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27.불날. 맑음

조회 수 315 추천 수 0 2021.08.10 01:46:43


 

고개를 젖히니 먹구름이 조각으로 걸린 하늘.

볕은 여전히 뜨거웠고, 기온은 언제 적부터 34도였던가.

지난 7일부터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는 3주 내리 네 자릿수로

최근 일주일간 하루 평균 1,579명꼴이라고.

우리는 계자를 할 수 있을까...

 

06시 지나 아침뜨락으로 간다.

수행처고 일터고 놀이터, 그리고 쉼터가 되는.

뽕나무 죽은 가지 하나 잘라낸 흔적부터 치우다.

자잘한 것들은 갈퀴로 긁어모으고.

멧돼지 혹은 고라니들이 뒤집어 놓았던 도랑은

마구 헤집은 채 널려 있었더랬다.

돌을 치워내고 모으고, 둘레풀들을 뽑고.

 

그 도랑을 끼고 나리꽃 군락이 있었다.

학교에서 패다 옮겼고 위로 쭉쭉 잘 뻗어 올랐던.

하지만 거기도 멧돼지의 입김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람이 땅을 팬 자리가 있으면

뭘 좀 심었을 게야 하며 영락없이 그들이 다녀가는.

게다 저들이 파놓은 곳을 잊고 또 파고,

혹은 지난번에 여기 먹을 게 있었지 하고 다시 파는 지도 모르겠다.

나리들은 결국 다 죽었다.

쓰러져 죽었거나 마르거나, 비에 녹아버렸구나 했다.

가까이 가기 전까지는.

풀을 뽑자 다 쓰러져 있으면서도 꽃을 피운 나리들이 있었다.

뽑히고 문드러져가는 뿌리에 겨우 붙은 흙의 힘으로,

가끔 내린 비로 또는 이슬로도 목축이며 마침내 꽃을 피운.

자신이 붙잡은 목숨값이 거기 있었다.

자신만 자기를 저버리지 않으면 살아낼 수 있다!

그러면 누구라도 그를 돕고 싶지.

살아내려는 생명을 우주는 어떻게든 돕는다.

오늘 내가 그랬다.

그들을 위해 언저리 풀을 뽑고, 땅을 고르고, 구덩이를 파고 물을 주고,

언덕 쪽에 기대 심어주고 다시 물주고.

살아라, 살아라, 살아라!

창포 둘레도 풀을 정리해주었네.

 

저녁에도 아침뜨락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르지는 못했다.

늘 길이 먼 물꼬라.

길을 밝히는 키 낮은 솔라등도 풀이 잡아먹을 기세다.

해를 담뿍 받게 하기 위해서도 풀을 뽑아준다.

알이 더 굵어지지 못하는 듯한 사과나무들에 물을 흠뻑 주었고,

둘레에 역시 풀, , 풀을 맸다.

 

오후에 출판사로부터 최종교정지가 왔다.

디자인을 완료한 본문교정지였다.

디자인 팀장님이 표지와 본문고민이 많으셨는데요,

제 느낌에는 디자인 최종안이

교육서지만 지루하지 않고 산뜻하게, 잘 나와서 기분이 좋네요ㅎㅎㅎ

, 디자인 팀장님께서 사진이 본문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면,

이미지로 분위기만 살렸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사진에 노이즈를 주어 디자인하셨습니다

인쇄할 때 좀 걱정이기는 한데...

인쇄 넘기기 전에 사진 페이지만 프린트해 볼 예정이고

물론 인쇄소에 감리도 나가서 팀장님이 확인하실 거예요.’

본문 한 번 휘~익 훑어보고 연락 달라한다.

표지 디자인은, ‘, 좋다는 말이 나오지는 않았다.

난 좀 점잖은 게 좋다.

하지만 말을 내지 않았다. 전적으로 전문가들이 하는 대로 맡기리라 마음먹었던.

나는 이 자본의 시대에 그 흐름을 타고 사는 사람이 아니니.

사진들을 확인하니 편집부가 결정했던 것 말고 새로운 게 하나 들어가 있었다.

아이들 일곱이 담긴.

바쁘게 사진 사용 허락을 받아야 하네...

10시 편집자와 통화.

86일께 출간이 가능하겠다는.

인쇄소와 제본소가 여름휴가 일정이 잡혀서

거기 일정과 겹치는 편집부와 디자인팀 일정에 조금 차질이 생기면서 며칠 늦어진.

비로소 저자가 할 일은 다 끝났더라.

 

깊은 밤, ‘스웨터 로지에 다녀오다.

아침뜨락 너머에 있는, 숲의 커다란 소나무 곁에 있는 공간.

아이들과 달빛 명상을 가는 곳.

무섭지 않냐고?

아니. 감싸 안아주는 느낌을 받는다. 안전한 곳이라는 안도감이 든다.

달빛이 좋다면 더욱.

수행하는 곳은 자신을 닦는 만큼 공간도 같이 닦인다는 생각.

 

 

* 詩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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