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18.나무날. 맑음 / 5.18과

조회 수 902 추천 수 0 2017.06.13 01:09:50


마을은 논일이 한창이다.

여름 기온이 일찍 찾은 봄 들은 자라다 만 것들이 꽃을 피우느라 피투성이 같았더니,

모는, 우리들의 벼는, 무사히 쌀이 되어 입으로 올 것인지.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늦은 밤 학교로 들어오는 차 안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를 들었다.

5월 광주가 남긴 상처를 안고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위로하며 과거를,

광주의 희생 위에 민주주의가 버티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이 정권도 그 위에 서 있다며 현재를,

새 정부는 5.18 정신 위에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복원할 것이라는 미래를 짚었고,

그리고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가 될 것을 영령들 앞에서 천명한다 다짐했다.

명문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혼자 목청껏 부르며

화염병 뒹구는 거리에서 보냈던 젊은 날을 떠올렸다.

2주기 때 계엄군에 희생된 시민군 윤상원씨의 영혼결혼식을 기려 썼던 백기완 선생의 ‘묏비나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되었다.

임은 저 북녘의 누구이며 새날은 그 어떤 날이라고 금지한 10년,

정작 북한에서는 금지곡이었다.

긴 세월 재벌개혁을 주장해왔던 김상조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되었다는 소식도 듣는다.

이런 날이 오더라, 왔더라.

이런 시대가 결국 왔다.

사람들이 뉴스 보는 재미로 즐겁다는 요즘이라지.

지난 10년 뉴스를 끊은 게 나만이 아니었던.

이런 시간을 불러온 광장의 벗들에게 찬사로,

함께 있지 못했던 시간에 미안함으로 고개 숙이나니.


날이 더웠다, 고맙게도,

오늘 우리가 떼오 오랑쥬와 다과를 놓고 놀 거라는 걸 어이 아시고,

마실거리가 빛날 수 있도록.

주에 한 차례 하던 중학교 ‘예술명상’수업이 오늘 닫는 날.

(초등은 가을학기까지라 12월 7일이 마지막 수업.)

학년별로 5~7교시를 하던 아이들이 3시간 동안 강당에서 내리 통합수업을 하기로 했다.

강강술래를 익히고 한바탕 놀았고,

차를 달여 냈고,

갈무리 시간이 이어졌다.

“내내 뒷배로 바라지해주었던 흥수샘, 고맙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숲속 학교였는지,

얼마나 고운 아이들이었는지,

얼마나 든든한 교장 선생님의 지지였는지...


가을학기와 내년학년도도 부탁하셨다.

그런데, 가을학기엔 책 원고로 분주할 테고,

7, 8월께 중앙아시아를 달포 다녀올 일도 예정 되어 있고,

내년 학년도엔 아마도 한국에 있지 않을 일이 성사될 듯도 하여

약속을 못하였다.

다시 불러주어 고마움.


수업을 다녀와 짐을 다시 부리고 정리하는 데만도 1시간.

아주 이사를 하였더랬네.

아이들 속에서의 정성스러움, 그것으로 충분한 보상이었다!

나를 선생일 수 있도록 해준 아이들,

고마운, 고마운, 고마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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