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해리의 봄날> 여는 날, 2008. 5.11.해날. 맑으나 기온 낮고 바람 심함


1. 계획(3월 10일)

최근 두어 해 '산촌유학' 프로그램이 나와
여러 곳에서 진행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일본까지 연수를 가서 들여온 개념이라 했는데,
아마도 '사도코'에서 출발한 게 아닌가 짐작합니다.
엄마가 약하다든지 병들었다든지 혹은 아이가 많다든지 하는 사정으로
흔히 시골 가정에 양육비를 주고 아이를 맡기는 일이 있었는데,
상당히 부유한 집안에서도 유모를 들이는 대신
이 같은 방법으로 양육을 하였지요.

“봄 계자도 없어졌는데...”
“방학처럼 봄 가을도 물꼬에서 보내면 좋을 텐데...”
“아토피는 흙을 밟는 게 최고라는데...”
지난 해 몇 부모님들의 바람이 있어왔지요.
거기에
캠프의 경험이 아니라 이곳 일상에 대한 날들을 나누는 것도 참 좋겠다는
물꼬의 뜻도 더해졌습니다.

하여
대해리에서 봄날의 이레를 보낼 몇 아이를 부릅니다.
흔히 산촌유학은 농가에 머물며 지역에 있는 일반 학교로 아이를 보내는데
물꼬는 학교가 이 안에 있는 게 차이이겠습니다.
이곳 상설학교 아이 셋이 보내고 있는 그대로
공부하고 일하고 노는 시간들이 될 것입니다.
산이 계곡이 들이 훌륭한 선생이 되어줄 테지요.

2. 공지(4월 30일)

< 대해리의 봄날 >

불룩불룩 산이 꿈틀거립니다.
흐드러진 봄꽃들이 날린 뒤입니다.
지리한 한낮을 우는 검은등뻐꾸기며
더덕향을 따라 저녁답에 우는 개구리며
존재하는 모든 것이 훌륭한 스승인 이곳 봄날에
아이들과 깊이 만나는 자리 하나 마련합니다.
고마울 일입니다.

- 때: 2008년 5월 11일 해날~17일 흙날(6박 7일)
- 뉘: 계절자유학교를 경험했던 아이들 가운데 예닐곱(4-6학년)
- 속: 물꼬의 일상 흐름 따라 공부하고 일하고 놀고!
(참가가 결정되면 속틀(시간표)을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3. 함께 하기로 결정된 아이들(5월 5일)

5년 여 1(석경이), 남 1(최윤준)
4년 여 2(최지인, 조유나), 남 3(김현진, 정재우, 박동휘)
그리고 새끼일꾼 최지윤(고1), 류옥하다(남, 4년)


아이들이 옵니다.
남자 어른들이 달골 창고동으로 청소를 하러 가고
아이는 일찌감치 제 준비를 끝내고 이곳저곳을 살피고 다닙니다.
마치 제 손님이라 이거지요.
그리하야 ‘대해리의 봄날’을 시작합니다.
“하다는 벌써 경로당 앞에 나가 있어요?”
“아까부터 나갔네요.”
젊은할아버지도 대문 앞에 가 서계십니다.
부랴부랴 가스불을 댕겼습니다.
아이들이 오면 전체 안내를 하는 시간 동안 음식을 하면 되니까요.
그렇게 갓해서 먹을라니까요.
“아무도 안 내렸어요.”
아, 그제야 생각이 난 겁니다.
이런, 언제나처럼 애들이 점심에 들어오는 줄 알았네요.
“엄마가 그런 착각을 다해?”
그러게요, 습관이란 얼마나 무서운지...

졸지에 여유가 생겼습니다.
식구들끼리 밥을 먹고 한갓진 오후를 보내고
(그래도 사실 늘 일이지요)
교무실에 가서 교무행정 일들을 좀 하고...

