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29.나무날. 맑음

조회 수 324 추천 수 0 2021.08.10 01:49:19


 

틈틈이, 마지막까지 편집자와 확인할 사항이 있었더라.

곧 나올 책 말이다.

대단한 편집자라.

책에 보이는, 끝까지 쥐고 있는 애정도 고마웠다.

교정을 본다고 보아도 마지막에 가서야 눈에 띄는 것들이 꼭 있다.

뒤로 물러서지 않을 지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만 아니면

대체로 편집자 의견을 받아들이는 걸로.

아무렴 그네가 전문가이니.

표지만 해도 그랬다. 나는 옛날사람이라 얌전한 게 좋은데,

해서 이번 표지가 내 취향은 아니었던.

하지만 그 역시 디자인팀 의견을 전적으로 따랐다.

색감은 좋았다.

오늘 데이터를 넘겼다는 소식. 달날에 인쇄 들어가고,

85일 저자 증정본을 보낸다 하니 6일이면 손에 닿을 것이다.

코로나 이후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을 주제로 담은 책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이 주제를 가장 잘 이야기하실 수 있는 저자분을 만난 거부터 행운이었죠 ㅎㅎ

그리고 마지막에, 여태 어떤 메일이나 문자에도 깎듯이 옥영경 선생님이라 불렀던 그가

옥 샘~~, 감사합니다. 싸랑합니다~라고 보냈다.

함께 원고를 안고 보낸 시간들이 진하게 밀려왔다.

정작 나야말로 그이 덕분에 책을 냈다.

좋은 편집자를 만나는 게 저자에게 얼마나 큰 복인지. 사실 그게 다라고도 할 수 있을!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가 그토록 매력적인 책이 된 것은

순전히 편집자 덕이라던가.

 

아침 6시 밥못에 물을 틀어두고

(비가 없고 뜨거우니 끌어올린 물을 틀어서 물을 순환시킴),

물이 당장 필요하겠는 나무 몇에 물부터.

사이집 앞 사과나무와 대추나무, 그리고 기숙사 앞 주목들,

아침뜨락의 자작나무며 산딸이며 몇 나무는 아침저녁 물을 주고 있다.

 

청계를 앞두고 아침뜨락 전체적인 마무리는 오늘까지.

굳이 더 써야겠다만 억지로라도 내일 아침을 쓸 수 있는 정도.

밥못 가 바위 세 덩어리 둘레 풀을 맸다.

모두를 못할 땐 경계라도 풀을 뽑아놓으면 정리가 좀 되는.

아고라 돌의자 사이 쇠뜨기들도 뽑고,

지느러미 시작께 바위축대 사이 쇠뜨기도.

쇠뜨기마저도 못다 뽑았지만 이번 일정을 위한 흐름에는 여기서 끝.

 

느지막한 오후 다시 아침뜨락으로 들어가

예취기 때문에 바위들마다 날린 마른 풀들을 비질하고,

아고라 돌의자 너머 뽑아서 던진 널린 풀들도 정리하다.

돌의자 위쪽으로 자잘한 돌들도 치울 게 많다.

삼태기 두어 차례만 채워 버리고,

나머지는 한쪽으로 밀다.

이번에는 여기까지만.

 

옴자 눈썹모양은, 오늘은 정리를 해야지.

멧돼지가 아주 놀이터삼아 가지런하지 않아 그렇지 마치 쟁기질을 해놓은 듯.

모양을 다시 잡고 땅을 고르고

(, 2015년부터 얼마나 자주 하는 일인가! 아주 고정적인 형태를 고민 중).

튤립 싹은 멧돼지가 생선 발라먹듯 살뜰히 파먹어서 내년에 보기는 어려울 테다.

이어진 수레국화 자리; 마른 국화 패 내고, 땅 고르고, 그 위에 씨앗들 털어 뿌리고.

다음은 원추리 자리; 비 오는 날에도 볕이 뜨거울 때도 색이 좋은 그들이다.

사이 풀을 뽑고, 그 끝, 그러니까 눈썹모양 끝자리의 돌무데기도 조금 손보다.

달못 아래처럼 탑이 되도록 쌓아야지 하는데, 지금은 아니고!

회양목 쪽 작은 바위 둘 가장자리도 풀 뽑아 바위 낯을 돋우다.

때로 물을 뿌려 축였다가 풀을 뽑아도

장갑 낀 손인데도 새끼손가락 쪽이 당기는 힘에 슬려 껍질이 벗겨지기 일쑤다.

마지막으로 자작이며 물 흠뻑 주고 내려오다.

광나무도 물 좀 먹여야는데, 거기까지는 손이 안 되네...

 

한숨 돌리고 요기를 좀 하고,

밤이 더 깊기 전에 사과나무와 대추나무 물을 주다.

사과가 물이 모자라 크지를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도움이 될까 아침저녁 물 흠뻑 주고 있음.

몰라서 못한 일들이 많다. 알면 하지.

목마르겠다 더 일찍 생각 못했다, 잎이 말라가는 데도.

제 힘으로 살아내려니 얼마나 힘들 꺼나.

아니까 주게 되더라. 많은 일들이 그렇겠지.

누군가 어떤 일을 하지 않고 있다면 그 역시 몰라서 못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게다.

풀을 매고 물을 주는 일들이 내게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걸 가르쳐주고 있다네.

온 손목관절이 다 뻐근하다.
풀과 씨름한 하루였다는 증거다.

 

여러 식구들이 모여 일을 하면 제각각 유형이 있다.

그런데, 효율을 위해서도 깨어있기 위해서도 자신의 행위를 한 번씩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람의 습을 바꾸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오랜 시간 함께 산 식구 하나는

풀을 뽑으면 꼭 여기저기 던져놓는다.

다른 풀들을 나지 않게 덮어두는 경우도 있고,

나무 둘레 습을 유지하기 위해 역시 덮어두기도 하는데,

언제나 이유는 시간이 없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갑자기 손님을 들이닥치기거나 바삐 다른 일로 옮겨가야 할 때

더러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만

관찰해보니 그건 아주 습이었다.

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일들 역시 마지막 매무시가 안 되는.

오늘도 일자리를 떠난 뒤 돌아보다가

역시나 여기저기 팽개치듯 풀들이 가 쪽에 널린 걸 보고 단단히 일렀는데,

변하기 좀체 쉽지는 않을 게다.

일이 너무 많아 그럴 수도 있으니 일 분량을 줄이고 대신 정리에 집중토록.

언제나 일을 하면 마지막을 좀 남겨 뒷정리에 쓰도록 시간을 확보할 것.

풀을 뽑는 족족 모으고 다시 무데기로 올리고 버리고,

혹은 뽑으며 바로 삼태기에 담고 모이면 그걸 손수레에 담고 하는 차례이면 일이 줄텐데...

오래 해왔던 자신의 습을 바꾸는 것, 환골탈태가 그것 아니겠는지.

 

 

* 詩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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