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계자 이튿날, 2008. 7.28.달날. 빗방울 아주 잠깐 지나다


<기껏 만들었으니까 줘야지>


볕이 좋습니다.
이불 넙니다.
고소한 햇볕내 담아 뽀송뽀송하게 덮었습니다.

산골의 새벽은 서늘합니다.
희중샘이 이른 잠을 깨
쌀쌀한 아침바람을 창문 닫아 챙겨 주었습니다,
이불도 덮어주고.
‘물꼬에 오기만 하면 부지런해지는 것 같아서 좋은 공간이구나...
내가 아이들을 많이 아끼는구나...’(희중샘 ‘하루평가글’에서)
아이들과 스물네 시간 함께 뒹구는 날들은
어른들로 하여금 자신을 잘 들여다보게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고마운 배움의 자리이지요.

‘마당과 학교 둘레를 아이들과 얘기하면서 거닐 때
느낌이 참 좋았다.’(소희샘 ‘하루평가글’에서)
생은 큰 어떤 사건들보다 이렇게 소소함들로 채워지는 게 아닐는지요.
그 소소함, 소박함이 빛나는 산골입니다.
아이들의 놀이도 그러하지요.
수건돌리기, 마피아놀이 하나 만으로도
아이들은 숨넘어가도록 즐겁습니다.
소박함들이, 소소함들이 빛을 발하는 이곳,
일반 학교에서 일정과 일정 사이가 그저 잠깐 쉬어가는 것에 불과하다면
이곳에선 어쩌면 그게 더 큰 일정이 되기도 한다지요.

엊저녁부터는 아이들이 설거지를 하고 있습니다.
왔던 아이들이 적으니 ‘지도가 필요’하다고들 샘들이 말합니다.
인터넷으로 받게 되면서
오랫동안 물꼬에 왔던 아이들이 신청을 놓친 경우가 많았네요.
그래서 구석구석 설명을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설거지만 해도 헹구기가 시원찮았지요.
부엌을 들여다봅니다.
해린이가 돕겠다고 나서고
정훈이가 끝까지 그릇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동준이는 도울 일 없냐 방방거리고 있었지요.

‘손풀기’.
특별할 것도 없지만
수학처럼 그림에 주눅 든 어른들을 많이 봅니다.
물론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이들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인 우리도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그림을 고를 수 있지 않겠는지요.
사물을 보며 보이는 대로 옮겨봅니다.
나날이 스스로가 그린 선에 놀라는 시간이지요.

‘우리가락’.
소리도 배우고 가락도 배웠습니다.
유달리 잘하는 계자가 있지요.
이번 아이들이 판소리를 그리 배우데요.
목청 좋고 가락 좋고...
“예전에 날마다 했는데 그리 할 수 있었으면...”
소희샘은 아이 적에 보냈던 우리가락시간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지요.
“많은 애들 앉혀놓고 진행하기 쉽잖은데...
함께 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겠다, 같이 즐기면서 샘이 해서...”
편하게 배우고 익히고 나눌 수 있었다는
은영샘이었지요.
공연이랄 것까지는 아니었으나
마치 관객이 우리를 둘러선 것처럼 가볍게 펼쳐보이기도 했더랍니다.

‘열린교실’.
교실이 열리고 아이들이 신청해서 들어갔습니다.
지난 겨울에 함께 했던 샘들이 많으니
열린 강좌도 비스무레하네요.
‘입체책’은 새하 한백 정훈 가온 기현 혜원이가 만들었습니다.
로빈손의 일상을 담거나,
엄마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로,
혹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기도 하였지요.

‘옷감물들이기’.
자누 한영 해온 경이 주이 수홍 예나 재영 윤찬.
다 같이 양파 까고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었답니다.
양파 껍질에 천을 넣고 끓이는 동안
뭔가 도움이 될 일이 없을까 하여 컵 씻자 하였는데
예나가 말 끝나기 무섭게 들어가더라지요.
염색 후 개울가의 아낙네들처럼 천을 헹구러 갔답니다.
소나기 지날 땐 잠시 나무 그늘 덕도 봤다지요.
한영이, 모둠 일도 그렇고 이런 교실에서도
자기보다 어린 애들 챙기고 짐 들고, 나서서 일을 잘 챙긴다 합니다.
수홍이는 또 윤찬이를 그리 잘 챙겨주더라네요.

‘뚝딱뚝딱’.
용하 민석 필 윤준 용범 해린 승연.
이런, 이런, 이런,
총에 창에 칼에 탱크...
평화에 기여하는 물건을 만드는 뚝딱뚝딱의 전통에
금을 내게 생겼습니다,
하기야 어떤 물건이나 그 쓰임새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예를 들면 칼을 싸우는 데 쓰지 않고 요리하는데 쓴다든지 말입니다.
처음 뚝딱 진행을 맡은 영준샘한테
미처 알려주지 못했던 거였네요.
다행히 해린이가 사람 얼굴 벽걸이를 만들어주어
낯이 좀 서게 했지요.