지윤이형님이 영동역에서 아이들을 모다 데리고
대해리 들어오는 4시 10분 버스를 타고 왔습니다.
가마솥방에서 저녁밥상을 준비하며 안내를 합니다.
함께 있는 동안 누가 이곳에 있는지에서부터
(아이들 여덟, 새끼일꾼 하나, 공동체식구들, 그리고 가마솥방을 맡을 전주할머니)
지내는 동안 염두에 둘 일들을 몇 가지 알리지요.
모내기를 위해 두름을 하고 있는 때여
논두렁을 함부로 올라서서는 아니 되며,
늘처럼 마을 어른들 아든 모르든 인사를 건네고,
해우소는 가능한한 바깥 큰 화장실을 쓰는 걸 시도해보고,
통로는 늘 어떻게 정리하며,
간략한 전체 속틀은 어떠하고...
“재미가 좀 덜할지도 몰라요.
아무래도 많은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대동놀이 같은 즐거움은 없겠지요.
하지만 이 규모대로의 즐거움이 있을 겁니다.”
왔던 아이들이라 편합니다.
그리고 그만큼 또 시끄럽습니다.
누구보다 지윤이가 참 잘 왔지요.
일곱 살 때부터 본 아이, 고교 1년생이 되었습니다.
웬만한 어른 대여섯보다 나을 걸요.
안내 뒤 동네 한 바퀴 학교 한 바퀴 저들끼리 돌고
해지는 저녁 마당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계곡 탐험도 한 번 다녀올랬는데,
뭐 아직 시간 많으니...

“얘들아!”
부르니 죄 와서 쟁반을 나릅니다.
해는 지고 어둠은 오기 전,
산 그림자를 두르고 책방 현관 앞 마당가의 감나무 아래 모였지요.
평상에 둘러 앉아 종대샘과 기락샘이 불판 하나씩을 안고 고기를 구웠습니다.
아이들 눈이 뎅그래졌다마다요.
참나물을 베 와서 무치고
열무를 솎아다 겉절이를 하고
버섯된장국도 끓여서 냈더랍니다.
그 즈음 종대샘이 전주할머니를 모시고 왔지요.
아이들이 지내는 동안 함께 머물며 바라지를 하실 것입니다.

“비닐주머니를 하나씩 줄게.”
아이들이 속옷과 날적이, 그리고 세면도구를 챙겨
어둑한 산마을 길을 걸어 달골로 향합니다.
계자의 어느 밤 마을길을 돌아 밤 마실을 갈 때의 풍경이랑은
또 사뭇 다릅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무리들이었지요.
1층 ‘오신님방’은 남자애들 다섯이,
2층 ‘시방’은 할머니와 지윤이가.
‘바람방’은 여자 애들 셋이 쓰기로 합니다.
“창고동도 내놓게.”
3층 다락방 더그매와 창고동도 통째로 아이들에게 내주었지요.
온 밤을 떠들썩함으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집도 놀랬고, 둘러친 숲도 놀랬을 겝니다.

‘영동역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처음에 봤을 땐 아직 안 친해져서 서먹서먹해서 애들이 차분하고 다 조용조용해보였다. 버스를 타고 오는데 한 곳에 모여 앉으니까 재잘재잘 정말 버스 타고 들어오는 1시간이 이렇게 짧았던 건 또 처음이다.
애들끼리 금새 친해져서는 밤에 창고동에 가서 8명이서 계자 때와는 다른 대동놀이를 하고 놀았다. 술래잡기도 하고 창고동이 아주 무너지는 줄 알았다. 다락방에서 공기놀이도 하고.’(새끼일꾼 지윤이의 하루 정리글에서)

온 아이들도 맞은 식구들도 모두가 달뜬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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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5.11.해날. 맑음

오늘은 아이들이 왔다. 온 아이들을 맞이하고 그 다음 머리 짤른 걸 보여줬다. 온 아이들 중에는 동휘, 현진 등이 있었고 여자는 경이누나, 지인이 등이 있었다. 그 아이들이 저녁쯤에 와서 같이 고기를 구워먹었다. 여기서 많은 애들(7명)과 고기를 먹는 건 처음이었다. 다 4~6학년이었다. 지윤이 누나도 왔는데 학교를 다니기 싫어서 여기 봉사도 하고 몇일쯤 또는 몇 달쯤 여기 있는다고 했다.
가장 재밌었던 일이 하나 있었다. 숨꼬방에서 베개싸움을 하는 거였다. 너무나 재밌는 날이었다.

(4년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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