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계자 이틀째, 2006.8.1.불날. 계속 솟는 기온

조회 수 1961 추천 수 0 2006.08.02 16:23:00
111계자 이틀째, 2006.8.1.불날. 계속 솟는 기온


이 산골이 이만큼 덥다면 산 아래는 정말이지 끓는 가마솥이겠습니다.
여기는 그래도 그늘 아래선 충분히 더위가 가셔지고
개울에 발을 담그고 앉았으면 얼음골이 다른 데가 아니지만...

뙤약볕이 내리 꽂히는 바람 한 점 없는 한낮,
줄줄 땀이 흘러내리는데도 아랑곳없는 이곳입니다.
“좀 덥네.”
아이들이고 어른들이고 두엇이 그리 말할 뿐,
더위는 화제거리도 못됩니다.
여름이 더운 건 당연한 것이니 별스러울 것도 없다는 거겠지요.
어제는 선풍기와 에어컨을 찾기 바쁘더니...
여름이 삶을 방해하지 않듯이(겨울이야 가난을 힘겹게 할 때가 있기도 하지만)
산골의 즐거움 역시 더위 때문에 사라지지는 않는다지요.

이른 아침, 하나둘 눈을 뜬 아이들은
산골 정적을 깨뜨리며 밖으로 나왔습니다.
고래방으로 건너가 요가로 몸을 풀었지요.
이번에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아침 음반은
‘Kirkeling Kulturverkted Collectionw’입니다.
자신의 호흡을 관찰하며 명상으로 마음결에 빗질도 하지요.
댕, 하고 종소리가 방 가득 울려 퍼지면 모두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댕, 하고 종소리 다시 나면 가만히 눈을 뜹니다.
득도한 이일지라도 날마다 수련치 않으면 범인과 다르지 않을 지니
하물며 멋모르는 우리 같은 평범한 이들이야
마음밭을 가꾸고 또 가꾸며 살 일이겠습니다.

‘해건지기’ 셋째 마당은 세 패로 나뉘어 움직였지요.
고학년들은 이 학교를 쓰는 다른 이들을 위해서
지난 큰 비에 무너져 내린 꽃밭의 돌탑을 치우기로 했고,
한 패는 길섶에서 나고 자라는 것들을 보며 걷는 아침 산책을,
그리고 다른 패는 운동장 가 풀을 뽑았습니다.

아침밥을 먹은 아이들이 다시 모두방에 모였지요.
굵은 연필만을 써서 고요 속에 그림을 그리다
‘열린교실’로 들어갔습니다.
저마다 제 하고픈 교실을 찾아들었지요.

수현, 은하는 그림놀이를 합니다.
마을 아이 종훈이도 들어갔네요.
고래방 뒤란 너머 ‘동쪽 개울’에서 큰 돌 작은 돌들을 담아 나르는데
새끼일꾼 성학이가 힘을 잔뜩 쓰고 있습니다.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려 넣고 니스를 칠하네요.
어항에 넣는다고도 하고
집에 가서 거실 책장에 올려놓는다고도 합니다.
부모님 선물로도 드릴 거래요.
여기 오면 효자가 따로 있지 않다니까요.

예원 수연 동휘 현지 류옥하다는 바느질에 한창입니다.
처음이라는 예원 수연 동휘는 홈질에 시침질 박음질 반박음질을 연습하고
바늘을 다뤄본 이는 작은 주머니와 지갑을 만들고도 있습니다.
부직포로 바늘쌈지(꽂이)를 만들고도 있었지요.
예원이의 돼지 바늘꽂이, 수연이의 포도 지갑, 동휘의 하트모양 바늘꽂이에
지나던 아이들도 한 마디씩 감탄을 해줍니다.

매듭을 하는 아이들은 상에다 종이 테잎으로 실을 고정해놓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엮고 있습니다.
경준 규리 나혜 희주 정연 서정 주경 은영이들입니다.
“엄마 반지예요.”
“아빠 핸드폰 줄요.”
“친구 선물할 거예요.”
“제 팔찌요.”

영석이랑 동근이 인혁이는
어제부터 불려놓은 허드렛종이를 갈고 있습니다.
“이게 진짜 종이가 돼요?”
“쓸 수 있어요?”
뜰채로 건져 올려 펼친 다음 물기를 빼고
비닐 위에 말려놓았습니다.
인혁이는 꽃잎도 붙였는데
물기가 너무 빠진 뒤라 붙어있을지 모르겠네요.

승호 해인 수영 준서 지수 도현 세훈 지원이는
놀잇감을 만든다며 숲으로 갔지요.
가는 길에 계곡을 그냥 지나쳤을 라나요.
한참 만에 새총 모양 가지들을 구해 와서는
숨꼬방 앞에서 자르고 벗기기 한창입니다.
“니네 뚝딱뚝딱이야?”
계속 톱질에 칼질을 하는 양을 보며 지나던 아이들이
뚝딱뚝딱교실인가 물을 만치 뚝딱거리고 있었지요.

