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계자 닷새째, 8월 20일 쇠날 흐림

조회 수 1844 추천 수 0 2004.08.22 23:54:00

< 해발 1242m 민주지산 >

하늘은 늘처럼 우릴 도와줄지,
흐린 하늘을 이고 아이들이 길을 나섰습니다.
아직도 남아있는 보물지도가 셋이나 되지만
오늘은 그걸 풀지 않겠다 하였습니다.
올 여름 앞서 했던 두 계자에서
삼도봉과 석기봉에 묻힌 보물들을 찾아나섰고
기어이 찾아냈지만
각호봉에 묻힌 나머지 것들을,
사람 발길 끊긴지도 오래여서 덤불 우거졌을 그 길을,
창대비 몇 날이나 이어진 지금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마라톤에서 '완주'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민주지산 꼭대기에 발 콩 찍고 오라 하였지요.
"대문에서 완주메달을 들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여러분이 돌아올 때까지 밤이 다 새더라도 서 있겠다 하였습니다.
그러니 이번 산오름은 오름 그것이 오직 목적이겠습니다.
기다리는 보물도 없는 걸음을
아이들이 얼마나 즐겨줄 수 있을런지...

산이 시작되는 물한계곡 주차장에서 한데모임이 있었습니다.
아이들 불러모아놓고 산 안내를 막 하려는데
어, 범준이를 몇 아이가 둘러싸고 서 있습니다.
범준이 손에 잠자리가 잡혀 있어요.
관찰하는 거랍니다.
곤충에 대해 관심이 크고 그만큼 아는 것도 많은 친구지요.
"걔가 어떨지는 생각 안해?"
파브르도 그렇게 했답니다.
"그게 나쁜 거면 왜 위인전에 나오고 그래요?"
우리는 관찰과 연구라는 이름으로
다른 존재들을 얼마나 많이 위협하고 있을지요.
"정말 관찰이란 건 그(관찰대상)의 마음을 읽고
그의 삶에, 그에 대해 알려는 것일 거야.
혹 이 친구(잠자리)가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떻게 알아요?"
이제 씩씩거리며 웁니다.
어제도 흙에 사는 생물들을 알아보러 나가서
굳이 그들을 끌고 학교까지 오겠다고 고집(?) 피워
유상샘이랑 실갱이를 벌였더라지요.
(사는 곳에 두는 게 그를 더 행복하게 하는 건 아니냐 생각해보자 하셨답니다)
그때, 윤석이가 쓰윽 들어서며 범준을 설득하려 합니다.
"파브르가 관찰한 건 그렇게 한 게 아니야."
자기는 단지 공부를 했을 뿐인데
칭찬을 받아도 가당찮을 판에 욕을 먹은 것이기라도 한 냥
분하게 울먹이고 있는 범준입니다.
많은 사람이 지금 기다리고 있으니
파브르에 대한 얘기는 저녁에 계속하자 했지요.
그제야 잠자리를 놓아주는 그입니다.
(거대한 산 앞에 그런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었을듯...)
"선생님, 정말 기다리실 거예요?
이틀이 가고 삼일이 돼도?"
"그럼, 밤이나 낮이고 비 오고 눈 내려도 대문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일주일이 돼도 안나타나면 그 때 찾으러 와 주세요."
연규입니다.
그만 너무 진지해져버려 갑자기 비장감이 들었댔지요.
에베레스트라도 보내는 것 같은.

시계는 아침 아홉시를 넘깁니다.
큰 지도 앞에 서서 우리가 어느 길로 오를지,
산에서 인사하는 법, 산 잘 타는 법 따위를 안내하고,
오르는 이들을 꼬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을 돌리지 못했더라지요.
그길로 달려가 그리 먹고싶어들 하는
짜장면(물론 자장면)재료를 사서 들어왔더랍니다.
이번 일정에선 학교를 지키게 되었네요.
혹 말이 씨 될까,
정말 이틀이 되고 사흘이 될까 봐,
유달리 마음 졸이며 기다렸더이다.
우리가 산에 있을 때
학교를 지키던 다른 이도 그랬을 테지요.
비가 잠시 드나나나 하기까지 해서
저어기 삐져나온 석기봉(예서 민주지산은 안보이거든요)을 향해
고개를 빼고 또 뺏더랍니다.
학교 둘레에서 찍은 사진으로 만든 책갈피,
그리고 먹을 수 있는 둥근 메달을 같이 꿰고 꿰면서,
돌아올 모습을 짐작하며 기다리는 시간, 참 길기도 하데요.

