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13.불날. 맑음

조회 수 261 추천 수 0 2023.07.21 02:10:45


빗방울이 딱 다섯 방울 떨어지기도 했으나

다저녁때 소나기도 내렸으나

숲그늘도 좋고 볕도 좋고 바람도 좋고 별도 쏟아진 밤이었다.

 

오전에 구두목골 작업실현장을 거들다.

B동 컨테이너 안 바닥에 합판 까는 일을 마감했다.

(오후에는 고래방 뒤란 창고와 숨꼬방 안에서

구두목골 작업실에서 작업대로 쓸 테이블들과 선반들을 옮겼다고)

 

오후에 고개를 넘어 한 숲에 이르렀다.

우리 식구 셋만 머물기로 한 숲이었다.

생일 선물로 숲을 주겠노라.”

전공의 1년차인 아들의 생일이었고,

아침뜨락을 가꾸면서 식물원이며 수목원이며 틈나는 대로 들러왔다.

숲에서 소리를 하겠다고 북도 챙기고,

차를 달이겠다고 찻바구니도 챙기고.

한 팀만 받는다고 했으나 그렇지는 않았다한 부부가 더해졌다.

부부에게 아들이 엄마를 소개했다.

몽상가도 있고 실천가도 있잖더냐,

그런데 몽상가이면서 실천가가 드문데

저희 어머니가 그렇더라,

훌륭하신 분이라 했다.

고마워라. 물꼬가 퍽 괜찮은 곳이란 말로 들었다.

차를 달이고,

물가에서 발 담그고 소리도 하고,

숲을 걷고,

누구는 낮잠도 자고,

거한 저녁을 먹었다. 어느새 가족이 된 다섯이었다.

 

밥상을 물리고 별채에 앉아 찻자리를 마련하고 케잌에 촛불도 켰다.

다포에 다식접시를 대신한 감잎을 동석한 부부가 아름답게 보아주었다.

부부의 남편분이 생일을 맞은 아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었고,

어미는 노래마을 사람들그대의 날을 불러주었다.

엄마도 이제 가사를 잊네...”

그러게 내가 그리 되었으이.”

그래도 노래 가사 사이에 공백은 없다. 낱말을 집어넣으면 되니.

남편분이 빳빳한 5만원권 신권 지폐가 수북한 장지갑을 꺼내

아들이 생각이 바르다고, 생일이라고, 차를 잘 마셨다고, 소리값이라고

여러 차례 선물로 지폐를 내밀었는데,

위조지폐인가 싶기까지 하다고 우리가 농을 했더랬네.

더는 과해서 아니 받겠노라고 하고.

 

자정도 넘어가고 있었다.

방에 있는 작은 상 위에는 와인과 치즈가 놓였다.

식구들끼리 퍽 오랜만에 모인 자리였다.

야삼경도 지나고,

아들과 방을 빠져나와 숲길을 걸었다.

하늘에는 별이 날고

지상에는 반딧불이 날았다.

한 아이가 태어났고 이렇게 자라 함께 생을 살아간다.

학교를 다니지 않던 어린 날(10학년에도 읍내 고등학교를 갔던) 늘 그랬지만, 이제는 또 다른 질감으로,

고맙다, 벗이여, 동지여!


(아, 그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공연을 부탁했는데,

현실적으로 달에 한 차례라면 가능할 수 있겠다 했더랬다.

숲체험 프로그램에 강사로도 와주면 좋겠다고.

논의해 보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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