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물론 우리 영동. 강원 영동 아니고) 폭염경보였더라나.

몰랐다, 바람이 너무 선들거려 그리 더운 줄을.

아이들이 나가는 시간, 구름이 살짝 덮어준 해였다.

이리 또 하늘이 마음 많이 내준 166 계자라.

 

오늘 우리들의 아침수행인 해건지기는 이부자리를 들고 나가 털고 개는 걸로 대신한다.

아이들이 안고 나가 평상에 쌓으면 샘들이 털었다.

아이들도 더러 이불을 맞잡고 털거나, 베개를 털거나.

밥상을 물리고 다시 모다 모였네.

누군가가 이곳을 쓸 우리를 위해 맞이 청소를 해준 것처럼

이곳을 쓸 누군가를 위해 우리도 청소를 하기로.

우리가 쓴 곳을 치우고 정리하는 걸 너머

먼지풀풀은 그렇게 마음을 넓히는 시간.

마지막 빨래가 주인을 찾고, 아이들은 반찬통을 챙겼다.

아침 11. 갈무리모임을 위해 모둠방에 모다 다시 앉다.

그간 무엇을 하였던가 속틀을 보며 훑고

그 시간을 글로 남기기.

... 이번 계자 아이들은 유달리 적막을 만들 줄 안다 할까.

글씨 쓰는 소리만 사각거렸다.

 

아찔한 마지막 순간이었다.

수범이가 열이 매우 높았다.

수도권에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대거 늘었다는 소식이 막 닿았던 참.

긴장감이 돌았다.

한바탕 목감기들이 있었고, 나았는데 간밤에 좀 추웠다 했다.

증세는 감기로 보이는데, 일단 하다샘이 돌보았다.

갈무리글을 쓰고,

복도에 길게 서서 마친보람을 한 뒤 낮밥을 먹으러 가는 시간이었다.

긴박한 상황,

그래서 마지막에 아이들에게 챙겨주고 싶었던 둘, 만든 아이스크림과 마이쭈,

그리고 멋있게 칡넝쿨 나뭇잎 왕관을 쓰고 나가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

딱 놔버렸다.

아이가 아픈데 그게 대수냐.

우리 또 모이면 되지, 그때는 그때의 일들이 있을 것이나

잊지 않으면 할 날도 올.

 

1, 부모님들이 왔고, 천막 아래 다시 모였다.

책상 위 바구니에는 아이들이 손풀기를 한 그림이 두루마리로 담겨있었다.

간밤에 샘들이 챙긴 거였다.

정환샘이 수박꼬지를 케잌처럼 들고 나왔다.

곧 아이들도 나와 감나무 아래 평상에 앉았다.

부모들과 강을 사이에 둔 것처럼 학교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은 물꼬 교가를 부르고 개구리 소리도 불렀다.

애썼다, 모다. 장하다, 우리 아이들.

166 계자는 지체아가

우리 모두의 곁에 자연스럽게’(그렇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함께 있었다.

그것도 너무 잘. 그도 다른 아이들도.

그것이야말로 대단한 성과였다.

모두가 마음을 나누고 손발을 나누어 가능했다.

수연을 업고 안고 다니던 전담 교사 휘령샘을 비롯 태희샘, 수연샘, 현진 형님. ...

우리는 성공했다!

166 계자는 그 어느 계자보다 훌륭했다, 물길도 헤치고 코로나19를 뚫고서!

 

166계자에도 닿은 마음들.

샘들도 물꼬에 들어오며 그냥 오는 법이 없다.

멀리서 수박을 보낸 현택샘과 소연샘,

샘들 먹을거리를 잔뜩 챙겨온 기표샘(하하, 계자 장볼 때 같이 사라고 현금으로 공수했다는),

물꼬 부엌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온 정환샘,

애들 예비용 칫솔이며 조리용 마스크며를 챙겨온 휘령샘,

반찬을 보내온 엄마들, 유기농 과자를 보낸 수진샘, 포도를 실어 온 준한샘, ...

아이들을 보내고 샘들 갈무리 모임.

인원이 많을 때는 내가 모르는 곳에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사람의 손으로 굴러가는 곳인데 이 규모는 교사들한테는 일이 많더라.

그렇다. 이 불편한 공간에서 아이들이 불편을 덜 느끼는 한 부분은

바로 샘들의 손발이 그 불편을 메우기 때문이기도.

대신 여태 했던 계자 중 아이들과 가장 많이 보낸 시간이었다 했다.

