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12.흙날. 흐림

조회 수 322 추천 수 0 2023.08.14 13:58:46


고즈넉한 멧골, 텅 빈 마당.

어제 172계자 아이들이 떠났다.

모여서 왁자해도 좋고,

이렇게 고요해도 또한 좋다.

날 흐렸다. 소나기는 다녀간다는 소식만 있고 오지 않았다.

 

달게 잤다. 고마워라. 내리 8시간을 넘게 잤나 보다.

계자 때는 두어 시간 밤잠에 낮에 15분 등을 붙인다.

그마저도 재밌기도 하지, 15분에 꼭 날 찾는 이들이 있어 그걸 확보키 어렵고는 한다.

써 붙여둔다면야. 하지만 뭘 그렇게까지...

손목만 시큰한 정도, 아무래도 밥바라지였으니.

 

09시 출근:)

사실은 아직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일을 그 시간 시작했다는 의미.

잠도 계자 때처럼 교무실 바닥에서.

계자에서 남은 먼지를 터는 데 보내고,

밤에는 계자 기록을 이어갈.

계자 전의 청소도 중요하지만

끝나고 하는 청소가 다음 일들 흐름을 편안하게 하는 줄 너무 잘 아니.

계자 끝이 다음 계자의 시작인 셈.

그건 우리는 또 애써서 우리 삶을 살겠노라는 뜻.

계자 뒤가 계자 앞보다 청소가 더 많은지도.

계자에 남겨진 것들 정리도 정리지만

계자를 하는 동안에 눈에 걸리던 것들을 적었다가 하나씩 쓰러뜨리는.

아직 수돗물은 흙탕물이, 욕실은 온수통에 모였다 물이 나오니.

간밤에도 그 물로나마 씻었다.

그나마 부엌은 빨리 회복되었다.

 

수저와 접시들을 닦아 얼마쯤 들여놓았다.

살림이 좀 가벼워진다.

행주와 수세미를 모두 삶고 넌다.

걸레는 과탄산소다에 담갔다 빨고 넌다.

평소 쓸 몇 개만 남기고 다 들여야.

세탁기에서는 남겨진 빨래들(수건과 옷방에서 꺼내 입은 옷들)이 돌아간다.

냉장고도 놓치지 않고 먼저 봐야 할 곳. 식재료부터 챙겨야 버려지는 일이 없다.

밖으로는, 바깥해우소 각 칸의 벽을 닦고,

아궁이 둘레 풀이며 가는 나무들을 잘라 깔끔하게 정리한다.

 

오후에는 식구들이 달골에 올라 태풍이 할퀸 곳들 살펴보기.

달골 오르는 길 끝, 도랑을 잇는 꼬마 다리 수로가

산판을 했던 곳에서 흘러내린 폭포 같은 물로

돌과 바위와 흙과 나뭇가지들로 완전히 막혔더랬다.

그 위로 물 넘치며 길의 포장을 벗겨내기도 했고.

면사무소에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어제 연락했고,

바로 굴착기 보내주겠다 했더랬다.

다녀갔더라. 고마워라.

덕분에 외려 마지막 굽이길 가장자리가 더 견고해진.

계곡 쪽으로 돌을 잘 쌓아 더 튼튼하게 되어 있었다.

산판 길을 가로로 잘라 물길을 도랑 쪽으로 빼놓았기도.

엊그제 태풍 지나던 날, 아이들과 물꼬 천문대 쪽으로 산오름을 이어갈 적

멀리 이곳 풍경이 얼음 덮인 계곡 같았더랬다,

물이 콸콸콸콸 대단한 폭포를 이루고 있었던.

흙이 다 쓸려내려 가고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내 놓았다.

산판을 했던 길을 길로 계속 써보겠다고

그 너머 밭주인이 달골을 둘러가며 굴착기로 길을 더 냈던 게

두어 달 전이었던가.

인재다, 인재.

그 경사길이 물길이 되고,

거기서 시작한 물이 아래 길까지 돌들 밀어내 온 바닥에 흩뿌려 놓았더랬는데,

그것들도 굴착기가 잘 긁어놓았고,

달골 오르는 오른편 수로가 아주 깨끗하게 돼 자신이 수로였음을 상기시켜주었다.