목공실에선 진짜 뚝딱뚝딱이네들이 있습니다.
주빈 기훈 혜수 현진 영우 영운 준호 종민 동진이 들이지요.
“기본기!”
뭔가 만들기 전 적어도 망치질 못질은 돼 있어야 한다고
언제 적 계자부터인가 자격증이 생겼네요.
“무슨 원시시대 호패야.”
다른 물건을 만들어도 될 만치의 실력이 되면
커다란 나무토막으로 된 자격증을 받는답니다.
오늘은 그 자격증, 글쎄 동진이만 받았다합니다.

뭐나 다 하고픈 범순 주환 민정 재관 도연 혜린 경중 종훈 기륜이는
‘다 좋다’방을 만들었습니다.
아침에 고학년들이 치우던 돌 무데기를 치우며 땀을 흘린 다음
어제의 대동놀이를 재현하고 물에 발도 담갔다지요.

안 뵈는 녀석들도 꼭 있습니다.
잠자리를 쫓거나
물꼬의 개집 앞에서 장순이랑 쫄랑이랑 번개랑 까미랑 놀기도 했겠지요.
남새밭 사이에서 가지와 오이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닭장 앞을 서성이고도 있겠네요.
어슬렁어슬렁 온 교실을 돌아다니며 기웃거리는 녀석도 있기 마련입니다.
찬이는 구경을 다니고 상범이는 혼자 하는 알까기가 더 재밌나 봅니다.

옷감 물들이기가 폐강의 수모를 겪는 건 또 처음 보네요.
다연샘은 오늘 광고를 열심히 해서
내일은 아이들이 넘치도록 오게 하리라 합니다.

오후 2시의 ‘우리가락’, 쉽지 않은 시간이지요.
서쪽으로 조금 기울기 시작한 해가
학교 동편의 고래방을 더 강하게 비추고 있었겠지요.
아, 그런데 우리는 거기서 악기를 치고 뛰며 더위를 내몰고 있었습니다.
참말로 걸판지게 놀았지요.
옷이 흠뻑 젖도록, 온 몸에 비 오듯 땀을 쏟으며.
졸려서 뒤로 빠져있던 이들도 일어나 손뼉을 치거나
그만 넋이 나간 듯 놀랍게 바라보고 있었지요.
불과 몇 십분 만에 판굿을 선보이는 아이들을 보며 눈을 뎅그랗게들 떴고
그래서 쉬겠다고 나갔던 동휘며들이 징을 치고 쇠를 치러 다시 들어왔더랍니다.
“다음 시간에도 이거 할 거죠?”
못내 아쉬워하는 아이들입니다.

물꼬에는 너른 운동장 같은 밭에서 유기농으로 키운
산골 감자가 많기도 했답니다.
장에 내다 돈사고도 남은 것들도 있겠지요.
그래서 감자요리가 이번 여름 계자 보글보글의 주재료입니다.
동근 지원 주경 민정 수현 수연이는 감자떡을 만들고
해인 승호는 감자볶음밥을 만들고 있습니다.
떡볶이는 언제나 아이들이 터져나가지요.
오늘 감자떡볶이에도
동휘 영우 영운 영석 동진 현진 찬 재관 준호 기훈 기륜 경준 세훈 들이
올망졸망 앉아 볶이에 넣을 감자떡을 빚고 있네요.
수영 지수 주희 혜린 류옥하다는 부침개를 부쳐내고
혜수 인력 종훈 종민이는 수제비를 끓이는 중입니다.
샐러드를 위해 감자를 으깨고 야채를 다지는 이들은
희주 현지 나혜 정연 주빈 은하 예원 도현이지요.
도연 경중 준서 은영 규리 범순 서정이는
핏자를 굽는 후라이팬에서 눈이 떠날 줄 몰랐습니다.
가마솥방에선 색깔도 고운 화채를 후식으로 내주셨지요.

주빈이의 칼솜씨는 웬만한 품앗이일꾼보다 낫더랍니다.
종훈 종민 인혁 혜수는 감자를 강판에 잘도 갈았지요.
종민이 종훈이는 대파를 썰고,
혜수와 인혁이는 감자껍질을 깨끗하게도 벗겼습니다.
경중이는 형 누나들 틈에 끼여 별 말은 않았지만
칼질도 잘하고 만드는 내내 즐거워했다지요.
다른 시간들에 잠깐씩 보였던 도연이의 분산력(?)이
요리에서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모아지더라나요.
감자핏자네는 찜통 교실을 벗어나 바깥 건물 그림자 아래에 자리를 잡았는데
오고가는 바람이 툭툭 치더랍니다.
“그런데 딱 하나 문제가 있었어요.”
다른 방들이 이네가 어딨는지 몰라 처음에 음식을 나눠주지 않더라나요.
감자비빔밥을 만들던 해인이와 승호 오누이는
요리시간이 행복해서 흐르는 땀방울이 아무것도 아니더랍니다.
2시간여 찜통에서 떡을 찌는 동안 불평 한마디 없었다는 감자떡방 아니어도
기다릴 줄 아는 아이들은 어른들을 감동 시켰고,
전체를 진두지휘한 가마솥방 엄마들은
보글보글방들을 맡은 샘들과 호흡이 너무나 잘 맞아 즐겁더라지요.

