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은 호미와 낫을 놓고 아침뜨락에 들다.

목장갑도 끼지 않았다.

지나다 눈에 걸리는 풀조차 뽑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밀리고, 종종거리고, 결국 피로도는 높아질 것이므로.

계자 직전에는 구르는 낙엽도 밟으면 안 된다는 심정으로다가.

그저 온전히 기도로 걸었다; 아이들이 온다!

기숙사 욕실을 청소하고 달골을 빠져나왔다.

계자는 캠프로서 학교에서 먹고 자고 할 것이지만

계자 때 어느 하루 아이들과 아침뜨락에 드는 아침에 잘 쓰일 수 있도록.

 

11시 가마솥방으로.

(내가) 밥바라지 1호기다. 2호기와 3호기는 물날에야 비로소 들어오게 될 것이다.

밥상을 준비한다. 비빔국수와 시원한 국물.

취향에 따라 잔치국수로도 먹을 수 있도록.

커피를 내렸다. 냉커피도 마실 수 있게 준비한다.

밥상을 물리고 샘들이 부엌일을 먼저 거들었다.

사람이 모이면 먹는 게 다다 싶지.

깍두기와 열무김치를 담갔다.

비벼 먹을 수 있도록 풋고추와 멸치를 다져 고추다짐도 해두었다.

또 좀 쉬어가자.

얼음을 담은 유리컵에 시럽과 오렌지주스를 붓고 홍차를 달여 얹었다; 떼오 오랑쥬

가장 위에 올릴 민트는, 달골에서 따오는 걸 잊었고나.

 

18시 모두 달골 올랐다. 아침뜨락에 들었다.

사람이 적으니 일은 더 많지만 그래서 또 이럴 짬을 낼 수가 있다.

아침뜨락에 내리는 저녁 빛을 선물하고 싶었다.

준한샘이 들어와 아침뜨락에서 기계가 할 부분을 챙겨주고 있었다.

당신 현장 일을 마치고 들어와 다 저녁에 세 시간을 넘게 꼬박 움직이고 가시었네.

 

연필깎이가 셋,

다른 데서 열심히 일하고 여기 와서 더 오래 쓰임을 다하다가 삐거덕거리는.

물꼬에는 너무 오래 일한 낡은 물건들이 많다.

쓰임을 끝까지 다하도록!

생태적이라는 게 별건가, 더 쓰기, 끝까지 쓰기!

벽시계도 멈췄다. 셋이나.

드디어 새로 하나씩 사들이기로 한다.

들어오는 이에게 사오십사 부탁을 했다.

 

저녁 7시에 하는 계자 미리모임을 9시에야 했다.

너무 익은 사람들이라 오히려 힘주어 해야 할 청소 자리(창틀이라든지)들을

더 많이 살피느라.

객관적으로 넓은 곳이라 적은 손이 못 가는 곳들도 여럿.

나머지는 내일 아침으로!

열의 어른들이 함께하는 계자다.

들고나는 움직임이 있으니 실제는 그만큼의 숫자가 안 되기도.

해서 이렇게 적은 인원의 미리모임은 거의 없던 일.

대학 1년 때 인연을 맺어 대부분의 계자를 함께해온 휘령샘은

제도학교 현장에 있으면서 최근 몇 해는 물꼬 교감의 역할로 샘들 중심축을 가진다.

초등 6년에 와서 새끼일꾼을 거쳐 품앗이샘이 된 윤지샘,

학과 차원에서 자원봉사를 왔던 근영샘은

그 한 번의 경험을 넘어 다시 또 왔다.

앞서 두 차례의 계자에서 신청을 했으나

학교에서 모든 방학 중 활동은 금지했었기 오지 못했다가.

제욱샘은 근영샘의 후배로 물꼬 새내기.

사대생 교대생들의 좋은 실습현장이 되는 계자라.

아홉 살 아이로 물꼬 계자에서 연을 맺어

새끼일꾼을 거치고 드디어 스무 살 품앗이일꾼이 된 윤호샘.

이들은 왜 이 귀한 방학 혹은 휴가 혹은 쉼의 시간을

이 열악한, 이 일 많은 곳에 모였는가.