연어의 날에 물꼬 식구들이 그 수로를 죄 팠던 것도 도움이었으리.

, 달골로 건너가는 다리 직전 왼편 언덕도 무너져 내려

큰 바위 길로 내려와 있었는데,

거기도 쌓아두었더라.

 

달골로 들어서다.

앞의 배밭에서 우리 기숙사 마당으로 울타리 넘어와 쓰러진 호두나무를

그네가 베어 정리하고 있었네.

창고동은, 2층 베란다는 낙엽들 치운 덕에 물이 잘 빠지고 있었고,

다만 햇발동과 창고동 사이 구름다리 바닥에 물 흥건하여 닦아내다.

그곳은 폴리카보네이트로 덮여있어 그 틈새가 벌어져 늘 예상하고 있는 부분.

비가 새는 게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

아침뜨락 현판 앞의 화분들 풀을 뽑아주고.

명상돔은 바닥 중앙과 한켠에 물이 조금 있었는데,

천장을 열어두어 들이쳤다 싶고, 한 부분은 피스를 다시 잘 박기로.

 

휘령샘이며 윤실샘이며 샘들이 밥못의 물을 걱정했다.

넘치고, 혹 둑이 무너지지는 않았을까 하고.

아이들과 아침뜨락을 올랐을 적 밥못에서 달못으로 이어지는 물관 밸브를

한껏 열어놓았더랬다.

못의 물이 다 빠지더라도 계자가 끝난 뒤 잠그면

산이 머금은 물이 충분히 흘러들리라 하고.

그 많은 비에 못은 절반의 물만 담고 있었다.

그 사이 고라니도 멧돼지도 헤집어놓은 곳도 없었다.

하지만 며칠 사이 비가 그토록 다녀가도 풀은 우직하게까지 무성했다.

걸음 따라 당장 눈에 걸리는 것들 중심으로 뽑으며 오른다.

들머리 계단 아래 수로가 나뭇가지와 마른풀들 흘러와 꽉 쌓여있었다.

덮개를 빼내 털어주고.

감나무 아래 들머리 계단의 지면패랭이 사이 풀을 뽑고,

감나무 둘레 구절초들 사이 풀을 매고,

옴자의 맥문동 사이 풀들 가려 뽑았다.

에키네시아가 돋보이게, 또 백리향 사이의 풀들 뽑고,

무한대민트들은 오늘은 그냥 지나치기,

대나무 수로를 치고, 그 주변 골풀과 잡풀들 정리,

민트 심은 동그라미 안 풀들 뽑고,

달못 둘레는 눈에 걸리는 큰 풀들만 잡고,

아가미길은 큰 풀만 치우자 싶더니 하다 보니 죄 매게 되었다.

미궁으로 가서는 밥못 이르기 직전 무성한 곳만 매고.

꽃그늘길도 유달리 많은 한 부분만 뽑고,

아침뜨락을 빠져나오는 다루촉 아래 바위 둘레도 쑥 죄 뽑고,

마지막으로 해바라기 둘레들 뽑으며 나왔다.

 

사이집이며 구두목골 작업실이며 땅을 정리했던 계단밭이며

손을 댔던 곳들 걱정이 좀 되었으나

양호했다. 현철샘이 계자 전 잘 정비해둔 덕이었다.

다만 사이집 너머 경사지들의 흙이 많이 쓸려나갔더라.

2017년 가을 사이집을 지으며 돋운 땅이었더랬다.

철쭉도 심고 측백도 심어 붙든다고 붙들었는데...


달골에서 돌아오는 길에 삼거리집 들리다.

냉장고 정리.

아직 그곳이 생활 공간이 아니니

냉장고 안에 있는 것들 수습하여 학교 냉장고로 옮기다.

쓰기좋게.

평소에 여기까지 동선이 이어지면 힘이 드니

움직임 선을 줄이는.

냉동실 얼음과 수박 한 덩이만 남겼다.

학교 냉장고에는 아직 자리가 없어.

 

저녁상을 물리고 밤에는 계자 기록을 이어가다.

오늘만 있듯이 지금만이 있는 아이들과 한 세상 잘 살았고,

다시 멧골의 나날이 계속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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