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오름이 있는 대망의 나무날.

겨울에는 눈 덮인 마을 뒷산으로 짐승들 발자국을 좇아 모험을 떠나고,

거개 여느 해 여름이면 1,242m 높이의 민주지산을 오른다.

어김없이 민주지산으로 가겠다면 들머리까지 버스로 10여 분 이동,

버스에서며 물한계곡 주차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어쩌나.

지금은 코로나19의 시절, 우리들은 이동 시 마스크를 하겠지만

(그간 부모님들의 동의 아래 교문을 닫아걸고 모두 마스크를 벗고 생활했다.

대문 밖을 나가는, 잠시 마을로 나가 달골에 오르는 어제 아침 해건지기의 길지 않은 순간도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이동했다. 이런 게 이리 당연히 여겨지는 세상에서 살 일이 있을 줄이야!)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으로 가는 부담이 만만찮다.

곳곳에서 오는 등산객들일 거라.

게다 민주지산 쪽새골 지름길로 오른다 해도 물길을 세 차례 건너야 하는데,

긴 장맛비, 그것도 억수비로 내리기 몇 날,

계자를 시작할 때만 해도 콸콸콸 달리는 계곡물이었다.

지금은 수위는 가라앉았어도 기세가 만만찮을.

지난해 여름은 산을 나올 녘 쏟아지는 소나기에 흠뻑들 젖고

버스도 놓쳐 고생들을 했더랬다.

그래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는 산오름이라.

왜냐하면 특정한 일정을 진행하지 않아도

산을 오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배움의 시간이니까.

우리의 모험은 배움과 비례해 왔으니까.

그래서 안에서 할 것 얼마든지 많은데도 굳이 하루를 다 들여 산으로 갔더라지.

일단 김밥은 쌉시다. 내일 아침 날씨 상황, 아이들 상태를 보고 결정합시다.”

어제 샘들 하루재기의 마지막은 그랬다.

아무래도 민주지산은 어려울 거다, 대해골짝을 중심으로 걷는 걸로 하자,

정도가 계획의 전부였던.

약품통이며 화장지며 여벌 옷이며 수건이며

산오름 간식이며 물통이며들은 이미 꺼내놓았다.

 

버스 시간을 맞출 게 아니라면 6시에 샘들이 싸는 김밥을 미뤄도 되리.

7시에 모이기로 했다.

더 천천히 해도 돼.”

그렇다. 오늘은 따로 해건지기를 할 것도 아니다.

천천히 걸으며 몸을 풀고 속도를 내도 될 테니까.

아이들은 나흘을 보낸 고단을 푸느라 그런지, 먹구름 덮힌 어둔 아침이어 그랬는지

다른 날과 달리 늦게까지 뒹굴고 있었다.

 

아이들 입을 옷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길이겠다.

큰 도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 쪽으로 들 예정이라

비를 맞더라도 금세 안전지대에 내려설.

신발은 잘 살펴야지. 몇몇의 젖은 신발 대신 물꼬 신발을 챙겨 신기고.

안내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집중하기며,

우리가 어떤 여정을 가게 될지 모르지만

아직 우리도 이 걸음을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지만,

그저 쿵자쿵 다음 발, 쿵자쿵 다음 발을 내디디며 갈 것이라.

산이 우리를 인도해줄 게다.

산에서 우리는 그간 잊고 살았던, 그래서 잃은 줄 알았던 감각들을 알게 될 것이다.

 

세인샘이 낮버스로 들어올 테고(밖에서 오는 사람이라 대문에서 출입단계를 엄격하게 거치고),

현종이가 아직 기침할 때마다 가슴이 따끔거린다 해서 남고,

어제 아침 열이 났던 승연이가 아직 기운 없어 발이 불편한 하다샘과 학교아저씨와 남았다.

태희샘과 수연이 도중에 돌아올 거고

세영이는 발목이 불편하다 했으나 시도해보자 했다.

태양이는 배가 좀 가라앉았다 하니 합류.

남은 사람들에게

청소하고 빨래 걷고 빨래 널고 낮밥 챙겨먹고 저녁 때건지기를 위한 야채 다듬고,

그리고 팥빙수 먹을 준비를 해주십사 하고...