언젠가 화목샘이 그랬더랬다,

물꼬를 내내 그리워하다가 막상 대해리 버스에서 내려 교문을 바라보는 순간,

, 내가 이 고생스러운 곳을 왜 또 왔나 싶다던가.

이곳에서의 지독한 움직임이 우리 삶에 힘을 내게 한다.

그것이 또 계속 물꼬 일을 해나갈 수 있는 힘이 되고.

낡음, 불편함을 사람 손으로 메우며 굴러가는 이곳이다.

교사가 많기로 유명한 물꼬라.

그래서 그간 너무(일정) 많은 걸 했을 수도.

그렇다면 교사 수가 적다면 그에 맞게 구조를 만들면 될.

모둠을 나눠서 하는 여러 활동을 때로 덩어리로 하기로.

물꼬의 오랜 세월은 어떤 식으로든 축적물들이 있었고,

그것은 각 상황에서 즉흥이 강하다는 뜻이기도.

아이들이 오면 그 아이들에게 물어가며 일정을 짜면 될 것이었다.

그런 자율이 큰 공부이기도 한 이곳이라.

이번 미리모임의 주제는 삶은 해석이었다 할까.

우리가 우리 앞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결국 관건.

우리의 긍정으로 아이들의 긍정을, 세상의 긍정을 만들자.

제 삶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으로 사는 법에 대해 다시 새기는 시작이었다.

 

혼자 살아도 한 살림, 아이들이 적어도 해야 할 건 다 해야 하는.

내일 오전에 할 청소거리를 남기고 공간을 압축했는데도

신발장과 짐장에 아이들 이름 붙이는 일에서부터

속틀과 계자 알림 데코를 붙이는 일들도 해놓아야 하는.

손에 익으면 별 게 아닌 일도 처음 해보는 이들이라면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제 삶에서 내내 하는 일이 아니니 낯설고 서툴기도.

01시에야 잠자리로 들었다.

결국 걸릴 시간은 또 다 걸리더라.

 

내일은, 아이들이 온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476 2014. 7. 6.해날. 낮은 하늘 / 이니스프리로 옥영경 2014-07-16 1908
6475 2011. 1.22-23.흙-해날. 맑음, 그 끝 눈 / ‘발해 1300호’ 13주기 추모제 옥영경 2011-02-02 1907
6474 10월 13일 물날 맑음, 먼저 가 있을 게 옥영경 2004-10-14 1907
6473 2008. 5.4-5. 해-달날. 비 간 뒤 맑음 / 서초 FC MB 봄나들이 옥영경 2008-05-16 1905
6472 2005.10.29.흙날.맑음 / 커다란 벽난로가 오고 있지요 옥영경 2005-11-01 1905
6471 2007.11.10.흙날. 썩 맑지는 않지만 / 지서한훤(只敍寒暄) 옥영경 2007-11-19 1900
6470 12월 13일 달날 맑음 옥영경 2004-12-17 1900
6469 일본에서 온 유선샘, 2월 23-28일 옥영경 2004-02-24 1900
6468 <대해리의 봄날> 여는 날, 2008. 5.11.해날. 맑으나 기온 낮고 바람 심함 옥영경 2008-05-23 1899
6467 5월 25일 불날, 복분자 옥영경 2004-05-26 1898
6466 39 계자 아흐레째 2월 3일 옥영경 2004-02-04 1896
6465 2005. 10.23.해날.맑음 / 퓨전음악 옥영경 2005-10-24 1894
6464 39 계자 나흘째 1월 29일 옥영경 2004-01-31 1894
6463 125 계자 이튿날, 2008. 7.28.달날. 빗방울 아주 잠깐 지나다 옥영경 2008-08-03 1889
6462 39 계자 엿새째 1월 31일 옥영경 2004-02-01 1889
6461 2008. 3.14.쇠날. 갬 / 백두대간 6구간 가운데 '빼재~삼봉산' file 옥영경 2008-03-30 1887
6460 12월 14일 불날 맑음 옥영경 2004-12-17 1886
6459 불쑥 찾아온 두 가정 2월 19일 옥영경 2004-02-20 1880
6458 12월 12일 해날 찬 바람, 뿌연 하늘 옥영경 2004-12-17 1878
6457 6월 7일, 성학이의 늦은 생일잔치 옥영경 2004-06-11 1878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