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시 아침수행(해건지기).

오전에는 책 몇 줄을 읽고, 책상 앞 일들을 한다.

11시 된장집 청소를 시작했다.

점심 뒤까지 이어져 세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으윽, 벽과 바닥의 곰팡이, 대야의 찌든 때, 하수구의 오래 묵은 때.

아마도 지난 1년 한 번도 되지 않았을 청소.

학교 아저씨가 묵는 방이 있긴 하나

다른 방과 욕실까지 손이 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학교는 개인이 청소를 깔끔하게 하고 살기 지나치게 너른 공간이잖던가.

두고 간 휴지통에 쌓인 쓰레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한참이나 된장집까지 손이 이르지 못하고 있었던.


그 사이 간장집 처마를 바치는, 흐느적거리던 기둥 넷이 치워지고 있었다.

어제 들어온 무범샘이 학교아저씨와 하는 작업이었다.

"벗겨, 말어?"

기둥으로 쓸 낙엽송 껍질을 어쩔까 하는 질문이었다.

그저 기둥이 세워지는 것만 반가워 그냥 두라 하다

그래도 이왕 하는 거 깔꿈하면 좋지.

껍질을 벗겨 매끈해진 기둥이 세워졌다.

"목수 4년차, 밥 벌어 먹을 만하시네!"


밥은 늘 귀하다.

밖에서 사람들이 들어왔다고 그리 달라질 산골 밥상도 아니나

점심으로 묵은김치찜과 부추전과 달걀말이를 냈고,

저녁으로 된장찌개와 돌나물, 파드득나물, 부추, 머위나물로 초고추장비빔밥,

그 위에 달걀후라이를 얹었다.

파전에 막걸리도 나왔더라.


저녁상을 물리고 산마을을 걷다.

사람들이 오면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고 싶다.

이렇게 걷는 시간이, 그것도 두메를 걷는 일은

다른 아무것도 더 필요치 않은 훌륭한 치유 일정이 된다.

그리고, 우리들이 충분히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기도

장하다, 살아내느라고, 그런 응원이 되기도 하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476 2023. 2.17.쇠날. 맑음 / 다시 백담계곡으로 옥영경 2023-03-15 270
6475 2023. 7.21.쇠날. 살짝 찌푸린 맑음 옥영경 2023-08-04 270
6474 2020. 5.29.쇠날. 맑음 옥영경 2020-08-12 271
6473 2020. 6.21.해날. 맑음 옥영경 2020-08-13 271
6472 2020. 7. 2.나무날. 흐림 / 학교를 다시 묻는다 옥영경 2020-08-13 271
6471 2023. 4. 9.해날. 맑음 옥영경 2023-05-09 271
6470 2023. 5. 5.쇠날. 비 옥영경 2023-06-09 271
6469 2023. 6.13.불날. 맑음 옥영경 2023-07-21 271
6468 2023. 6.23.쇠날. 맑음 옥영경 2023-07-26 271
6467 2020. 6.13.흙날. 비 옥영경 2020-08-13 272
6466 2020. 7. 1.물날. 종일 흐리다 아주 잠깐 해 옥영경 2020-08-13 272
6465 2020. 7. 3.쇠날. 흐리다 비 옥영경 2020-08-13 272
6464 2020. 7.19.해날. 반짝 해, 흐림 옥영경 2020-08-13 272
6463 2022.12.13.불날. 간밤 눈 내리고 꽁꽁 언 종일 옥영경 2023-01-06 272
6462 2023. 6.10.흙날. 멀리서 천둥치고 옥영경 2023-07-21 272
6461 2020. 6.15.달날. 갬 옥영경 2020-08-13 273
6460 2021. 5.16.해날. 비 옥영경 2021-06-18 273
6459 2021. 5.20.나무날. 비 옥영경 2021-06-22 273
6458 2022.12.16.쇠날. 꽁꽁 언 세상 / 손두부 옥영경 2023-01-06 273
6457 2023. 7. 6.나무날. 맑음 / 트라우마가 미치는 영향이 남녀에게 다르다? 옥영경 2023-08-02 27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