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마을로 내려가는 길,

칡꽃이 떨어져내려 있었다.

햇발동 벽면의 담쟁이덩굴도 잎 가장자리가 물들고 있다.

한 계절이 지나가려 한다...

 

물꼬 포도 첫 수확.

교무실 창 아래 꽃밭 앞으로 한 줄 늘어선 포도나무.

햇살과 바람과 비의 은혜로움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복숭아며 자두며 포도며 감이며 과일들이

온전히 시장에 나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농약을 뒤집어쓰는지를 보아왔다.

물꼬 포도란, 무슨 약이 있겠고 비료가 있었겠는가.

그런데도 이리 탱탱하고 굵고 맛나다.

우리 포도가 젤 맛있다, 라는 말은 맛도 맛이지만

그야말로 안심 안전 먹을거리이기 때문이기도 할 터.

세 송이를 단박에 다 먹어치웠더라.


"오전 일은 다했네."

서 있던 아저씨들도 그랬다.

예취기가 열일 할 시절,

곧 성묘들도 해야지,

경운기도 있었지만 주로 예취기들이 늘어섰다.

농기계수리센터에서 두어 시간이 흘렀다.

대개 맡겨두고 일보고 와서 찾아오고는 하였는데,

오늘은 작정하고 들여다보다.

그것만 수리하자고 나간 면소재지 걸음이기도 했고.

, 별 거 없네요.

해체한다-청소한다-클리너나 유화제 뿌린다-점화플러그나 기름 흡입구 갈아준다, 그게 다네.”

어어어어, 다 아셨네. 청소만 잘해줘도 돼요.”

겁나죠, 이제 경쟁업체 생길까 봐?”

유튜브 보면 다 나와요. 고치는 거.”

하기야 다들 몰라 그러나. 바로 그걸 못 해서들 올 테지요.”

음식도 그렇고, 어디 몰라 그러나, 바빠서도 그렇겠지만

요리 완성에 이르는 게 귀찮아서 배달도 하는 것일.

기술교육을 예서 해야 할세.

가을학기부터 짬을 내볼까...

일주일에 하루는 여기 출근할까 봐요.”

그러니 곁에 선 할아버지 왈, 그거 갖고 되겠냐신다.

저도 생업이 있는지라...”

정말 가늠을 해보네.

아이구 환영이지요. 밥은 먹여줍니다.”

물날 오후 반나절은 짬을 내보겠다 싶은데.

새로운 놀이터가 생길 수도 있겠다.

우리 예취기 문제? 엊그제 예서 중고로 샀고, 2년간 무상수리를 해주기로 했던.

한 부분이 빠져 통 들어가지를 않고 있었다.

“이게 왜 빠졌지요?

“잘 죄지 않아서...

분해해서 끼우고 죄면 되는 일이었더라.

왜 그 모양으로 파셨냐 한 소리 하였네.

 

올해 내는 책 원고를 손도 못 대다가

더는 미룰 수가 없어 오늘은 좀 끄적여 본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앉았다 섰다, 왔다갔다,

괜히 뭘 먹기도 하고,

흐르는 땀을 그냥 좀 닦아도 되련만 굳이 찬물에 씻고 나오고,

안다, 그 지점을 넘기면 좀 된다는 걸.

정말 집중해서 얼마쯤을 써내려갔는데,

허허, 문제가 생겼네. 자동저장이 될 텐데, 그게 아니라도 수시로 저장하는데,

바탕화면에서 파일을 새로 하나 만들고 지우고 어쩌고 하는 사이,

뭔가가 엉켜 같은 파일을 하나 영구제거 했는데,

그게 다른 파일과 이어져있던 거라.

고스란히 오늘의 작업량을 날린.

오래 해오는 일이어도 이러는 날이 있더라.

,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어서. 또한 뭐,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그렇기도 할.

얼른 마음 접다. 다시 써야지. 돌아올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얼마 안한 작업이라 다행으로 여겨야지.

하기야 좀 더 한 작업물이었으면 더 신중했거나,

혹시나 하고 다른 백업 방식을 택했거나 했을.

공부 값으로 여기고 정리 끝.

 

현철샘이 내일 이른 아침 밭일을 좀 거들고 간다고 늦은 저녁 들어오다.

마침 참외농사를 다 거두어 두루 나눠주고 다니던 참이시라.

비가 계속 잡혀 있어 공장을 짓는 일이 평탄작업만 사흘 하고 마침 쉬기도 하여서.

물꼬로서는 반가울 일인데 그 일이 자꾸 늦어져 어쩌나...

밭은, 학교 울 아래 오래 써왔던 밭은 놓기로 했다.

삼거리집에 붙은 삼거리밭에서 푸성귀를 키우기로 하다.

달골 밭도 있고. 지금 그곳은 때늦게 들깨가 한창.


구름 머물다 걷힌 하늘, 와, 쏟아져서 달골 땅에서도 별이 구르는 밤...


그리고 그대에게.

길을 물었을 때 나도 대답할 수 없어 기도에 대해 말하였네.

내 언어로 기도할 수 없다면 좋은 기도문을 가져와 그 언어로 해도 되리.

'저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시옵소서.'(라인홀드 니부어의 '평온을 위한 기도' 가운데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나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수우족의 기도문 가운데서)

모든 길이 막혀도 자신과는 이야기 나눌 수 있다. 기도는 그 길.

강물에 떠내려가며 통나무를 꽉 붙잡은 그 손처럼

기도가 잃어버린 나를 데려오기도 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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