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남도.

집안 어르신이기도 하지만 오랜 물꼬의 논두렁인 팔십 노모의 삶을 살피는 하루.

댁에서 거의 현관처럼 드나드는 베란다 미닫이문에 얼룩이 많았다.

손잡이가 따로 없기 때문이었다.

이중문에 각 앞뒤로 손잡이를 붙이다.

 

보일러를 온수로 하여 틀고 씻으면

물이 너무 뜨거워 쓸 수가 없다셨다.

찬물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 아닐까?

수도꼭지를 좌우로 움직이니 역시나 찬물이 나오지 않는다.

세면대 뒤편 찬물 쪽을 살폈다. 밸브가 잠겨있었다. 틀었다. 나왔다.

 

부엌 환풍구 쪽에서 바람이 적잖았다.

환풍야 어찌 할 건 아니고.

환풍기 아래가 훤하다. 물론 밖으로 또 다른 창문이 있기는 하지만.

한밤에 그게 보여 벌떡 일어나 김장비닐을 잘라 붙이다.

 

싱크대에서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온수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 하시기

마침 이웃이 수도꼭지 끝에 달아 쓰는 순간온수기를 사왔다.

그런데 그 무게 때문에 수도꼭지의 코브라 부분이 자꾸 처졌다.

이웃 아저씨가 위쪽 창문틀에 피스를 박아 끈을 매달겠다는데,

피스가 박히지 않는다고 드릴을 놓고 망치를 찾고 있었다.

제가 좀 볼까요?”

잠시 쉬시라 하고 피스를 보니 목재용피스(외날피스). 창문틀은 플라스틱 재질인데.

창고로 갔다. 피스 사이에서 직결피스를 찾아왔다.

박아드렸고, 아저씨가 끈을 이었다.

 

마당에서 쓰기 편한 연탄화덕이 있으면 좋겠다셨다.

아래채를 하나 달아내고 연탄아궁이는 아궁이대로, 장작아궁이는 또 그것대로 있었지만,

연탄을 쓰고 있으니 들인 연탄 있는 참에 밖에서 빨래도 삶고 할 화덕이 있으면 하시는.

연탄아궁이에 바로 올려쓰는 건 불편하시다네.

예전부터 편하게 쓰시던 물건이 필요한.

연탄화덕이란 게 여러 해를 가지는 못한다.

낼도 잠시 시내를 다녀와야겠네.

 

치과치료를 미루고 계시기 그것도 나섰네.

(작은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수입이 코로나19로 막혀 있었다.)

자식들이 코로나19로 팔순잔치를 미루고 있었다.

연락하여 잔치 대신 치과비용을 마련키로.

마음이야 뚝딱 내가 해드리면 좋으련,

물꼬에서 사는 일이 이런 일을 혼자 감당하기 여의찮은 바 있어.

 

거실창으로 바람이 적잖이 든다는데,

창에 보온시트(에어캡? 뽁뽁이?)를 붙여드리면 좋을 걸,

그건 못 챙겼다.

내일은 일찍 이곳을 나서야 하니...

댁을 드나드는 다른 젊은이에게 부탁을 했다.

 

순간온수기를 단 싱크대 수도꼭지를 쓰면서 노모가 말했다.

전기가 약해서 그러나...”

수압이 약해졌다는 말이다. ,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구나.

전기는 들어오느냐 마느냐의 문제, 이어지느냐 끊어지느냐 하는,

수압은 그거랑 상관없는.

그 순간 인터넷이며 컴퓨터기기에 문외한인 내가 아들에게 하는 말들을 생각하였네.

잘 모르는 내가 던지는 질문에 아들은 말한다,

아이구, 불쌍한 울 엄마...”

인터넷으로 처리해야 할 문서라든지에 시간을 오래 들이며 헤매고 있으면

용케 아들이 곁에 있어 도울 때면 

한참을 씨름하고 있었던 게 무색하게 뚝딱 해주면서 그가 하는 후렴구.

 

늙어가고, 쏟아지는 문물에 서툴고,

위로라면 우리 모두 늙는다는 거?

노인을 환대하는 문화를 그리워 함.

 

안부를 물으며 원고가 어찌 되어가는지 편집자가 문자를 보내왔다.

그곳도 일정을 짜야 할 테니.

출판사에서 기획한, 아들과 함께 쓸 책.

계약은 작년 10월에 해놓고, 지난 3월 말이던가 겨우 5분의 1 정도의 거친 초고만 보냈던.

(그 사이 교육에세이를 하나 냈네: <다시 학교를 읽다>)

의대 다니는 아들 실습 일정으로 밀렸다 이 겨울에는 그예 쓰자고 의기투합한 정도였던.

담주부터 9주 동안 빡시게 쓰장

이라는 아들의 문자를 복사해서 붙이고,

ㅎ 저는 겨울 일정이 있으니 4주간으로 집약하는 걸로요~’

답문자를 보내다.

, 곧 더 구체적인 일정을 보내야 하리.

해가 다 가기 전 그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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