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23.물날. 작달비 / 면회

조회 수 345 추천 수 0 2023.08.26 23:59:26


(* 오늘은 품앗이샘들 이름에 샘자를 떼고 부르고 싶었다!)


입영 열차에서 혹은 입영 길에 문자를 보내오고는 했다.

군대에서 편지가 오고,

그러면 면회를 한 번 가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휴가 나온 그들이 먼저 왔다.

그동안 물꼬에서 사는 삶에 시간적 여유가 없던 탓도 컸을 것이다.


혼례식이 그렇다. 예전엔 그게 그리 중한 줄 생각 못해서도 못 갔다.

물꼬의 삶을 이해하려니 하고도 안 갔다.

그 시절에는 대체로 주말마다 일정이 다 있었으니까.

혼례라는 게 신랑 신부 있으면 되었지, 그런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 주례를 서게 되었다.

그 전에라고 아주 없던 일은 아니었다.

레즈비언 부부의 혼약식을 집전한 적이 있고,

물꼬의 후배 혼례식에서 마이크로 축하 인사를 한 적도 있었고,

부모 없이 저들끼리 하는 혼례에서 주례를 선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대중적인 결혼식에서 정식 주례라니.

한참을 고사했다. 사람이 자기 설 자리를 알아야지.

결국 했다. 샘같이 삶을 창의적으로 살고 싶다, 는 그들의 간절한 바람을 듣고 한 결정이었다.

10분을 쓰겠다 했고,

절반은 그들의 사집첩을 각각 받아 영상물을 만들어서 틀었고,

나머지 5분에 서로 편이 돼서 살아라 뭐 그런 말을 했다.

여튼 이후로 품앗이샘들 혼례는 꼭 챙기는 쪽이 되었다.

혼례, 그게 그리 중한 일이더라고!

내가 나이가 들어 그야말로 장성한 자식을 둔 부모 자리에 섰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

 

군대가 그랬다(다들 으레 가는 평범한 곳이 아니라 중한 의미가 된). 

이제 장성한 아들이 있는 부모가 되기도 한 거라.

오래전 명진이가 군복무 중 휴가에 계자를 하고 갔고,

재홍이가 또한 그랬고, 시광이 물꼬 첫발을 휴가로 왔고, 말년 휴가를 계자에서 보낸 호열, ...

무열이가 군대를 갔고 제대하며 계자에 바로 왔다.

기표샘은 군대를 가기 전 여기 한동안 머물다 여행을 떠났다.

면회 생각은 못했다. 그이가 살갑게 자기 소식을 전하는 인물도 아니었다.

하지만 제대를 하고 맨 먼저 달려온 계자 미리모임에서

그는 예취기를 돌려 운동장 풀을 깎았더랬다.

경철이가 군대를 가면서 연락을 했고, ...

최근엔 해찬이가 군대를 다녀왔다.

현진이가 보직으로 의용소방대원을 하겠다며 영동으로 배치를 바랐으나 뜻대로 안됐다.

군대에서 그 정갈한 인쇄체로 편지를 보내왔던 현택에게는

바르셀로나에서 그에게 답장을 했더랬다.

그리고 한 청년이 군대를 갔고, 가기 직전 달마다 셋째주말에 있는 수행모임을 같이 했다.

지난 6월에는 그가 외박으로 연어의 날을 다녀가기도 했다.

내가 면회 가기 전에는 제대를 못한다 농을 했더랬다.

 

오늘 드디어 면회를 간다.

고맙게도 그도 곧 여러 날 무슨 훈련을 앞두고 있었고,

나도 오늘이 아니면 퍽 무리를 해야 할 일정이 될 거였다.

하늘이 또 날을 부조했다.

작달비 내렸다. 들일도 쉬었을 거라. 날씨도 부조했다.

덕분에 일찍 출발해 면소재지 우체국에서 택배도 하나 보내고,

금강휴게소에서 책을 읽었다.

먹을거리 두엇을 샀는데, , 비싼 물가를 실감하였더라.

 

군대 면회라면,

집안의 작은 오래비가 군대에 있을 적 온 식구가 바리바리 보따리를 들고 갔다.

시절이 그랬다. 벌써 40년 전 이야기다.

삼척에서 군복무를 한 댓 살 아래 후배의 면회를 간 적도 있었다.

유리창 아래서 바다가 파도를 만들던 횟집 겸 숙박지,

술을 마시던 테이블 위의 소주병이 널린 사진으로 그 장면이 남았다.

더는 면회에 대한 기억이 없다. 없었거나 잊었거나.

그리고는 물꼬 안에서의 삶이 내 삶의 거의 전부였을.

 

요새는 세상이 좋아 면회를 하러 가고 있는데 문자가 다 들어온다.

손전화기를 쓸 수 있다는.

예전에 후배 면회는 편지로 소식을 주고받은 뒤

두어 달 뒤에야 갔던.

이번 면회는 불과 지난주에 서로 날을 맞추었다.

조금 서둘러 가서 위병소 주차장에 들어섰는데, 그도 마침 나오고 있었다.

그대가 복무를 미국에서 했을지라도 (면회)갔을 거야!”

강원도라도 갔겠지.

너무나 가까이 있었다. 고마웠다.

 

부대원들에게 부자 할머니가 오신다 했단다.

의사 아들을 두면 부자 할머니 되는 거라고. 거참...

대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가족조차 굳이 면회를 오진 않았다 했다.

그래도 (면회 가는) 재미지!

그래, 내가 너의 군복무시절에 갔노라, 뭐 그런.

군대에 가 있는 청년들의 고생을 아노라, 그대들이 잊히지 않았노라, 그런.

물꼬를 공유하고 있으니 최근의 172계자 소식을 나누었고,

군대 이야기를 들었다.

바깥세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던 과거 군대내 직업세계는 이제 매우 달라져 있었다.

바느질공(?) 그런 것까지는 없는 모양.

아는 벗의 사촌은 군대에서 바느질을 했고, 제대 후 양복점을 차렸더라던가.

예전 3년 복무 때는 1년 가르쳐 2년 써먹었는데,

요새는 1년 반 복무이니 1년 가르쳐야 금세 제대를 하고 마는.

그래서 그런 일(세탁일 같은)은 군속이 하거나 외주를 주거나.

인구절벽에 이제는 사병이 더욱 줄 것이고,

현대전으로 봐서도 장교 중심 군대가 되지 않겠는가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모병제로 갈 것 같다.

내부반도 20명이 아니라 8,

10인분의 바깥음식을 싸서 들여보냈다. 바깥음식 귀해서가 아니라 뭐, 재미니까.

누가 외출 나갔다, 바깥 음식이 왔다, 그런 재미.

 

8시 부대 앞에서 헤어졌다. 철문 너머로 듬직하게 걸어가는 윤호의 어깨를 보았다.

물꼬를 통해 만났고, 물꼬를 통해 우정을 쌓았다.

아이였던 그였고, 그때도 동지였지만, 동지가 되고 동료가 되었다.

20대와 곧 예순에 가까운 나이의 간극은 우리가 함께 보낸 세월 앞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는, 매우, 즐거웠다. 

 

이제 밤길 빗길 운전은 힘이 든다.

돌아오는 길이 가벼운 마음과 달랐다.

내일은 대둔산의 암벽을 탈까 어쩔까 그런 얘기도 있었던 참.

비 내리니 어렵겠지만, 대신 산오름을 하거나 걷거나.

어둔 길이 매우 길었다.

 

처서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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