 

큰 아이고 작은 아이고 수연이가 휠체어를 탈 수 있도록 모두 도왔다.

출발.

세상에! 저 하늘 좀 봐. 이 맑은 날에 구름그늘 아래라. 고마워라, 고마워라.

멧골이라 바깥사람을 만날 일 거의 없지만 일단은 마스크를 쓰고 나서다.

사람 발길이 완전히 차단된 지점에 가서 벗기로.

학교를 막 나서자마자 우리 앞에 이장님 부부가 트럭을 세운다.

손전화를 바꾸셨는데 사진에 날짜가 안 나온다시는.

나도 잘 모르지. 하지만 젊은 것들이 있잖은가.

샘들이 어플을 깔아주고 알려주고.

바쁠 것 없는 우리 걸음이었으니까.

도울 수 있어 기뻐들 했다.

그 사이 호두나무와 감나무 그늘에 앉은 아이들.

 

이 골짝 끝 마을, 물꼬가 있는 대해리로부터 2km 떨어진 돌고개,

거기로부터 다시 2km 산 저 너머 암자 하나 있는 곳에 닿을 수도.

그런데 내내 포장도로라 그것만 밟다 가면 얼마나 아쉬울까.

일단 걸어보기로, 가다 어디 쯤에서 골을 타고 절어들지도.

민준이와 수범이가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참 예뿐 1학년 .

안에서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니던 친구들이 20분쯤 걷기 시작하니 힘들어서 못가겠다고

칭얼거리는 모습이 참 모순적이어서 귀여웠습니다.’(수연샘의 날적이 가운데서)

맨 앞의 옥샘보다 앞으로 가면 초코파이가 사라지는 마술이,

맨 뒤의 정환샘보다 늦으면 김밥이 사라지는 마술을 볼 수 있다.

그걸 보려면 그리하라하니

누구보다 빠르게 서윤이와 수범이가 앞으로 튀어나갔다는.

바깥으로 나가 아이들과 걷다보니 기분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나름 오랜만 광합성(?)

하고 바람도 쐬면서 무더운 가마솥방을 벗어나는 기분 전환을 한 것 같습니다.’(정환샘)

 

그러다 윗마을 가기 전 번쩍 눈을 뜨게 하는 곳이 있었더라.

그렇지, 우리 마을 상수원지 있는 곳으로 가도 좋으리.

물꼬에 상설학교가 있던 시절 아이들과 몇 차례 들어갔던 곳.

그런데 가파른 길이라 수연이가 더는 어렵겠다.

태희샘과 수연이 학교로 먼저 돌아가기로.

수연이 아쉬움으로 기어코 울음을 터뜨리고, 모두가 안타까워하다.

하지만 아직 3시간은 더 걸을 예정이라, 그것도 산길이라...

나도 목이 메이고 울음이 나왔지만 속상한 수연이를 달래주기 위해 노래를 부르며

돌아가자고 했고 씩씩한 수연이는 곧장 노래를 잘 따라 불렀다.(태희샘)

이번에는 휠체어 타고 이만큼까지 왔으니 다음에 더 많이 가보자는 태희샘 말에

! 다음에도 오고 싶어요.” 하고 씩씩하게 대답했더라지.

, 모두가 모이길 기다릴 적 언덕 쪽으로 뱀 한 마리 볕을 쬐고 있다 놀라 달아났더라.

시작하며 그리 보고 나니 우리 가는 길에 만날 것들에 대해

미리 마음을 준비하게 한다. 때로 긴장도 필요할 게다.

 

머정골로 들어선다.

고백하면, 겨울산의 대부분은 전설과 신화와 설화에 나옴직한 이름으로

옥영경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지명.

그런데 이번 계자는 실명 등장이라.

머정골은 윗머정골과 아랫머정골로 나뉘어져 있었고,

사람 스며 산 적 있으나 아주 오래전 비어지고 이름만 남은 곳.

그마저도 이제는 사람들에게 잊힌.

큰 도로에서 겨우 20미터에서 갈라지는 길, 먼저 아래쪽 기웃거리기.

, 바로 찬바람 이는. 아주 깊숙이 들어간 계곡도 아닌데 작은 도랑이 콸콸거리며 흐르다.

아이들이 양말을 벗고 건넜다.

