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해날 찬 바람, 뿌연 하늘

조회 수 1886 추천 수 0 2004.12.17 21:05:00

12월 12일 해날 찬 바람, 뿌연 하늘

공동체 식구 혼례가 있었습니다.
상범샘과 희정샘이 드디어 식을 올렸네요.
학교에서 소박하고 예쁘게 한 잔치라면 더할 나위 없었겠으나
도저히 힘이 안돼 읍내 나가 했지요.
"시골에선 읍내가(읍내에서 하는 혼례식이) 최고지!"
한 선배는 그리 유쾌하게 웃었더랍니다.
밥알식구들은 정신없는 아침에도
학교 구석구석을 살핍니다.
널린 나무도 쪼개어 쌓고
쌓인 무도 채를 썰겠다 하다 집에 숙제처럼 가져가서 말려온다 꾸리고...

애들이랑 뭘 할라면 역시 밥부터 멕여야 합니다.
서둘러 가서 점심 먼저 먹고
한 시에 시작된 혼례식에 들어갑니다.
우리들의 일어샘 고가 스미코도 오고
학부모 지선네 다온네 지용네 지영네 무열이네 식구들도 함께 하고
아주 오랜만인 샘들에서부터 품앗이들이 우르르 오고...

아, 몇 해만에 얼굴 본 논두렁 서성희님이 그랬습니다.
"기락샘 공부시키느라고 뼈 빠지는 거 아니예요?"
이런, 그런 공부라면 안시킨다 하였지요.
"그 학교에서 학비 나오고 생활비도 나와요.
그거 아껴서 우리들 용돈까지 주는 걸요"
돈 갖다 바치면서 하는 공부라면 때려쳐야 한다,
그런 공부 우리는 안한다 하였답니다.

아이들은 축가로 춘향가 가운데 사랑가를 불렀더이다.
실전에 강한 놈들입니다.
가난한 우리들이 한 최고의 선물이었지요.

잔치 음식에다 저녁에 빵이며 과자류를 먹어댄 아이들,
속이 니걸거리고 더부룩해 죽겠다고들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한 밤 뒷간 문지방이 닳았습니다.
이상한 것만 들어가면 이제 배가 먼저 안다지요.

경로당에도 잔치를 알리느라 고기랑 술이랑 떡을 보내고
마을에도 음식을 돌렸습니다.
담에 하는 공동체 식구 혼례는 꼭 학교에서 하자 합니다.
예쁜 학교에서 예쁜 아이들과 마을 어르신들 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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