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춥다, 과수들이 냉해를 입을 수도 있을 만치.
낮엔 그토록 강한 햇살이었다.
바람마저 없다면 이 날들을 어이 건널까,
장마에 볕들 날 없으면 어떻게 건너가랴 하듯.
아침, 계곡을 따라 삼봉산 올랐다.
봄이면 시작되는 내 몸의 허망한 가지에서 함부로 돋아난 그 막무가내의 푸른 잎,
어느 시처럼 참말 막무가내의 푸른 잎들.
거기 깃든 시인 있고, 간밤에 황대권 선생님과 묵었다.
딸기를 따며 숲길을 헤쳤고,
시인은, 제 집처럼 계곡을 쓰는 시인은
저기가 옥녀탕이야, 저거 옥선생 줄게,
재산이 불어버렸다.
소나기가 오다 마음이 바뀌어 돌아갔고,
계곡에 발 담그고서 노래 한 소절을 읊다가
황대권 선생님이 셋을 화면에 담아 기념차고 손전화를 꺼냈는데,
어, 왜 안 돼?
되는 거야?
됐다!
하지만 짤린 휘리릭 서너초의 깨진 영상 뿐이었네.
그게 우리 셋 삶의 자료 하나 되는 그런 내일 있을 테지,
우리 생이 거기 남아 아득하게 손짓하는 그런 내일이 올 테지.
오지에 갤러리가 하나 생겼다.
아이들과 걸음하면 좋겠다, 답사.
개관기념전이 멀리 사는 이도 불러들일 만한 당대 최고의 화가.
반갑고 좋았다. 두어 해전 한가람에서였지 아마, 좇아가서 본 적도 있다.
그러나, 정작 원화는 몇 점 되지 않아 실망했던.
그것도 아무런 설명없이 그리 전시회를 열었던.
혹시나 하고 갔던 오늘. 무참했네. 원화는 단 한 점도 없었다!
구색만 겨우 갖추고 흉내만 냈다는 느낌, 사기 당한 것 같은.
적어도 프린트임을 말은 해주었어야.
그래도, 원작을 보는 즐거움은 없어도
블라디미르 쿠쉬의 상상과 반전의 재미를 읽는 것으로 족하기로.
사내에 교회를 두고 땅을 그 명의로 한 것도,
갤러리를 만들어 문화사업입네 하는 것도,
다 돈 버는 한 방법이라며 수근대는데...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
그래도 명색이 갤러리인데 그림들을 불러들여오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