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19.물날. 맑음

조회 수 363 추천 수 0 2020.09.06 11:46:02


 

제도학교 분교 방학 중 근무 사흘 가운데 이튿날.

어제부터 일정하기도 하지, 34!

제도학교의 교장 사택에서 보내는 날이면 아주 이른 새벽이거나 늦어도 6시면 대개 눈을 뜨는.

운전으로 더위로 어제는 정말 녹초였던가 보다.

자고 자다가 아침 8시에야 겨우 눈을 뜨다.

도시를 관통하는 운전은 피로가 배가 되는.

도시는 운전이 아니어도 피로하다.

 

오늘도 근무지는 어제에 이어 분교가 아니라 본교.

아침에 정리할 문서들 있어 9시에 내려오는 오전 언어수업 두 아이를

09:30, 그러니까 일상 수업 때의 2교시 시작 시간에 보내달라고

돌봄실에 연락 넣다.

벽 아래 매트를 깔고 양쪽으로 아이 둘을 앉혀

각자 읽고 싶은 그림동화책을 한 권씩 쥐고

그 한 권을 셋이 공유하며 읽어나가다.

통으로 내가 먼저 읽어주고

좌우에서 돌아가며 읽을 때 어떤 문장 앞에서는 멈춰

한 글자씩 갈라 읽고 연이어 발음하기를 반복.

특수학급 입급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담임교사의 의견과 달리,

또 그 아이 주변 한둘의 어른들이 생각하는(아이가 좀 모자란다는) 의견과 달리

예상한대로 성말이는 모자라지 않았고, 심지어 머리가 좋았고,

읽기는 습관적 읽기로 잘못 읽는 단어가 있었을 뿐,

그리고 부모와 누이들의 부정확한 성음 습관에 너무 오래 노출돼 일어난 문제일 뿐이었다.

성말이보다 두 살 많은 누이 은별이도 발음이 보다 뚜렷해지는 시간들.

 

11시에 오전 수업 아이들을 내보내고,

11:30 6학년 한동이가 특수학급으로 들어서다.

오늘은 그의 집으로 가 할머니도 모시고 인접 대도시로 가기로 했다.

원래는 아이를 할머니와 버스에 태워 보내고 저 편에서 내가 기다렸다 맞기로 하였는데,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버스가 막 떠난 뒤여 반대로 하기로.

두 사람을 태워 도시로 나가 고기를 먹이고,

아이가 1순위로 진학할 학교를 버스정류장에서부터 교문까지 가보고

다시 그 길을 되짚어 차로 이동하고.

특수아동들이 진학 시 선배치되기는 하는데,

집에서 한 번에 버스가 가는 1순위 중학교에 진학을 원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추첨이 불가피할 거라.

방학 직전 바삐 원서를 넣었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

한동아, 혹시 이 학교를 못 갈 수도 있어. 그때는 그때 가서 또 방법을 찾아보자.”

선정배치에 대해 이의를 신청한다거나,

것도 안 되면 버스 타기 훈련을 더 한다거나.

 

본교 교장샘이랑 늦은 오후의 나들이.

오는 24일 개학하는 날 모든 구성원들 다 교사연수를 갈 곳이었는데,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취소된.

하여 둘이서 가기로.

명상수련일정도 진행하는 커다란 책방이어서 언제 가보자 하던 곳.

하여 교장샘이 안내한.

둘이서 하는 내 송별회인 셈.

제도학교 한 학기 지원수업은 언젠가 당신에게 물꼬가 진 빚을 갚는 셈이기도 했던.

좋은 인연이 좋은 곳에서 다시 만나 같이 일한.

나들이 간 곳에서 새로운 한 인연을 만나 함께 어둠이 앉은 마당에서 노래도 불렀네.

 

돌아오는 길 교장샘 차 안 전화가 울렸다.

관내에 초등 확진자가 생겼는데,

이 학교 아이 둘이 그 확진자와 같은 합기도 도장을 다니는.

시간대가 다르긴 하나 자가 격리가 필요하지 않겠냐,

해서 부모와 그리 통화를 했다는 교무샘의 연락이었다.

그리 가까이 코로나19가 와 있었다.

 

새벽 2시가 넘어가는 시간, 아직은 깨어 있으니 괜찮다만

이 열대야에 차로 가서 자야할 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창문 방충망 아래 틈을 타고 들어오는 그들의 침입을 눈으로 본 이후로

집을 비울 때는 꼭꼭 닫아두고 있는 창문인데,

엊그제 보름을 비우고 돌아왔을 때 본교 사택 욕실창문이 열려있었던.

교장샘이 방학 근무 중 사택에 들렀다가 습기제거와 환기를 위해 열어두셨다는.

에구, 아마도 그곳일 확률이 클세.

10센티미터 조금 못 미치는 지네가, , 그이는 어쩜 그리 사납게 생겼는가,

거실을 스물스물.

, , , 어쩌지 못하고 당황해 하는 사이 싱크대 아래로 들어가 버렸다.

뿌리는 에프킬라를 그제야 집어 그 틈새에 잔뜩 뿌리다.

그가 어디로 갈지 어이 아나.

식탁에서 수를 놓고 있다 깜짝 놀라서는,

저가 보일 때까지는 잠자기는 글렀다 하고...

바늘을 보는 눈을 자주 들어 두리번거렸는데,

마침내 보았다. 다행히 아직 약품이 남아 있고.

잔뜩, 아주 많이 뿌리다.

바깥 빗자루를 들고 들어와 힘이 빠진 그것을 쓸어내고 바닥을 닦고 또 닦고.

아직 남았을지도 모를 그의 측근들이 있잖을까.

이미 새벽 3시가 넘어가는데 쉽잖은 이 밤이겠네...

 

(* , 말했던가, 제도학교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을 쓴다, 혹여 누가 될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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