대문에서 메달을 들고 섰습니다.
예정대로면 도착했으련만,
이제쯤이면 손전화도 터질 만한데,
안받는 전화로 속이 조금 탑니다.
그때, 현우와 성종이 영신이가 달려왔지요.
솟대에 걸쳐두었던 메달을 걸어주었습니다.
자랑스러워들 했겠지요.
"물꼬에서 맛있는 게 많았지만
뭐가 젤 맛있었는지 아세요?"
"짜장면?"
"헤헤, 아니요, 산에 올라갔다 내려와서 상품으로 받은 약과요."
현휘가 그랬답니다.
도움꾼으로 미적이다 떠밀려 산을 오른 정숙샘은
앞으로 약과를 사랑하겠다셨지요.
"선생님, 정말 기다릴라 그랬어요?"
여자 애들이 둘러싸서 묻더이다.
"아니."
그러고 도망갔지만
그럼요, 기다리구 말구요,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면 기어이 찾아냈구 말구요.

정상에 섰는데 아쉽게도
그곳이 얼마나 높은 곳인지 증명할
저 아래가 다 안개가 묻혔더랍니다.
"하늘이 밑에 있어요."
용승이 그랬다지요.
그럼 됐지요, 하늘이 저 아래라는 데요, 뭘,
거기가 분명 높은 데였던 게지요.
내려오는 길,
도흔이와 준화는 아주 가파른 정상 바로 아래서
작은 갈등을 했더라지요.
보기에도 아래가 아슬아슬한데
드러눕더니 맞장뜬다 하였다나요.
"야, 기다려, 물꼬 가서 해."
분한 마음에 그 말이 들렸을 리가 있나요.
어찌 어찌 틱틱대다 끝을 본 모양인데
거친 길 계속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야, 조심해."
하며 서로 손을 잡아주더랍니다.
그래요, 그래서 산을 가지요.
엿새 밖에 안되는 일정인데도,
할 것 너무나 많은데도,
굳이 산오름을 한 일정을 잡는 까닭이 거기 있다 하겠습니다.
장엄한 자연이 어떤 프로그램보다 훌륭하다 마다요.
세훈이는 많이 넘어졌더라지요.
은비랑 성종이는 멍이 들었더이다.
채리는 아주 산을 잘 타더래요.
연규는 힘들지도 않은지 내내 이야기가 길었답니다.
공간이 험해지니 형제애가 샘솟더라지요,
오인영 세훈이, 성진이와 성훈이, 재용이와 재은이.
철없는 용석 선수도 뒤에 오는 이들에게 안내를 다 하더라지요.
길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중계했다지요.
예, 그래서 우리는 산을 가고 또 갑니다요.
쉬지 않고 주욱주욱 올라가는 아이들 힘으로
어른들은 올랐더랍니다.

저녁을 먹고 산에 오른 이야기를 갈무리 하였더이다.
할말 많기도 하였겠지요.
힘들었다는 얘기야 기본이고
밥이 맛나기도 했단 것도 이견이 없고
정상에 오르니 기분 좋더라는 것도 두말할 필요없고
산오름 기념메달이 궁금해서 더 열심히 했다는 고백도 나오고...
산에서 만난 어른들의 칭찬도 한 몫 했겠지요,
길을 수월케하는데.
무용담 오래고 오래일 것입니다.

대동놀이에선 강강술래하기 전
다리를 좀 푸느라 춤을 추었습니다.
요란한 음악에 맞춰 흔들어댔겠지요.
"동작을 꼭 따라하려들기보다
음악에 맞뭐 맘껏 몸을 흔들며 즐긴다는 생각으로..,"
효진샘이 그러데요,
물꼬에서 요가며 명상이며 우리가락이며
그런 프로그램 못지않게 춤추는 시간도 참 좋더라고,
산오름도 좋았지만 자기는 다녀와서 춤추는 것이 더 신났노라 합니다.
그 다양함이 절묘하게 어울렸더라,
그런 얘기쯤 되겠습디다.

불가에서 감자를 구워내며 지나간 시간들을 살폈지요.
제가(자기) 보낸 즐거움들을 꺼내고
긴긴 노래와 긴긴 얘기들이 이어집니다.
날이 성큼 가더라,
정말 재미가 있더라,
우리 학교도 이랬음 좋겠다,
재미있어서 몰랐는데 낼 간다 하니 부모님 생각이 간절해진다,
부모님께 미안하지만 좀 더 머물고 싶다,...
"나는 이 학교 다닐 거야."
그때, 민재가 소리쳤지요.
한얼이 그래요,
캠프 많이 다녀봤지만 여기는 참 색다르다고.
모두 겨울의 14박 15일을 기약하고,
크게 다친 사람 없이 무사히 보낸 시간들에
고맙고 감사해했지요.
물꼬에는 가을에도 계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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