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골 마당 풀을 뽑는다.

사람이 있어도, 아침마다 조금씩 뽑아내도 자라는 속도를 감당 못할 것을

비 많은 여름날들 비운 자리 옳다구나 하고 키 큰 것들.

문득 이곳을 지켜준 너들이구나 싶은 거라.

가끔 풀을 뽑다보면 적잖이 적대감 같은 게 오르기도 하는데,

오늘은 정겹기도 한 풀이었네.

심지어 달겨 드는 모기들까지.

고라니와 멧돼지와 너구리와 족제비와 개구리와...

있어준 내 이웃들이어 고맙다.


학교로 내려와 공사기간동안 흙집을 나가있던 물건들을 들인다.

나온 김에 닦고 볕을 바래고.

공사 뒤 청소를 하느라 학교아저씨 퍽 힘들었으리.

물건들마다에 깃든 아이들 흔적도 더듬는다,

칫솔통에 꽂혔던 칫솔, 샤워타올, 비누...

늘 쓸고 닦은 샘들의 손길도 생각한다.

고마운 동지들.


아버지 장례를 위해 잠깐 들어온 걸 빼면

한 해 동안 남미며 유럽의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온 원석샘이 인사를 왔다.

사업구상에 그것을 구현할 방법들을 모색한 길이었을.

누구라도 그와 즐겁지 않았을까.

20년 전 물꼬 안의 연극터를 같이 하며 음악과 무대감독을 여러 해 맡았던 그다.

안젤로 부란디알디도 그를 통해 알았고,

스쳐갔던 음악을 새로이 듣게 해준 이도 그였더랬다.

목공실에는 그가 건축일을 하며 썼던 에어 컴프레셔며 여러 공구들이 그대로 있었다.

지난해 물꼬 일을 도우며 실어왔던 것들.

물꼬에서 같이 일했던 지영샘과 혼례를 올렸고,

물꼬와 비슷한 결의 학교를 괴산에서 수 년 꾸리기도 했다.

지영샘은 스위스에서 슈타이너를 공부 중.

긴 시간 건너 다시 물꼬에 손 보태는.

이번에 동생과 사업을 시작했다.

과거로 전화하기!

부처에게 예수에게 노무현에게 과거에 떠난 누군가에게

우리는 더러 할 말을 가지고 산다.

그럴 수 있다면.

“가슴이 찡하다.”

어떤 그림으로 나올지 기대가 크다.

하룻밤을 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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