이쪽 편으로 먼저 건너가 깔아놓은 수건에 올라서는 아이들.

숲길이 이어진다

거기 나고 자라는 들꽃과 나무와 돌과 벌레들이 한 세상을 이루고 있다.

쓸모가 많아 참나무라고 했답니다. 참나무는 여섯 종류가 있지요.

이렇게 둥글둥글 생긴 이 잎, 저기 길게 생긴 잎, 다 참나무입니다.

떡을 쌌던 떡갈, 짚신에 깔았던 신갈, 임금님 수라상에 도토리를 올린 상수리,

가을 맨 나중까지 잎이 물들어있는 갈참, 나무 골이 깊은 굴참, 막내 졸참.”

그게 다 같은 참나무란 것에 놀랐다지.

아이들이 이제 길섶에 있는 꽃들을 따오거나 가리키며 묻는다.

서윤이가 젤 부지런한 눈을 가졌다.

국수나무, 사위질빵, 달개비, 호두나무, ...

, 저기 칡넝쿨, 칡꽃이 있다. 한주먹 따서 향을 맡아보라 한다.

늘 이 깊은 골짝에 깃든 이야기를 들으며 가는 산오름,

그런데, 이번엔 이 꽃들이 이야기이지 않은가.

이번 길은 또 이리 걸어본다.

마치 숲교실이라.

수연샘과 서윤이가 손을 잡고 걷고 있다,

꽃반지도 꽃머리핀도 만들고 꽂아주며.

코스가 아이들 맞춤코스 같아 좋았다. 길 옆에 피어있는 많은 풀과 꽃들이 아이들의

관심과 흥미를 돋우기엔 충분했다. 특히 서윤이를 비롯 아이들이 뜯어오는 풀,

그리고 그걸 설명해주는 옥샘의 모습을 보기 너무 좋았다(수업을 관람하는 느낌)’(새끼일꾼 현진 형님)

아이들은 참으로 축복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풀과 꽃내음도 맡고, 시원한 물에 발도

담그고 떠 마시기도 하고, 길가의 해바라기에서 씨앗도 먹어보는 오감이 생생한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실과 학원 책상 앞에만 앉아있던 저의 어린 날이 떠올라

씁쓸하기도 했습니다.’(정환샘)

 

나무 그늘을 벗어난다 싶어 다시 길을 틀고 나오다.

아까 건넜던 개울 앞으로 돌아와 도시락을 푼다.

김밥이라지만 묵은지와 잔멸치와 양파만 넣어 볶은 속이라.

마침 넉넉하게 가져온 수건이다. 아까 발판처럼 방석으로 쓰인다.

계자 끝나고 가면 집에서도 그런 김밥을 먹고 싶다고 말아달라고들 한다는데

그 맛이 날 리가... 이렇게 걷고 걸은 뒤 숲에서 먹는 맛이어라.

개울에서 한바탕 놀고.

이원수의 봄시내가 절로 입에서 나오는;

말가니 흐르는 시냇물에/ 발 벗고 찰방찰방 들어가 놀자/

조약돌 흰모래 발을 간질고/ 잔등엔 햇살이 따스도 하다/

송사리 좇는 말간 물에/ 꽃 이파리 하나둘 떠내려 온다/

어디서 복사꽃 피었나보다

“이제 움직입시다!”

개울을 나오다 진흙밭에 발 꿀렁이며 또 한참을 논다.

서윤이는 무릎까지 집어넣을 판이네.


채성이가 머리가 아프단다. 열을 먹었을 가능성이 크겠다.

높은 민주지산도 맨 꼬래비에서 어떻게든 오르던 그다.

산오름이 힘든 그이지만 한 번도 포기한 적 없이 정상을 밟았던.

일곱 살에 계자에 처음 온 이래 계자에 빠져본 적이 없는 그라.

오늘 저녁버스로 나가야 하는 휘령샘을 딸려 학교로 내려 보내다.

 

다시 갈림길로 나와 이제 마을 상수도 물뿌리로 가지.

비가 많기도 많았나 보다. 길이 패이고 또 패여있었다.

바윗돌이고 돌멩이고 길 위에 S자를 그리며

밀려간 흔적이 고대로 남아도 있었다.

저 큰 바윗돌도 물에 밀렸어!”