송휘 주희는 ‘한땀두땀’을 했습니다.
베갯잇에다 부직포나 색깔천을 더해 꾸며주었지요.
황토로 감으로 혹은 호두로 물들였던 베갯잇은
더러 얼룩처럼 색을 내고 있었는데,
이렇게 꾸며놓으니 한결 나아졌네요.
서로에게 보여주는 ‘펼쳐보이기’에서도
감탄과 박수 많이 받았더랬습니다.

‘단추랑’.
다빈 예현 세혁 민규 지성 미르.
이름표를 만들었지요.
다빈이는 젤 고학년이었는데,
동생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제 일 젖혀두고 돕더랍니다.
그 와중에도 하트를 만들어 샘한테 선물까지 하여
감동을 자아냈지요.

‘다시쓰기’에는 세현 성배 희찬 동준 윤주가 들어갔습니다.
모여 앉아 같이 배를 만들었지요.
400여 년 전의 거북선이 여기 둥둥 다시 뜨고 있었답니다.
조잘조잘한 녀석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서
더 보기 좋았던 교실이었지요.

‘다좋다’.
경호 서연 가람 민정 재준 재현이가 같이 했습니다.
부엌일을 도와 감자를 깎다가
농사일을 도와 감자도 캐러 갔지요.
캘 시기를 놓쳐 밭고랑 흙두둑에서 몸 삐질삐질 내밀고 있는
알감자들이었지요.
그런데 호미 들고 앉아마자 빗방울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캤다 생색낼 만큼 큰 국그릇에 그득했네요.

점심때건지기에서 밥 먹은 뒤 모두가 늘어졌는데,
경호가 샘들 안마를 해주었습니다.
밥 때 정훈이는 옆 자리 아이들이 물을 찾으면 떠다 주고,
자누랑 찬영이 설거지할 적 혜원이도 도와준다고 들어가고,
해온이도 하고 예나도 손을 보태고...
“할 것 없어요?”
정훈이도 그리 물었지요.
필이랑 혜원이도 일을 잘합니다.
가람이도 예비새끼일꾼 몫을 톡톡히 하지요.
비 지나더니
아이들 물놀이 가겠다 나서자 그쳐주었습니다.
물이 흘러 흘러 바다에 이른다는 얘기가 나오자
성래가 그랬지요.
"만약에 바다가 맹물이라면 제가 달콤하게 해드릴게요."
가만가만 우리들을 고운 세계로 데려다 주는 그는
분명 시인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보글보글방’은 김치가 주제였습니다.
겨우내 묻혀있던 김치라지요.
‘두부김치과자’는 예나 자누 경이 윤준 어필 해린이가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반죽을 여러 번해서 과자이기보다 전에 가까웠지만
부엌에서 나온 소스로, 또 갈수록 는 실력으로
맛이 자꾸 나아지고 있었지요.

‘평화만두’, ‘풍경만두’집은
세혁 예현 경호 한백 용범 용하 윤찬 성배 새하,
그리고 기현 민석 혜원 주강이가 들어갔습니다.
만두피가 좀 두껍긴 했지만
그게 또 특징이라며 잘 쪄서 먹었습니다.

정훈 가온 승연 승완 주희 송휘는 ‘김치부침개’를 부쳤습니다.
정훈이랑 가온이가 많이 도왔다지요.
맛도 젤 무난했다는데,
하기야 저들이 손수 만든 게 제일일 밖에요.

‘김치볶음밥’은 가람 한영 미르가 볶았는데,
방을 맡은 희중샘의 요리도 계자를 더할수록 늡니다.
맛있다고들 소문 자자했지요.

‘김치수제비’는
주이 수홍 지성이 또 누구였더라...
국물맛이 시원해서 맛나다고들 했습니다,
그래서 좀 설익은 수제비가 다 용서되었다나요.

해린 필 다빈 찬영 재준 재영 세현이는
‘김치스파게티’를 만들었습니다.
소스에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더니
소금 더하고 설탕 더하고 케찹 더해 또 뭘 더하고 더하는 새
맛이 맛다워지고 있었지요.

방에 들어가지 않고 이 방 저 방 기웃거리는 녀석들도 있고,
(그러다 슬그머니 관심 있는 방에 눌러앉지요.)
자꾸만 밖이 더 궁금한 녀석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방방이 넉넉한 인심이어
배를 채우는 데야 어렵지 않습니다.
칼질을 해보지 않은 대신
자연이 혹은 다른 무엇이 그들을 또 채웠을 테지요.

