해로 빠졌다는.

흐리다 실비와 은실비, 보슬비와 부슬비, 더러 가랑비 내렸다.

 

나는 듣기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이구나.

읽기보다 쓰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구나.

빈백에서 책을 읽다 몇 차례나 내 안에서 일어난 말들이 있어

벌떡 벌떡 일어나 책상에 앉거나 메모를 하거나.

 

습이들을 키우는 재미.

성견이어도 두세 살 지능의 아이랑 같다는 개들이지만 아이처럼 돌보지는 않는다.

그들은 방에 있지도 않고 1시간마다 젖을 물리는 존재는 아니다.

이제 태어난 지 한 해가 막 지난 제습이와 가습이는 하루에 밥을 한 차례 주고,

날마다 똥을 치워주고 물통을 씻어주고,

주에 한 차례 겨우 산책을 시킨다.

달골에서 키울 때는 어렸고, 또 울타리를 아직 넘어가지 않았던 때라

(실제 울타리가 있는 건 아니고 경계지점을 넘어가지 않았던.

특히 들머리 대문 이쪽을 넘어오지 않던.)

아침마다 아침뜨락을 같이 걸었으나

학교에 내려온 뒤에는, 학교는 늘 일하러 들어서는 게 먼저라

그들로 향한 손발이 밀린.

이제는 습이들이 마을에 있는 학교에서 지내니 늘 묶어두는데,

습이들 힘이 세져서 내 힘에 부쳐서도 끈을 묶고 하는 산책에 쉬 손이 못 가는.

한 마리씩 하면 되지만 그 사이 다른 한 마리가 도대체 못 견디는.

그래서 기락샘이 올 때야 같이 한 마리씩 데리고 걷는.

 

코로나19는 드디어 이 멧골의 삶을 더욱 정적이게 만들었는데,

그러자니 습이들이 아이들의 자리를 대신해 화젯거리가 자주 되는.

그래서도 교육서보다 동물에 대한 책들이 먼저 잡히는.

오늘은 <개는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는가>(클라이브 D.L. )를 읽다가

식구들과 함께 반려견과 보신탕이 공존하는 우리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어떤 존재가 사람을 두고 먹을거리와 반려동물로 나누지는 않을 듯.

하기야 이 우주 어딘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다 모를 일이지만.

대개의 가축은 잡아먹기 위해 키웠는데,

그래서 도축과정이 대체로 기준이 있는.

하지만 개고기는...

그찮아도 고기를 먹지 않았는데,

내가 결정적으로 고기와 일별하게 된 건

일곱 살 때 온 마을 사람들이 외가 뒤란에 모여

외가에서 기르던 돼지를 잡아먹는 걸 본 뒤였던 걸로 기억한다.

하물며 사랑하는(까지 아니더라도 곁에 같이 살던 존재가) 개가 사람에게 잡아먹힌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충격일까.

어떤 아이는 그것을 외면하는 것으로 그 충격을 견딜지도.

아니면 보신탕을 반대하는 투사가 되거나.

보신탕만큼은 먹는 것에 대한 취향으로 보기가 사실 좀 어렵다.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에야 영양 보충을 했다고 치자,

오늘날에야 그런 것도 아니니.

동물을 사랑해본 적도 키워본 적도 없는 나였고

(그래서 더 사랑하기 어려웠을. 사랑은 관계에서 피어나는 것일 테니),

가장 애정이 많이 갔던 물꼬의 장순이(온 것도 인연 깊은 곳에서 왔고, 오랜 시간을 같이 한)

지나고서 회한이 많은 거지 살아설 적 멀찍이서 그를 지켜본 정도.

비로소 가까이서 같이 뒹굴고 있는 습이들과의 인연은

그래서 참 특별하다.

 

읍내를 나갈 일이 있었고,

참새 방앗간같이 여기는 댁과 책방과 꽃집과 다이소,

가끔 책을 빌리기 위한 도서관과 공무를 위한 군청에 들리는 일을 빼면

읍내의 내 동선은 그게 전부라 할.

자잘한 몇 가지 살림도구를 사고

(천 원은 실패해도 별 무리가 없는 돈이라 사람들은 의외로 다이소 같은 데서 많은 돈을 쓰기도 한다던가),

서점에서는 신뢰(글이)가 가는 소설가의 산문집을 하나 들고,

꽃집에서는 허브 화분 하나를 가져와 마당 한켠에 심다.

백로가 지나면 더는 세를 키우지 않는 식물들이더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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