물꼬가 좋다고 남겨준 애들에게, 샘들에게 모두 고맙다 했고,

바깥의 삶과 달리 이곳에서는 몸은 써야 되지만 마음은 쉬고 안정된 느낌이 함께한다 했다.

교사가 많을 땐 돌아가며 쉬어주고 했는데,

이번엔 계속 움직여야 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금방 갔다고,

그건 행복해서였을 거라고도.

이 시대 이런 헌신과 기쁨을 지닌 젊은이들이 또한 물꼬의 기적이라.

그들이 물꼬를, 나를 또 밀고 가나니!

 

다른 땐 영동역에서 아이들을 보내고 카페나 빵집에서 샘들이 갈무리모임을 했더랬다.

그걸 끝내고야 들어와 잠을 좇으며 하던 뒷정리이더니

이번엔 계자 샘들이 다 붙어 같이 하고 있다.

이 마을 대해리에서 영동으로 나가는 버스는 하루 세 차례,

12:20 버스가 떠났으니 17:30에야 있는 버스.

2km를 걸어가 닿는 헐목엔 물한리에서 영동으로 나가는 버스는 하루 다섯 차례.

16:40 헐목발 영동행을 탈 것인데, 우리가 조금 미적거렸네.

거기까지만 사람들을 태워 가 부려주기로 한 정환샘 차와 물꼬 차,

이번엔 상촌 면소재지까지 수송작전에 투입되다.

거긴 버스가 제법 여러 대 있으니까.

 

정환샘이 다시 돌아와 씻고 저녁 6시가 다 돼 마지막으로 떠나고

복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청소가 한창.

빗자루와 걸레를 잡은 김에 하는 게 수월하니까.

재훈샘도 온다는 저녁이네.

따순 밥을 멕여야지.

두어 시간 하던 일을 접고 부엌에 들어섰다.

계자가 끝난 부엌이면 더러 남은 반찬들도 있으나

이번에 살림을 살뜰히 살아준 정환샘은

남은 것들이 숙제이지 않게 깔끔하게 냉장고를 털어주었네.

뚝딱뚝딱 밥상을 차린다.

무채도 내고 전도 부치고 두부도 굽고 고기를 볶고 어묵을 볶고 콩나물을 무치고...

그 아이 다섯 살 때 보육원에서 처음 만났고, 23년이 흘렀다.

물꼬가 서울에서 영동으로 이동한 후 공백이 있었고, 12학년 때 물꼬에 다시 왔더랬지.

이후 해마다 거르지 않고 이곳 일정에 함께한.

지난 6연어의 날에 사람들을 태우고 나가느라

재훈샘 차에 있던 캠핑 물건들이 여기 다 부려져 있었고,

계자 끝나면 택배로 보내려 했는데,

그것도 일이죠. 옥샘 얼굴도 뵙고 좋지요.”

그러고 왔다.

자고 가도 좋으련만 다시 그 밤에 올라갔다.

내일 새로 일군 가족들과 나들이 일정이 있다고.

그의 편에 보육원 아이들 소식을 전해 듣다.

진혁이 장환이...

고맙다, 다들 잘 살아주어.

곧 보기로.

 

자정이 가까워서야 사이집 다락방에 들다.

언제나 시작은 청소로.

와서 바로 퍼질 수 있게 하고 나간 청소지만

사람이 비운 자리를 채우는 것들이 꼭 있기 마련이라.

계자에서 올라온 옷가지들이며 기록이며를 펼쳐놓고,

다음 주 제도학교(831일까지 제도학교 지원수업이 있는 이번 학기)로 돌아가

해야 할 일들 차례도 정하고.

방학이지만 제도학교에는 돌봄교실이 진행되고,

거기 특수학급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도 나온다.

다음 주 근무하는 동안

오전에는 두 아이 동화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곧 상급학교 진학하는 아이가 혼자 버스 통학이 가능하도록 훈련하기로.

 

폭염으로 오늘도 힘들 거라는 하루, 그러나 이 바람 좀 보라지.

그 바람에 아이들 갔네, 배처럼 떠나갔네.

우리들의 노래에 등장하는, 작아지는 개구리 소리처럼 점점 멀어졌네;

수연 현수 세영 세준 현준 태양 서윤 민준 연흠 지윤 승연 채성 현종.

그리고 수범이... 서울 도착해 일단 종합감기약을 먹이고 재웠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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