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15.불날. 맑음

조회 수 362 추천 수 0 2020.10.10 01:01:00


 

가스계량기가 있는 나무복도에서 할머니가 말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

그 말을 작정하고 마음에 새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수용소로

가져갔다. 그 말이 나와 동행하리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그런 말은 자생력이 있다.

그 말은 내 안에서 내가 가져간 책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는 심장삽의 공범이 되었고, 배고픈 천사의 복수가 되었다. 돌아왔으므로

나는 말할 수 있다.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가운데서

 

말은 그러하다!

 

먼 길을 다녀왔다.

품앗이를 하는 이웃네의 일터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었다.

작년 여름 들머리에도 그곳에서 풀을 뽑고 소나무 가지를 쳤다.

오늘은 주인장과 그네의 친인척 부부가 함께 일했다.

지난해부터 돌격대라며(그렇게 쓰여 있던 마스크를 같이 썼던 때 이후로)

손발을 맞춰 같이 일하던 날이 적지 않았다.

작년에 옥샘이 저희 일을 3일 해줬지요?”

! ...

거기, 저기, 여기, 요기, ...

한 열흘 해서 인부들처럼 지급된 임금을

그 댁 노모 화장실 수리하는 일에 종자돈으로 보냈다.

나머지 공사비는 그 댁 형제들이 알아서 보태라며.

내 애씀을 상대가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모르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나중에야 말실수(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리 생각했을라구)이겠다 했지만

야속하였더라.

보람 없는 일에 녹초가 되었을 때 오는 그런 김빠짐.

벌레에 물린 손가락이 더 아팠더랬네.

돌아오는 길이 멀었다, 아주 멀었다.

이런, 게다 차가 좀 이상한 걸! 어딘가 문제다.

속도페달을 밟아도 속도가 오르지 않고,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속도가 붙고.

달골 오르막에서는 살짝 겁이 나기도 했다.

아무리 밟아도 힘을 받지 못하는 거다.

오늘 이군.

학교아저씨로부터 들어온 문자는 예취기가 고장 났다는 소식.

내일은 아무래도 읍내를 다녀와야겠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496 마지막 합격자 발표 2월 20일 쇠날 옥영경 2004-02-23 1949
6495 8월 23일, 류기락샘 출국 전날 옥영경 2004-08-25 1947
6494 124 계자 이튿날, 2008. 1.14.달날. 꾸물꾸물 잠깐 눈방울 옥영경 2008-02-18 1946
6493 품앗이 여은주샘 옥영경 2004-02-20 1946
6492 39 계자 이틀째 1월 27일 불날 옥영경 2004-01-30 1945
6491 2009. 7.13.달날. 지난 밤 큰비 다녀가고, 두어 차례 더 옥영경 2009-07-30 1938
6490 계자 둘쨋날 1월 6일 옥영경 2004-01-07 1933
6489 계자 세쨋날 1월 7일 옥영경 2004-01-08 1931
6488 12월 21일 불날 맑음 옥영경 2004-12-22 1928
6487 계자 네쨋날 1월 8일 옥영경 2004-01-09 1928
6486 129 계자 이튿날, 2009. 1. 5. 달날. 꾸물럭 옥영경 2009-01-09 1923
6485 128 계자 닫는 날, 2009. 1. 2.쇠날. 맑음. 맑음 / 아이들 갈무리글 옥영경 2009-01-08 1921
6484 124 계자 사흗날, 2008. 1.15.불날. 맑음 옥영경 2008-02-18 1921
6483 6월 15일, 야생 사슴과 우렁각시 옥영경 2004-06-20 1916
6482 4월 10-11일, 밥알모임 옥영경 2004-04-13 1915
6481 122 계자 여는 날, 2007.12.30.해날. 눈 옥영경 2008-01-02 1914
6480 2005.12.19.달날.맑음 / 우아한 곰 세 마리? 옥영경 2005-12-20 1912
6479 아흔 다섯 번째 계자, 6월 25-27일 옥영경 2004-07-04 1912
6478 39 계자 닷새째 1월 30일 옥영경 2004-02-01 1911
6477 6월 28일, 그럼 쉬고 옥영경 2004-07-04 1910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