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8. 6.쇠날. 저녁답의 소나기

조회 수 344 추천 수 0 2021.08.12 03:26:58


머리가 살짝 묵직하게 깬 아침이었다.

어디 특별히 탈이 났다기보다

많은 땀과 뜨거운 열과 따가운 볕과, 모자란 잠 때문이리라 했다.

계자의 날들인 게다!

 

달골을 더듬어 살핀다. 계자 전 손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일 것이다.

나머지 너른 곳은 잔디 깎는 기계가 돌아갈.

그것을 위해 돌을 계속 주워내자 하지만

풀을 뽑는 일에 매번 밀리고 만다.

햇발동 앞 계절이 지난, 누렇게 잎이 진 마른 식물들을 뽑고(금낭화 같은)

가장자리의 풀과, 사이에 또 키가 쑥 자란 쇠뜨기들을 뽑아낸다.

아침뜨락을 훑어 올라간다.

지느러미길, 1번 돌 둘레만이라도 미끈하게 풀을 뽑아주다.

돌계단 사이 풀, 감나무 아래는 앞쪽만이라도,

옴자 안 꽃들 사이도 키 큰 풀들만 손을 댄다.

아고라에 이르러서는, 돌의자 뒤쪽 측백을 구석부터 매던 일이 멈추고 있었는데,

서너 그루 사이를 더 뽑아주다.

아가미길에서는 광나무 둘레도 눈에 아주 걸리는 곳만 몇 걸음 사이로 죄 뽑기.

 

아침 9시가 지나가고 있겠다, 그찮아도 일어서야지 하는데,

전화가 들어온다. 면사무소다.

지난해 9월 달골 주차장 도랑길에 입은 수해로 여러 차례 민원을 넣었고,

다시 9월이 오는데, 그런 큰비를 또 맞으면 어쩌나,

지난 달날 강하게 요청했고, 이제야 움직임이 좀 있었다.

그 역시 돈 문제이겠지. 예산이 없다는 거다.

현장을 같이 보고 이야기하지요.”

다녀갔다지만 오십사 했다.

20여 분 논의.

가을에 마을로 들어오는 사업이 있고, 거기 묻혀 하는 걸로.

전체 상반기 결산에서 남는 돈도 좀 보태서.

남는 건 얼마 안 되나(여기를 하나의 사업 덩어리로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들어온 장비며 큰일에 묻혀서 한다면 어떻게든 일이 되겠다는.

다음 일도 이야기에 진척이 있었다.

달골 다리 건너오기 전 수로가 넘쳐

여름은 여름대로 물이 많고 겨울이면 얼어 위험했다.

물꼬 식구들이 한 번씩 수로를 쳐내기도 하지만 늘 그리 지낼 수는 없다.

부역을 하든 공사를 하든 어찌 좀 하자고 이장님께 몇 차례 말을 넣었던 참.

그 건도 마침 헐목에 수로 공사 하나 할 때 묻어 하기로.

이장님께 요청했던 또 한 가지는 간장집 수도 건이었더랬다.

학교 사택 인근 세 채만 옛 상수관을 쓰고 있는데,

지난겨울 한 군데가 새서 간장집 들어오는 수도를 끊어놓은 상태.

사람이 살면 물이 있어야지!

찾아서 하자면 더 일이라고 새로 관을 묻자고 얘기는 되었는데...

마을 젊은사람들이 다 바빠서...”

농번기 지나 마을 부역을 하기로.

다 돼야 다 되는 거지만 이리라도 말이 있으면 진척이 좀 있을.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여름날 사람이 모이면 식중독도 걱정이라.

부엌에 가장 많은 신경이 간다.

행주 삶고, 그릇과 수저들 뜨거운 물에 소독하고.

냉장고도 정리한다. 그래야 계자 장본 것들이 들어갈 수 있을.

이참에 묵은 것들 치워도 내는.

 

준한샘이 들어와 달골 넓은 지대들에 풀 깎는 기계를 돌리고,

학교 아저씨와 읍내 보건소로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는다.

음성판정을 받고들 모인다면 아무래도 부담이 덜하지 않겠는지.

계자 관련 이들이 속속 결과들을 보내오고 있다.

나간 걸음에 장을 보고 왔다.

걸음이 흐름이 좋으면 큰일 했는 양 하는 멧골살이다.

두어 가지 빠진 게 있더니 들어오는 길에 면소재지 농협 마트에서 채우다.

마침 그게 또 있더라고.

문을 연 시간이어 다행.

일을 하다보면 장 보는 건 꼭 밤으로 넘어가고는 하는데,

이런 동선이면 밖에서 들어오는 손에 부탁할 일 없겠는.

늘 하는 일이어서 아무렴 구멍이 생길까 하지만 그래도 또 어디선가 새고 마는...

사람이 하는 일이 그렇구나 여기기로.

 

돌아오니 택배가 들어와 있다.

폭염, 코로나...

그래도, 물꼬의 여름계자는 멈추지 않는다!!

그래도, 쌤들의 건강이 염려되는 마음.

나름 미국에서 유명하다는 종합비타민 3BOX 챙겨봅니다.’

더하여 여름 피부를 진정시키기 위한 물품까지.

물꼬 논두렁에다 계자 때마다 오는 아이 편에 유기농과자며 먹을거리도 듬뿍,

어떻게 매번 그런 마음을 쓰고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걸까...

수진샘, 고맙습니다!”

 

골짝으로 들어서니 시커매진 하늘에서 소나기 쏟아졌다.

덕분에 시원하게 저녁밥상을 준비하였네.

밥상을 물리고 장 본 것들을 쟁여넣고.

가스렌지 불판을 다 들어내고 구석에 낀 찌꺼기를 빼는데,

! 손가락을 베였다. 가벼운 상처라 다행하다.

고만하란 말이네!”

간밤을 설친 데다 이른 아침부터 밤 10시가 다 되도록 제대로 앉아보지 못한 하루,

집중력이 떨어질 만했다.

그 상태로 다 밀어놓고 부엌을 나오다. 내일이 있으니까.

 

, 그래도 아침뜨락에 드는 걸 잊지 않는다.

찬찬이 마음결을 고르고,

아침마다 수행하며 절할 때 올해의 기도 제목으로 잡은

수험생들을 위해 마음 보내기 역시 잊어먹지 않고 걸음마다 생각하였네.

얘들아, 울타리 밖에서 놀으렴!”

고라니와 멧돼지에게도 큰소리로 외쳐주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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