땔감을 마련하는 일이 여러 날 이어진다.

농기구창고에 쌓여있던 나무들도 전기톱이나 도끼로 자르거나 쪼개

뒤란 보일러실 안에 들이고, 본관 복도 뒤란으로도 쌓아올리고.

교무실 일들을 챙기다; 자동차보험에서부터 화재보험이며 몇 가지 서류들.

팩스고 복사기고 인쇄기고 원활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하다샘이 물꼬직인이며 개인사인까지 컴퓨터 안에서 가능토록 해줘서

올해는 일이 수월한.

 

어깨에 탈이 좀 났다. 통증이 심한.

어제 어깨를 심하게 흔들며 한 운동 때문일 듯.

신경이 눌렀거나 힘줄이 찢어졌거나.

살살 움직인다.

핑계로 앉아 책도 좀 들여다보기. 마침 독서 책 원고도 하나 써야 하는 참에.

얼마 전 50대 중반 가장에게 <유한계급론: 제도의 진화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의 한 구절을 보낼 일이 있었네;


유한계층의 과시적 이미지를 자신에게 대입시키려는 중간계층의 여가활동은 눈물겹다. 주말이면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무조건 집을 떠나서 휴가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괴로움도 안락과 평화, 자유를 희생하는 일종의 노동행위이다.’


오늘 식구들과 밥상에 동행한 책이 바로 그것.

사람들은 돈을 번다, 삶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재화를 얻으려고.

그런데 부자들은 평생을 먹고 살 돈이 있지만 돈을 더 벌려 애쓴다.

생활의 욕구를 충족하는 걸 넘어 그 자체가 목적이 된.

부의 절대적 크기는 중요치 않고 상대가 얼마나 가졌느냐 비교가 중요하다.

모두가 잘 살거나 못 사는 건 상관없고, 경쟁에서 우위가 중요하다.

소스타인 베블런이 19세기 말 미국 부자들을 관찰하고 얻은 결론이었다.

인류문명 전체는 사적 소유권의 기초 위에 성립한 야만 문화이고

야만 문화 전체를 통틀어 사회를 지배한 집단을 유한계급이라 불렀다.

그들은 금전적 경쟁을 하고 과시적 소비를 하며 과시적 여가를 즐긴다.

베블린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감소한다는 기본 공리를 뒤집었다.

비싸면 더 잘 팔린다고; 명품(베블린재;Vevleln-goods)의 경제학.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 목적이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용을 얻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지출을 통한 부의 과시인지라.

 

그러니 혁명을 하자?

아니다. 그건 맑스의 깃발이었다.

그래서 맑스는 혁명의 소용돌이에 있었고, 베블린은 세상을 관조했다.

맑스는 부르주아 독재를 타도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혁명이 필연적이며

그것이 역사의 진보라고 했지만(유산계급 대 무산계급),

유한계급과 생산계급(하층계급)으로 나눈 베블린은

그 세상은 혁명 따위는 없이 그저 인습과 제도의 진화가 있다고 했다.

하층계급은 유한계급의 규범과 생활양식을 보며

외려 그 일원이 되기를 바라며 그들을 흉내 내려 하더라고.

위에 인용한 문구는 그쯤에서 나온 부분.

 

이 책에서, 보수성이 지배계급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라는 부분에 이르면

위로를 느낀다. 계급적 적대감을 좀 내려놓게 된다는 말?

일종의 관성이라는 거다, 한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사실 이 부분은 다시 좀 읽어봐야겠는)

유한계급은 물질적 이익이나 기득권 때문에 보수적인 게 아니란다.

기존의 지배적인 생활양식과 습관적 사고를 더는 허용할 수 없는 상황(환경)에 이르면

사회의 진화가 일어나는데,

부유층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쉽게 혁신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그

렇게 하도록 강제당하지(변화를 재촉하는 경제적 강제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란다.

보수와 진보가 어디 그렇게만 구별될까?

역시 개인차가 있겠지.

인습과 생활(행동)양식을 교정하려는 노력은 수고롭고

기꺼이 그걸 하는 건 환경의 강제된 압력도 있겠지만 계급을 넘어 지성인일수록 그러고자 하지 않을지.

내가 진보(주의자)에 더 관심 있는 건 바로 그 지점 때문.

그들이 기꺼이 그런 수고를 한다는 의미에서.

, 유산계급이 그런 지성인이 될 확률(하다못해 책도 더 많이 볼 여유가 주어진다는 뜻에서)이 높아 보이긴 하더라만.

그런데 이 땅의 진보는 마치 선민사상을 지닌 듯해서 또 한편 나는 진보를 경계하네:)

 

물꼬에는 보육원에서 자란 인연들이 여럿이다.

한밤에 문자가 하나 들어왔다.

잘 지내시냐고, 일이 좀 생겨 당분간 물꼬 가기 힘들겠다고,

괜찮아지면 그때 뵈러간다고, 부디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라.

먼 길을 오래 가는 인사 같아 꼬치꼬치 캐물으니 금전적 문제라 했다.

물꼬 청년들은 다른 문제는 몰라도 돈 얘기는 누구랄 것 없이 물꼬에 말 안 한다고들.

물꼬 사는 형편이 빤하고, 걱정만 끼치지 어차피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맞다.

그래도 직접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하더라도 같이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을 찾을 수는 있지 않을까.

어렵게 꺼낸 전말은 보이스피싱 피해였다.

돈이 날라갔어요라고 그가 썼다.

스트레스로 병원에 입원까지 하, 이제 좀 수습이 되어서 했던 연락.

신고는 했지만 범인을 잡아도 돈 받기는 힘들다.

사라진 돈을 채우느라 빠듯하게 살고 있다.

돈이야 번다지만 몸 상하면 안 된다. 부디 밥 잘 먹고, 단단히 마음먹고!’

밥까지 굶을까 봐 한 달치 식권이라도 사라고 얼마쯤을 통장에 넣어주었다.

안 좋은 소식을 전함에 미안해라 했다.

외려 어려운 시간 물꼬가 생각났다니 고마웠다.

좋은 일도 그렇지 않은 일도 다 나누자! 오늘 하루도 애쓰셨네.

자고 일어나 새로 태어나 새 하루를 또 잘 살자. 영차!’

혹여 소식을 아는 분들이시면 그의 기운을 북돋워주셨으면.

 

보이스피싱도 최소한의 밥을 위한 몸부림이라면 용서할 수 있는가,

아니면 유한계급 흉내를 내자는 것이면 죽어 마땅한가.

이래도 저래도 사람으로 할 짓은 아니다.

그 일은 어쩔 수 없이 일이 그리된 게 아니라 애초 속임을 목적으로 하니까.

유한계급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들을 흉내 내는 데 우리 삶을 쓰고 있다면 그것도 사람으로 사는 데 불행한 일이다.

개인의 점검 혹은 정신차림이 필요하겠네.

유한계급의 규범과 생활양식이 표준인 양 착각하지 말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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