저녁이면 한데모임을 합니다.
손말로 노래를 배운 뒤
주환이와 류옥하다가 진행을 맡았지요.
기훈이와 동진, 영우 영운 종민 종훈 주빈이네들,
그리고 도연이와 어리다는 게 무기인 찬이와 기륜이 같이
힘들도 좋아 끊임없이 말이 둥둥 떠다니는 이들이 있더라도
며칠이나마 같은 공간에서 생활해나갈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은
자못 진지합니다.
낮에 한 것들을 나와서 보여주기도 하고
보글보글방에서 나온 음식들 품평회도 하고
학교에 답변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남자 화장실이요, 벌레가 너무 많아요.”
“재래식이라 그래요. 이해해야 해요.”
“밥을 먹는데요, 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게요...”
“아, 그건 정미기가 잘 안돼서 그래요. 이번 주에 고칠 사람이 온대요.”
이곳에 사는 류옥하다는 아주 물꼬 중앙대변인입니다.
그런데, 아이들도 아 그런가 부네 하고 그만입니다.
“밤에 배고파요.”
이른 저녁을 먹는 이곳은
늦은 밤까지 불을 훤하게 밝히는 도시에서 온 아이들에겐
흐름이 많이 다른 모양입니다.
밤참대신 이름 아침을 제안했지요.
예서는 자연이 가진 시간대에 몸을 한 번 맡겨보자 합니다.
그렇더라도 일정이 늦어지기 일쑤지만.


책방은 늘 문제입니다.
이번에는 구조를 달리 좀 해봤지요.
책을 읽다가 다시 제자리에 꽂는 게 아니라
쌓아놓고 사서가 정리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쌓는 게 아니라 소파에 툭, 책상에 툭, 바닥에 툭,
그렇게 여전히 함부로 다뤄진다는데 있습니다.
“마음을 다시 잘 내서 해봅시다. 저는 아이들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승현샘이 그랬지요.
정히 안 된다면 책방을 닫자는 의견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민정이가 그러네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못 읽는다는 건...
방을 닫는다고 그런 귀찮아함이 달라지진 않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방법이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사회를 맞닥뜨린 것 같은 절망감이 잠시 엄습합니다.
느끼는 사람이 하는 거다,
늘 그것 밖에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이번에는 제도를 바꾸면 다를 수도 있겠지 했건만
여전히 드러나는 문제에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큰 단면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하는 생각의 과정이
모두에게 좋은 공부가 되겠습니다.

밤엔 고래방으로 건너가 그림동화를 빔프로젝트로 보았습니다.
한여름 밤의 영상은
어떠한 도움말이 없이 그것 자체로 감동입니다.
“돈으로 하늘을 살 수 있는가,
비를, 바람을 가질 수 있는가?”
이 땅이 결코 우리들의 소유가 아님을,
단지 우리는 이 우주의 일부일 뿐이라는 시애틀추장의 전언 속에
물꼬가 가진 생각을 나눕니다.
배경으로 깔린 핀란드 음악이 그림을 더 많이 이해하게 했지요.
“줄곧 더 많은 것을 가지려는 데만 몰두하던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자연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파괴하는 것은
그들에게 생명 그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너무 늦기 전에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글쓴이는 이렇게 책 끝에 덧붙이고 있었지요.

샘들이 읽어주는 동화책을 들으며 아이들이 잠자리로 가면
어른들은 밤마다 가마솥방에서 갈무리를 합니다.
“우리도 애들처럼 일정 따라 갈무리를 해볼까요?”
아이들 한데모임하듯 샘들 하루재기를 해보는 오늘입니다.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선진샘이 다가와 가만히 속삭입니다.
“선생님 아까 보기 참 좋았어요.”
“응?”
“저녁에 은하랑 안고 있었잖아요? 그때 보기 좋았다구요.”
아마 한 아이와 가만히 안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말하나 봅니다.
보기 좋음이 어디 이것만 있을까요.
아이들이랑 어른들이 이 산골에서 만들어내는 풍경이
모다 명작입니다.

“야식을 마련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나...”
“잘 먹겠습니다.”
내일도 온 하루를 아이들과 보내려면 잠이 더 필요하지 않겠냐 걱정했지만
오늘도 이곳의 ‘젊은 피’들은 밤참을 먹고 산책을 나가네요.
새벽 3시가 넘어가는 이 시간이 되도록
마을 들머리에서 이야기꽃이 한창인가 봅니다.

아, 그리고
오늘 한 아이가 한 샘으로부터 모두를 위해 비밀특파원의 임무를 받았는데,
그게 무엇인지를 말하고픈 마음이 꿀떡 같으나
그이의 신변보호를 위하여 말할 수가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X 화일을 여는 십년 뒤까지 간질거리는 입을 어찌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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