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5.나무날. 맑음 / 산오름

조회 수 1648 추천 수 0 2011.05.19 01:14:59

 

 

날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늘 하늘 고마운 이곳입니다.

산오름이 있는 날입니다: 민주지산 해발 1,242m

 

원래는 아이들이 한껏 놀겠다 벼르던 휴일이었습니다.

너무 고달프게 일하고 산다는 거였지요.

담임샘도 허락했다 했습니다.

그런데, 좀 더 뜻 깊게 보내면 좋겠다는 생각 들었고,

물꼬에선 주중에 있는 빨간 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흐름으로 보낸다 슬쩍 찔렀지요.

“등산화 산 거 써먹어 봐야지?”

 하여 며칠 전 아침 해건지기에 ‘협상하자.’ 말을 건넸답니다.

“그토록 여러분들이 바라는, 늦은 밤까지 놀아보는 흙날,

 창고동을 내줄테니 어린이날엔 산에 갑시다!”

‘지나간 어린이날’을 추억하며

청소년기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남의 일로 보는 어린이날’의 산오름이

그리 시작되었더랍니다.

 

산에 올랐다 내려와 산 아래 계곡에서 점심을 먹자 하니

아침이 너무 늘어져선 아니 될 테지요.

소사아저씨도 같이 오르게 되니

희진샘이 남아 학교를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바쁜 걸음이라 설거지는 남은 이에게 줄 수도 있었으련만

김유와 진하와 여해가 설거지통 앞에 섰지요.

아니, 저것들이 언제 저런 속도로 설거지를 했더란 말인가요,

후다닥 하고 차 두 대에 나눠 타 길을 떠났답니다.

 

산 들머리에서 산에 가는 자들의 자세에 대해 듣고 몸도 풀고

계곡을 끼고 민주지산으로 들었습니다.

산벚꽃잎 떨어져 이룬 꽃길을 밟으며 걸었습니다.

“어, 하다야!”

“어!”

거기서 손영현샘을 만났네요.

물꼬의 큰 논두렁으로 두어 해 때마다 식료품을 나눠주고 계셨습니다.

더 올라가서는 또 다른 지역 어르신을 만났지요.

“어이, 하다, 너무 많이 컸구나!”

면소재지 농협에 근무하던 전무님이셨습니다.

“이만한 산이 없어.”

그래 자주 들어오신다는 산이지요.

맞습니다, 특히 여름산으로 이만한 산이 없습니다.

 

짧은 1, 2지점은 몸을 서서히 푸는 시간이 될 테고

2지점을 지나며 본격적인 산타기가 될 겝니다.

오이며 단 것들을 나누니

우리 아이들 어떤 산이라도 오를 수 있는 기세였더랍니다.

여해는 그랬지요, ‘그 위대한 것들(오이, 초코파이, 약과, 사탕, 초코바)’이라고.

“산이 깊으니 골짝도 많고 그 골마다 이야기도 무성하여...”

민주지산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이바지 때바구 강때바구, 산 아래 마을에 열네 살 먹은 소년이 살았는데...”

저들 또래 아이 이야기이니 귀 솔깃했겠지요.

“자, 이 지점에서는 여기까지.

 각 지점마다 시리즈로 나갑니다.”

지점마다 아이들은 모이기 무섭게 다음 이야기를 물어왔더랬지요.

 

긴 긴 3지점까지의 길은

정작 헉헉대는 숨보다 산꽃들로 마음이 벅찼습니다.

올해는 빗살 현호색이 어디라도 풍년입니다.

숲속엔 바람꽃이 많기도 하지요.

여러 갈래로 갈라진 꿩의 바람꽃,

흰 꽃잎 다섯 장의 홀아비 바람꽃.

한국과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광대작약 혹은 미친풀이라고도 하는 미치광이풀도 보았습니다.

보라색 꽃이 잎겨드랑이에 1개씩 종처럼 달렸습니다.

진통 효과와 진정 효과가 있어 뿌리줄기를 동낭탕에 쓰고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수전증을 제거하며 종기를 가라앉히고

옴이나 버짐에도 효과가 있다 했지요.

그러나 중독될 수도 있으므로(그래서 미치는) 주의하라던 풀입니다.

옥잠화가 막 잎을 올리고 있기도 했습니다.

아, 산을 채우는, 세상을 채우는 저 아름다운 존재들이라니...

“몽환적인 길이 참 좋아요.”

다형이는 그리 말하데요.

 

쪽새골에서 오른 3지점은 능선입니다.

이 길을 타고 한 방향은 민주지산 정상을 지나 각기봉으로 가고

다른 방향은 석기봉 지나 삼도봉으로 이어집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이 덕유산 향적봉 지나 이 삼도봉에 닿고

괘방령 지나 추풍령을 지나서 달려가게 되지요.