정환샘은 중학교 지리교사, 좋은 자료라고 사진도 찍어두고.

마실 물이 남아있지 않다.

왜 자꾸 올라가냐는 질문에 좋은 대답이 된다.

거기 물 있어!”

 

드디어 물뿌리에 닿았다.

그늘에 퍼질러 앉았지.

파이를 꺼내 먹고, 물은 맑은 데서 떠먹다, 옹달샘 토끼처럼.

샘들이 큰 통에 받아 입 안으로 부어도 주지. 아기새들 같았다.

물이... 물꼬에서 먹던 물과 맛이 같애요!”

그렇다니까, 연흠아! 이 물이 물꼬까지 가는 거야.”

그곳에서 옥샘이 노래하시는 모습은 고생한 후에 맞는 선선한 바람과 같았습니다.

듣고 있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수연샘)

숲 속에서 한껏 부르는 노래가 어디면 아니 좋을 손가.

심청가 한 대목도 했다.

초코파이를 먹으며 옥쌤의 노래를 들을 때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명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교육과정이 조금 더 유연해지고 교사의 자율성이 강화된다면, 저에게도

자유롭게 아이들과 산과 들에서 수업할 수 있는 날이 찾아올까요.....?’(정환샘)

 

이리 나오면 신이 나지.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모습을 내보인다.

그간 몰랐던 다른 면도 보게 되고.

걷다보면 새로운 이가 곁에 있고, 새로운 관계도 맺어진다.

많이 걸었으니 묵직한 배로 화장실이 궁금도 하다.

나무 뒤로, 바위 뒤로 가서 발로 툭툭 차서 옴폭하게 만들어 볼일도 보고.

무엇보다 나무과 풀과 벌레와 돌과 하늘의 나라에서

우리가 잘 몰랐던 세계 하나가 내게로 온다.

사람 말고 세상을 채우는 것이 많기도 하지.

 

이제 집에 가고 싶어요.”

깜짝 놀랐다, 집에 가고 싶은 줄 알고.

물꼬를 말함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가자, 가자, 쿵자쿵 다음 발, 그러다보면 어느새 집에 이르리.

돌아와 아이들을 씻기다.

메고 갔던 가방들을 풀어 정리하고,

아이들을 씻겼다. 물꼬 와서 요즘시대에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을 하고 익히고

갈 수 있어 행복하다.’(현진샘)

 

볕도 좋고, 아직 남은 해도 많았다.

산오름을 다녀왔다고 늘어질 아이들이 아니다.

한껏맘껏이라.

현종이랑 하다샘이 마늘을 찧고 양파를 썰고 있을 때

지윤이와 세영이가 합류해(책방을 폐쇄한 긍적적 효과가 아닐까 싶다고, 하다샘 왈)

고래방에 가서 청소도 하고

간 걸음에 사물도 두들겼다지.

장구, 북 징, 꽹과리를 돌아가며 서로 하고 싶다고 다 해본 듯. 한 명 한 명 가르쳐 줄

기회 있어서 기쁘고 재밌었음.’(하다샘)

넷은 하다샘과 포도밭 배수로도 이어 팠다 한다.

지난 열린교실에서 다 좋다 아이들이 하던 일이다.

지렁이도 만졌다지.

너 원래 지렁이 무서워하지 않았어?”

세영이가 지윤에게 말했다.

그랬는데, 물꼬 와서 괜찮아졌어.”

창문에서 보고 있던 서윤이도 나와서 같이 어울렸다.

내다보니 어느새 세인샘과 채성이도 나가서

모두가 가습이와 제습이 산책을 시키고 있었다.

잡초도 한 무데기 뽑았더라.

벌레잡고 노는 모습도 너무 예뻤다. 하늘색이랑 구름이랑 아이들이 너무 그림 같았다.’

(하다샘)

 

지칠 줄 모르는 아이들이라, 지칠 일 없는 존재들이라.

저녁상을 물리고 한데모임,

오늘의 일정을 톺아보다.

같이 하니 제법 먼 길을 걸을 만했을 것.

자연 안이라 이 더위에 활동이 수월했을 것.

숲에 정말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었음을 온몸으로 확인했을 것.

모다 훌륭했네.

 

고래방으로 건너간다; 대동놀이.

