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11.물날. 갬

조회 수 430 추천 수 0 2020.04.12 04:12:13


 

해가 났다. 비가 온 다음날 나온 해는 청소를 부른다.

나는 자주 그런 계기가 필요하다.

청소 하나에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그런 계기를 통해 움직일 때가 적잖다.

공부를 하려니까 청소를 하고,

손님이 오니까 청소하고,

어딜 다녀와야 하니 청소를 해놓고 나가야 하고.

쓸고 닦고, 털고 널고.

 

늦은 해건지기를 하다.

몸 풀고 대배 백배, 그리고 명상도 이어했다.

 

와서 여러 날 엄마의 일을 도와주던 아들이 오늘 마을을 나가고 있었다.

엄마라고 어른이라고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몇 가지 부탁들(이라고 하지만 잔소리일)을 하는데,

며칠 같이 지내면서 안 된다 싶은 뒷정리에 대해 굳이 한 소리를 하고 만 것.

그도 나도 짜증이 좀 났다.

엄마가 스마트폰 못한다고 내가 뭐라 해요?

 그런데 내가 잘 안 되는 걸 자꾸 뭐라 하시냐구요!

아니, 두 번을 말도 못하냐? 안 되니까 말하는 거 아냐!”

어머니는 장애애들에게 뭐라 안 하시잖아요!”

네가 장애아냐?”

좀 툭닥거렸다.

 

그런데 보내놓고 드는 생각이라.

가방 같은 사람이 있고 보자기 같은 사람이 있다던 이어령 선생의 말.

가방은 그에 맞춰진 것들만 넣을 수 있지만

보자기는 어떤 물건이나 감쌀 수 있다던가.

나는 자주 내게 딱 맞는 이들에게만 맞는.

안 맞으면 못 견디고 안 맞는 그 타인도 내가 불편할 테고.

아이들의 여러 모양을 감싸는 건 어렵지 않은데...

아들이 어릴 적 내게 그랬다,

어머니는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친절한데 저한테만 안 그래요.”

어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건 너그러운 사람도 포함할 것.

내가 만든 규격에 잘 맞춘 건, 폼 났겠지만,

폼 나는 것에 너무 신경 쓰는 건 아니었나.

내가 좋다고 하지만 보이기 좋은 건 아니었나.

나를 너무 피곤하게 하는 건 아니었나.

나하고 맞는 사람만 살 수 있는...

 

나는 사람들과 잘 안 맞다,

는 자괴감이 드는 밤.

그러나 헤아려보면 아주 안 맞기만 한 것도 아니고

(맞는 사람 한둘만 있어도 충분하지!)

사실 라는 건 딱 떨어지는 누구도 아니니

내가 있지만 내가 없기도 한 것이 또 사람 아니런가.

그러니 보자기이기도 그리 어려울 것 없는!

또한 식구란 또 아주 가까운 사이라

우린 오늘의 툭닥거림이 사흘을 가지 못하고

제 반성들을 나누며 또 헤헤거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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