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23.달날. 갬

조회 수 513 추천 수 0 2019.10.31 23:16:56


겨우 이틀이었다.

그러나 긴 이틀이었다.

비바람은 거칠었고, 때로는 집이 통째 훌훌 종잇장처럼 날릴 것 같았다.

어쩌면 집이 조각배처럼 둥둥 떠내려갈 것만도 같았다.

집이란 게 별 건가,

지붕 있고 벽 있고 전기 들어오고 물 들어오면 된다던 말을 생각했다.

바람 부는 날 집안에 있을 때, 설혹 그 안에 온기가 없어도

고맙고 다행할 것이었다.

비바람 치는 데 몸에 그 비와 바람이 닿지 않아 고마웠다.

되는 것도 없는 세상, 가능성이 낮은 것에 배팅을 못할 건 무언가라던 말처럼

최소치가 최대치 못잖은 행복을 줄 수도 있다.

아니, 준다!

그게 생이다.

오늘은 이틀 만에 찾아온, 그것도 아주 잠깐 보인 아침햇살에

고마웠다, 완전체 같은 행복이었다.

그게 생이다.

그게 생이어도 된다.

얼마쯤 안 되는 빛나는 기억으로 고단한 생을 건너가는 일,

그게 사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므로 지금 빛나는 날을, 겨우 조금이라도, 만드는 지금에 푹 빠지기.

날은 다시 흐려졌지만, 그 볕으로 충분했다.

다시 한 주를 시작한다.

하루하루는 긴 데 다시 금세 새 한 주가 온다.

금세 한 달이 지난다.

다시 새해가 온다, 와 있다.대단한 목표를 두지 않아도

이렇게 나날이 하루를 해치우는 것으로도 충분할 사람살이겠다.


학교 마당 가장자리, 그러니까 본관 앞으로 깔린 고무매트 가로는

풀이 억시게 다부룩 자랐다.

거참, 그 생명력이란 정말...

어쩜 정의로울 만치 강단지게 난 것들.

연대도 그런 연대가 없는.

끊어내기가 패내기가 다 아깝다싶을 만치.

그러나 여기는 사람의 자리.

다시 그 곳을 잔디를 심으려 패놓고

비가 이틀 그리 내렸던 거다.

파놓은 풀들을 더 바깥쪽으로 밀고,

(좀 마르고 나면 흙을 털어 멀리 치울 것이다.

흙은 남겨서 잔디를 덮어줄 것이고)

골을 팠다.

잔디를 놓고, 진 흙을 채워도 될 것이지만

좀 말렸다 마른 흙을 비비며 채울 게다.

이곳 일이 보였나,

다른 곳에서 작업하고 남은 잔디가 실린 차가 들어왔다.

저녁을 드시고 나가면서 그 잔디를 이곳에 부려주었다.

마침 고무매트 풀을 맸더니 그 자리에 딱 놓을 만치 잔디가 생겼네.

이른 저녁밥상을 차렸다.


차모임이 있었다.

핑크 뮬리와 고마리 한 가지가 다화로 꽂혔다.

홍차를 달인다.

인도의 다즐링과 닐기리와 아삼과 스리랑카의 캔디와 누와라엘리야를 마신다.

빵을 다식으로 내놓았다.

스리랑카.

스리Sri는 눈부시게, 현기증이 나며, 찬란히 빛나며, 아름다운, 거룩하다는 뜻의 형용사.

랑카 Lanka는 땅

그러니까 스리랑카는 눈부시게 빛나는 땅.

그 모양도 보석처럼 빛나는 눈물방울인,

인도로부터 29km 떨어져있는 인도양의 작은 섬,

누와라엘리야도 찾아보니 고원도시, 빛의 도시라는 의미가 있네.

때로 차를 마시는 일을 무슨 대단한 자랑거리로 삼는 이들이 매우 거북하다.

차는 마시는 거다.

차car가 재산의 상징이 아니라 차로서의 기능을 할 때

차tea가 가시로 전락하지 않고 차로서의 기능을 할 때

제자리를 잘 잡은 물건처럼 보기 좋더라.


조국 장관 자택에 아침 9시에 시작한 압수수색이 저녁 8시까지 이어졌다.

“강제수사를 경험한 국민의 심정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그가 말했다.

대통령이 미국 순방을 떠나자마자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의 집이 털리고 있다.

한 나라의 장관도 맥없이 그리 당하는구나.

그의 잘잘못을 떠나 그 큰 권력도 그럴 수 있을 진대

한 개인은 어떻겠는가.

그야말로 검찰의 막강권력!

사람들의 위기의식은 그런 데서 나왔을 것이다.

검찰개혁이, 그리고 이 일이 어디로 갈지...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476 2014. 7. 6.해날. 낮은 하늘 / 이니스프리로 옥영경 2014-07-16 1911
6475 6월 28일, 그럼 쉬고 옥영경 2004-07-04 1911
6474 2007.11.10.흙날. 썩 맑지는 않지만 / 지서한훤(只敍寒暄) 옥영경 2007-11-19 1910
6473 2011. 1.22-23.흙-해날. 맑음, 그 끝 눈 / ‘발해 1300호’ 13주기 추모제 옥영경 2011-02-02 1908
6472 2008. 5.4-5. 해-달날. 비 간 뒤 맑음 / 서초 FC MB 봄나들이 옥영경 2008-05-16 1908
6471 2005.10.29.흙날.맑음 / 커다란 벽난로가 오고 있지요 옥영경 2005-11-01 1907
6470 5월 25일 불날, 복분자 옥영경 2004-05-26 1906
6469 일본에서 온 유선샘, 2월 23-28일 옥영경 2004-02-24 1905
6468 <대해리의 봄날> 여는 날, 2008. 5.11.해날. 맑으나 기온 낮고 바람 심함 옥영경 2008-05-23 1904
6467 39 계자 아흐레째 2월 3일 옥영경 2004-02-04 1904
6466 12월 13일 달날 맑음 옥영경 2004-12-17 1900
6465 39 계자 엿새째 1월 31일 옥영경 2004-02-01 1899
6464 2005. 10.23.해날.맑음 / 퓨전음악 옥영경 2005-10-24 1897
6463 39 계자 나흘째 1월 29일 옥영경 2004-01-31 1897
6462 125 계자 이튿날, 2008. 7.28.달날. 빗방울 아주 잠깐 지나다 옥영경 2008-08-03 1891
6461 12월 14일 불날 맑음 옥영경 2004-12-17 1889
6460 2008. 3.14.쇠날. 갬 / 백두대간 6구간 가운데 '빼재~삼봉산' file 옥영경 2008-03-30 1888
6459 불쑥 찾아온 두 가정 2월 19일 옥영경 2004-02-20 1884
6458 6월 7일, 성학이의 늦은 생일잔치 옥영경 2004-06-11 1881
6457 12월 12일 해날 찬 바람, 뿌연 하늘 옥영경 2004-12-17 187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