주로 강강술래로만 짜는(그것만도 전 판을 다하면 결코 양도 질도 적지 않은)

마지막 대동놀이인데, 오늘은 준비운동처럼 피구부터 하지.

저 넘치는 힘 덩어리들! 결코 숙일 줄 모르는 생명의 당당함 들이여.

우리는 166 계자를 시작하면서 이번 계자에 하고팠던 것들을

속틀에 잘 집어넣어 하나씩 해치워왔다.

피구도 그 하나라.

 

강강술래.

열이 있고 어지러웠던(다행히 다른 증세는 없었던) 승연이는

여전히 기운이 없어 한 쪽 벽에 기대고 앉았더랬는데,

피구는 못해도 강강술래는 할 수 있겠어요.”하며 동그라미 안으로 들어왔다.

수연이도 수연샘의 등에 업혀 남생아 놀아라.’하며 무리 속으로 뛰어들어오기도.

둘이서 한켠에서 손치기 발치기도 하고 있더라.

 

장작놀이도 뺄 수 없지.

마당으로 쏟아져 장작놀이라.

타닥거리다 빛싸라기 하늘로 훨훨 날아오르는, 우리들 보낼 날들처럼, 시간, 시간들.

여름날 바구니를 들고 서 있으면 거기 쏟아져 넘칠 것 같은 별이거늘

이번 계자는 드물었다.

그래도 저기 별 좀 보라지. 얼마쯤이라도 내보이는 하늘의 품이라.

태양이가 마지막이라 너무 아쉽다며 엉엉 울었다. 태희샘도 눈물 찔끔했다.

장작불에 감자도 구웠다. 겉이 까맣게 탔다. 사실은 태웠다고 해야 할.

온 마당을, 복도를 뛰어다니며 서로의 얼굴에 그림을 그렸다.

한밤 불가에서의 인디언 놀이였네.

 

모둠 하루재기, 그리고 잠자리 머리맡에서 책 읽어주는 샘들.

곧 가마솥방으로 샘들이 하루재기를 위해 모였다.

유독 아이들에게 정이 많이 든 계자였다. 그만큼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서인

것 같다. 여유롭지만 알차고 마지막까지 하늘이 도운 완벽한 166계자였다. 예쁜

아이들과 함께여서 참 행복했다.’(태희샘)

비도 지나가게 하고, 필요한 날 적절히 좋은 날씨를 가져다주는 물꼬 매직, 아주

좋았습니다.’(수연샘)

마음은 그렇다고 느껴보지 못했는데 몸은 그래도 많이 고단했던가 봅니다. 알람도

못 듣고 쭉 자버렸는데 나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었으나,

역시나 물 흐르듯 유연하게 일정을 이어나가는 물꼬답게 천천히 움직일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정환샘)

하루 정말 재미있게 잘 쉬다, 저도 잘 놀다 갑니다. 물꼬는 즉흥이라더니! 받아주셔서

감사하고 너무나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몇 달치 설거지를 했지만(조금 과정 보태서) 평소라면 짜증날만한 에어컨 없는 곳에

있었지만 정말 오늘 하루만큼은 아무 걱정없이, 내일 일을 생각하지 않고 편안히

머무르다 가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그런 곳이 있다는 게 참 감사한 하루입니다.

하루 있었지만 56일을 살다가는 거 같은 꽉 찬 하루입니다. 너무나 행복한

밤입니다.’(세인샘)

 

들어오는 날이 그러했듯, 내일 나가는 날도 여느 해와 다른.

어떻게 움직일지 세밀하게 짜본다.

166 계자에서 하기로 하고 아직 못한 게 뭐더라;

아이스크림도 만들어주기로 했다.

산오름에 먹기로 한 마이쭈를 고대로 가방에 가져왔더랬다.

그것까지 먹어야 할 만큼 우리들의 걸음이 벅차지는 않았던 쿵자쿵 다음 발이었다.

그것도 내일 멕여야지.

봇짐을 다 싸서 교사를 나설 때 166계자를 무사히 마친 기념으로

월계관처럼 우리 칡넝쿨 화관을 쓰고 가자, 거기 깃털처럼 넓고 싱싱한 잎사귀 끼워.

설레는 밤이라.

아이들이 그야말로 쓰러져서 자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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