열린교실도 뒷정리가 문제가 되더니
보글보글방도 그러하다고들 했습니다.
그것이 책임지지 않는 이 시대의 문화랑 어떤 연관 고리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곳에서 더욱 공을 들여 익혀주고 싶은 거지요, 뒷정리.
“야단이 무슨 소용이 있으려나요?”
샘들이 먼저 마음을 쓰고 몸을 써서 보여주기로 합니다.

오늘도 사이 사이를 수건돌리기로 채웁니다.
그게 또 덩어리가 자꾸 커져
교실을 가득 메운 동그라미였지요.
저 단순한 게 저리도 재밌을까요,
자극적인 놀이문화를 한탄하는 시대가 정녕 맞는지요.
이곳의 소박함이 그런 놀이들의 재미를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듯합니다.
보는 이도 즐겁습니다.
영준샘이 훌륭한 진행자가 되었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아이들이 그렇게 하고 있데요.

저녁답의 대동놀이는 물에서 있었습니다.
어제는 고래방에서 뜀박질도 하고 오리탄생놀이도 하였는데,
역시 여름날은 물로 할 수 있는 놀이가 최고입니다.
달래 규칙을 세울 것도 없고
편을 가를 것도 없습니다.
누구든 뛰어들고 누구든 아군이었다가 적이었다가
야단법석 한 풍광이랍니다.

어린 네 녀석이 책방에서 계속 한 아이를 놀리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 보글보글방에서 완성되지 않은 음식을 먼저 먹겠다고 떼를 쓰고
모두가 모이는 자리에서 자기 세계에 빠져 더러 목소리가 크곤 하였는데,
아이들이 한데모임에서 불만을 터뜨렸지요.
샘들도 낮에 아이들 움직임을 들여다보며
문제다 싶은 것들, 혹은 말하고 싶었던 것들이
아이들 입에서 다 나오는 한데모임입니다.
“다 만들지도 않았는데 왜 줘요?”
“기껏 만들어서 왜 남을 줘요?”
하지만 그런 의견만 있는 게 아닙니다.
“먼저 좀 주면 안돼요?”
“기다리라고 잘 타이르면 안돼요?”
그런데 불편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생각들이 대세입니다.
이것이 어디 그들의 문제일까요?
우리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입니다.
타인이 주는 조금의 불편도 견디지 못하고
다름을 못 견뎌하고
심지어 다르다는 까닭만으로 거세게 공격하고...
물론 어린 날의 이런 태도가 커가면서 달라지기도 할 겝니다.
하지만 어린 날부터
우리가 배려와 너그러움과 관용을 교육 받을 수도 있지 않겠는지요.
그러나 한데모임에 함께 한 어른들은 선뜻 나서지 않았습니다.
논리로 접근해서 설득하고 정답을 찾는 게 이런 일에 무슨 소용일까요.
그냥 여러 생각들을 잘 들여다보고
그런 뒤 감수성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돕는 거’라는 사실이
사람이 해야 하는 아주 자연스런 행위임을 알게 알 수 있지 않을지요.
우리는 내일 한데모임에서 다시 이 문제를 나눠보기로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생각을 듣고 그 안에서 함께 해결의 고리를 찾아가는 시간이 좋았다.
좋은 공부다.’ (은영샘의 ‘하루평가글’에서)
그런데, 기껏 힘들게 만들어 왜 남 좋은 일 시키냐는 말에
자누가 그랬답니다.
“기껏 만들었으니까 줘야지!”
그 아이를 통해 우리는 또 깊이 배우고 있습니다.

밤 되니 더러 우는 아이들이 생기지요.
기현이랑 혜원이도 눈물 그렁합니다.
동준이는 열두 번도 더 교무실을 기웃거렸지요.
엄마 보고파 울먹이는데
사촌 민규랑 윤주도 덩달아 웁니다.
“엄마를 많이 사랑하는 구나?
사랑하는 그 엄마가
엄마 아빠 없이 지내는 씩씩한 마음도 길러보라고 보내신 걸 거다.”
저렇게 내내 울던 아이들도
다음 계절에 멀쩡하게 나타나곤 하지요.
아이들이 성큼 자기 생의 어느 고비를 넘어가는 순간 아닐까 싶습니다.

‘삼촌께서 빨래통 가져오는데 안 힘드냐 하니
힘들게 일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즐겁게 하라,
아이들도 즐겁게 놀았으니까 하시며...
삼촌(젊은할아버지, 소사아저씨)이 존경스러웠다.’(지윤형님의 ‘하루평가글’에서)
보이지 않는 손들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지요.
젊은할아버지는 밖에서
정익샘과 김정희엄마는 가마솥방에서
전체 일정이 돌아가도록 애쓰고 계십니다.
밥이 유달리 맛나고(전문요리사가 부엌샘이기는 또 처음이지요)
빨래가 어느 때보다 손에 잘 들어오고 있는 계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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