능선에서 4지점까지는 겨우 150m.

여름이 아니어 이야기 속에 나오던 잠자리를 볼 수는 없었으나

전설 몇 개쯤은 충분히 안고 있겠다 이해하겠는 꼭대기였답니다.

“우와!”

“짱이다!”

오른 자만이 만날 수 있는 풍경 앞에서

우리는 쉬 내려올 마음이 없었지요.

하염없이 아래를 보았더랍니다.

‘오랜만에 올라온 산이어서 뿌듯했다. 너무 경치가 좋아서 눈물이 났다.’(선재)

‘산은 끝까지 올라야 제 맛.

올라갈 때 힘들고 지쳐서 돌아내려오고 싶지만 그걸 참고 올라가면

힘들었던 걸 다 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져 산을 올라본 사람이면 모두가 알법해.

정상에서 보는 경치는 덤으로 얻을 수 있는 승자의 권리.’(진하)

(다음에는 좀 더 경치를 구경하면서

 느릿느릿 자기 페이스에 맞춰서 정상을 정복해보고 싶다는 진하였습니다.)

하지만 밥이 아래 있으니 밥을 위해서도 서둘러야 합니다.

점심을 차에 두고 올랐지요.

가지고 오르면 한정 없이 늘어질 것 같아

내려와서 그 점심을 먹는 것을 목표로 산으로 오르고 내릴라 했던 겁니다.

잔뜩 재워온 고기는 아이들의 입을 얼마나 다시게 했었을 라나요.

“가는 길은 내리 갈게요.

2지점 지나 다리에서 만나도록 하지요.”

 

다리에서 모두 모였고,

계곡을 걸친 그 다리를 건너 삼도봉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합류합니다.

머잖아 잣나무 숲 나타났고,

러시아의 어느 깊은 침엽수림을 가로지르기라도 하는 양

걸음이 경건해지기까지 했지요.

잣나무 숲을 빠져나오니 다시 꽃길,

그리고 참꽃마리 군락을 낀 마지막 기슭에 닿는 것으로

짧지 않은 여정이 끝났습니다.

‘자전거는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어서 가끔씩 긴장을 풀 수가 있는데,

등산은 끝없는 오르막길.

내가 이렇게 많이 올라 왔었나...’(여해)

오가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기특해했고,

더러 먹을 걸 나눠주기도 하셨으며,

꼬치꼬치 관심을 가지고 묻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저들끼리도 혹여나 있었을지도 모르는 마음의 앙금들이

산에 오르는 걸음 속에선 아무것도 아니었지요.

같이 ‘움직여’봐야 합니다.

일도 해보고 산도 오르고 여행도 가봐야 합니다.

그런 속에 진한 연대감들이 생기는 거지요.

생태가 어디 별거던가요.

다른 존재와 사이좋게 지내는 것입니다.

어느새 고운이다운이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고

강유며 몇이 따르기도 했네요.

 

민주지산 오를 때마다 하산주를 마시는 식당에서 평상을 얻어

아이들이 밥상을 벌였습니다.

어마마마한 밥과 재운 고기, 그리고 김치와 김치콩나물국이 있었지요.

배불러도 계속 먹게 되는 엄청난 힘을 가진 고기(여해)를

배부르게(터지게?)도 먹었습니다.

다형이는 명치가 아플 때까지 먹었다나요.

그리고 개울가로 내려가 물 찰방거리는 아이들.

 

저녁, 기락샘이 아이들을 위해 롤케잌과 주스를 들고 왔고,

밤엔 통닭 때문에 아이들 더욱 황홀했습니다.

경미샘와 선미샘, 그리고 고교 졸업반 다훈이가 들어왔지요. 

사람이 반가웠을까, 통닭이 반가웠을까요?

‘통닭을 들고 온 사람이 그리웠다’ 합니다.

‘다훈 오빠와, 사이다, 깜콩의 등장과 함께 나의 치킨님도 등장하셨다.’

치킨님이 어디 여해한테만 그리 불렸을까나요.

네, 치킨님 강림은

아이들의 모든 수고로움에 대한 충분하고도 넘치는 보상이었더라지요.

 

산은 그냥 배움입니다.

물꼬에서 상설학교를 활발하게 하던 시기에도

봄학기와 가을학기 시작과 끝을 백두대간 길을 걷거나 큰 산을 오르내렸더랬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배움이겠거니 하고 말이지요.

오늘도 산은 훌륭한 교실이었습니다.

가기를 정말 잘했다 했지요.

모다 애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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