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1.쇠날. 밝고 둥근달

조회 수 449 추천 수 0 2023.09.06 00:49:10


학교마당에 예취기가 돌아갔고,

포도를 얼마쯤 땄고,

그리고 부녀회에서 가을학기에 몸살리기 모임을 하자던 말들이 있었기에

의견을 다시 확인하는 문자들을 돌렸다.

주마다 달날, 불날, 두 차례 10주 정도 생각하는.

 

혼비백산했고, 십년감수했다. 어제 말이다.

이렇게 적절한 말이 있었다니.

혼비백산(魂飛魄散); 몹시 놀라 넋을 잃음.

(정신? 그럴.)은 얼이고 백(? .)은 넋이라.

얼이 날아가고 넋이 흩어지고.

십년감수(十年減壽); 목숨이 10년이나 줄 정도로 몹시 놀랐거나 매우 위험한 고비를 겪음.

교미공(짝짓기 하는 뱀 덩어리)을 보았고,

놀랐구나 했지만 이렇게 이튿날까지 종일 기를 다 뺄 정도일 줄이야.

여름 일정이 무사히 다 끝나서도 그랬겠다.

어느 때보다 더웠다는 혹서도 지난.

한 마리도 아니고 뱀 덩어리를 봤으니...

뱀은, 정말이지 친해지기 여간 어려운 존재가 아니다.

애완용으로 키우는 이들도 있더라만.

, 다리가 없어도, 많아도, ...

다리 둘인 사람이랑 먼 거리라 그럴 테지.

생애 처음 눈앞에서 본 무더기는 충격이라 할만 했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할아버지도 뱀은 볼 때마다 보는 대로 놀라는 게 뱀이라시더만.

아침뜨락을 온통 뒤집어높는 고라니와 멧돼지도

비라도 많이 내리면 그것들이 어디서 이 시간을 지나나 걱정하건만

뱀 그들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이 풀숲에, 멧골에, 들에, 산에 맞닿아 살면서 그간 보지 못한 게 더 신기한 일일 수도. 

내가 어제 충격 받아서 자율신경계가 무너졌나 봐!’

대처 식구들한테 보낸 문자였다.

9월이 왔고, 주말이고, 특별히 일정이 있거나 방문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덕분에 쉬어가기도 좋은.

하지만 책 원고를 쓰기 시작하는 때로 잡았는데,

또 핑계가 되려나 보다.

하지만 수능을 보는 열아홉들을 위한 기도를 이어가는 대배만큼은

무더기 뱀도 당해낼 수 없었나니.

 

시골에서 더러 뱀이 집안으로 들어온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다.

불과 엊그제 가까운 지역에서 방에 들어온 뱀 이야기도 있었다.

우리만 해도 비껴가지 않은 이야기다.

아마도 그 당시에는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듯하다. 겁먹을까 봐.

나만 해도 상상이 나를 더 무섭게 하는 사람이니까.

1998년 여름 교실에 뱀이 들어와 장판 아래서 꿈틀거린 적이 있다.

마침 선배들이 왔던 때였는데,

용감하게 잡아 멀리 보내주었더랬다.(, 상철형 세상 떠난 지도 벌써 수년이네...)

당장 학교 건물의 아래쪽으로 난 구멍이란 구멍은 다 막았더랬다.

2009년 여름 용찬샘이 머물고 있을 때

교무실의 복도 바깥문으로 들어왔음직 했던, 교무실에서 나타난 큰 뱀을 만났더랬다.

학교 뒤란과 대문께에서 아주 굵고 긴 뱀이 몇 차례 목격된 바가 있었던 해였다.

사람들이 같이 작은 일정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놀랄까 하여 조용히 용찬샘을 불러 해결을 부탁했더랬네.

이제 만날 때가 되었던 모양일세.

살충제며 제초제며 농약으로도 갈수록 그들의 자리가 드물지만

독수리 매 같은 맹금류와 오소리 족제비 같은 천적이 없어서도 뱀 개체수가 늘어난 듯.

달골만 해도 물꼬가 농약을 쓰지 않는 것이 그들의 방문에 기여했을 것.

현철샘이 물꼬에 있을 리 없는 살충제와 제초제를 구해 와 

건물 뒤란이며에 뿌리다, 혹여 아이들과 만날까 봐.

 

(, 십년감수 때문에 나이와 관련한 낱말들을 보다가 터울이란 말에 멈췄네.

터울이란 한 어머니의 먼저 낳은 아이와 다음에 낳은 아이와의 나이 차이’.

그러니까 어머니가 같은 자식들 간의 나이 차이를 나타낼 때 쓰는 말이었다.

배다른 형제자매 사이에도 쓰는 말이 아니었고,

남남 사이에 쓰는 말도 아닌.

그럴 땐 그냥 몇 살 차이라고 말해야 하는.

하지만, 말이란 게 시대성이 있지 않나.

이미 터울은 그저 나이 차를 의미하는 뜻으로 변한 듯도.)

 

오늘도 달구경은 글렀다. 어제 슈퍼문이 지구에 찾아왔더랬다. 이리 기가 다 빠져서야...

무데기를 봤으니 한두 마리쯤은 거뜬히 두 눈 다 뜨고 볼 수 있을지도.

어제오늘은 뱀으로 시작해 뱀으로 끝나는 이야기일세.

자꾸 내뱉으니 가벼워지는? 그러기로.

정녕 친해지기 어려운 그들이라.

본의 아니게 무례해져 버린 것에, 그들의 아름다운 시간을 훼방놓아, 미안하지만 

그것이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되는 건 또 아니라네.

"똑똑, 뱀 식구들, 가까이 살기야 하겠지만 서로 다른 길로 다닙시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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