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4. 6.달날. 맑음

조회 수 496 추천 수 0 2020.05.28 02:15:26


 

저 건너 산 밑으로 기차가 가네...”

동요가 절로 입에 올려지는,

여기는 기차가 지나는 소리가 끼어드는 집.

한 초등학교의 사택에서 맞는 첫 밤이다.

학교 바로 곁, 작은 동산 같은 낮은 산을 끼고 넓은 밭 가운데 앉은 자리.

인가들이 거리가 좀 있는.

멧골 물꼬에 견주면 대도시라할 만도 하건만

낯선 곳이라고 이국의 여행지에서 맞는 첫 밤처럼 얼마쯤의 두려움과 얼마쯤의 걱정과

그보다는 더 큰 아이들에 대한 설렘으로 맞은.

기표샘이 농처럼 그랬더랬다, “가야 해? 돈 많이 줘?”

아니.”

근데 왜 가?”

애들이 있다잖아, 내가 건사할!”

그거 말고 무슨 큰 까닭이 있겠는지.

선생은 아이들 가르치는 보람으로 사는.

오늘부터 8월 말까지 주중에는 제도학교 지원수업,

주말에는 물꼬 일정을 꾸려간다.

내가 언제 또 이리 장기간 제도학교에 머물 짬을 내볼거나...”

내가 마음 빚을 진 한 교장샘의 간곡한 부탁도 있었던 바.

 

아침 05:50 눈을 떠서 사이집 여기저기 꺼내놓은 물건들을 수습하다.

07시 학교에 들어서 습이들을 보고 밥을 주며 한 주를 당부하다.

바위취를 뒤집어쓴 돌계단 위로 오래 쌓인 낙엽들을 좀 정리하십사

학교아저씨한테 숙제를 주고 마을을 빠져나오다.

바람이 마른 먼지를 몰아오고 있었다.

국도를 타면 1시간 반, 오늘은 첫날이라고 피로를 줄이려 고속도로로 1시간 10분 소요.

본교 사택에 도착해서 냉장고에 몇 가지 먹을거리를 넣고 옷가방을 부려놓고,

08:40 출근시간에 맞춰 10분 전 교무실로.

이어 본교 특수학급에서 그간의 분교 우리학급 업무상황 안내받고.

 

코로나194차 휴업 사흘이라(오늘부터 물날까지).

그리고 온라인수업으로 일단 개학일정이 잡히다.

3 39일 나무날부터,

1·2, 1·2, 4~616일 나무날부터,

1~320일부터,

각 시작일정의 앞 이틀은 적응시기.

유치원은 무기한 연기.

 

회의와 연수와. 내가 보낼 제도학교의 많은 날이 이럴지도 모를.

09:40 원격수업에 즈음하여 운영계획 안내와 논의.

10:00 온라인수업 연수.

정오에 배달된 도시락으로 낮밥들을 먹고.

13:20 개정된 학업성적관리며에 대한 안내 그리고 논의.

학부모면담, 긴급돌봄, 아이들학습지원 꾸러미 만들기(이전에 보낸 것과 겹치지 않게)에 대한.

 

보건용마스크(KF 80이상) 교육청 비축량 없이 모두 학교로 배부하오니

부족수량에 대해서는 학교별 확보(1인당 2) 하시기 바람.’이라는 문장을 읽는데

정말 전시상황 같은.

코로나19랑 멀었던 물꼬를 떠나 세상으로 나오니 몰아치는 바람이랄까...

 

16:40 퇴근에 익숙해지지 않는.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아니 아직도 해 중천인 낮인 걸.

물꼬의 들일은 어둠에 밀려서 끝이 나고,

밤 열 시까지 교무실이나 가마솥방 불이 꺼지지 않는 날이 숱하며,

하루는 야삼경에야 마감을 할까 말까.

쫓기듯 퇴근할 일이 드문.

한동안 여기 구조로 사는 호흡 만들기.

이곳에선 아이들과 어떤 나날일 것인가...

 

그리고,

주인이 비운 마당에서 제습이와 가습이가 보낼 밤은 어떤 밤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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