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계자 첫날, 10월 29일 쇠날 맑음

조회 수 1856 추천 수 0 2004.10.31 02:52:00
녹음이 다해 산을 사루는 대해리에서
아이 마흔 하나와 어른 열 여덟이
아흔아홉 번째 계절자유학교를 열었습니다.

이런! 일곱 살이 열여섯입니다.
유치부를 만들어야했지요.
똥모둠 오줌모둠으로 다시 짜고
나머지 형아들이 세 모둠으로 모였습니다.
"큰 애들은 말을 안들어서 복작복작거리고
작은 애들은 철이 없어서 복작복작거리고..."
갈무리시간, 어느 샘이 그랬지요.

흙놀이했습니다.
제 집을 짓고 흙산과 모래터에서 마을을 만들었지요.
이쑤시개도 잘 써보라고 나눠주었습니다.
"이쑤시개 껍질은 주머니에 잘 넣어둡니다."
"안 써요."
승현입니다.
"왜?"
"주머니 넣기 싫어서 안 써요."
계단도 수첩에 달린 스프링으로 무늬 찍는 걸로 대신하는 게으름뱅이 녀석입니다.
곁에서 하늘이 개모양 집을 짓고,
보원이는 그냥 제 집이래요,
영운인 철모모양으로 짓더니 군인이 사는 집이랍니다.
목공실 앞을 떠나 감나무 아래로 가니
대호가 신부님의 집을 다듬고
근우가 나무 그루터기 속을 파서 짓는 양 집을 올립니다.
다영이는 화가의 집이래요.
이네들은 산 아래 마을을 만들고 널찍이들 삶터를 마련합니다.

자전거 주차장 앞에서는
지영이가 과학자의 집이라며 플라스크 모양의 집을 만들고,
경민이는 그냥 우리집을,
재훈이는 뚱뚱한 사람을 위한 집이라는데
하루 1000미터는 달릴 다리가 달려있습니다.
재현이와 귀남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일단 짓는답니다.
이 패들의 동네는 산 아래로 흐른 물이 호수를 이뤘고
그 둘레로 마을을 일구었는데
길을 따라 가며 터널도 나오고
제법 사람 사는 곳같이 생각 좀 했습디다.

튜울립 나무 아래는 똥오줌네들이 바글바글거립니다.
도연이는 말없이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들다
아무래도 마음에 안드는지 주물럭거리며 새로운 집을 내놓습니다.
지이는 내가 사는 집을,
동호는 왕이 사는 집,
다원이와 은수는 엄마 아빠가 사는 집입니다.
류옥하다는 엄마를 위한 집을,
예린이는 사탕가게 주인을 위한 집,
성일이와 동영이 준희는
각각 경찰아저씨, 개그맨, 컴퓨터 가게를 위한 집을 지었습니다.
오줌마을은 오밀조밀 모여살고
똥마을은 뚝뚝 떨어져 마을을 이뤘습니다.
땀 흘려 집을 지을 녘
활을 들고 공을 들고 흙산을 기어오르고 소나무를 돌던 녀석들은
이 겨울을 어쩔지요.
(의로 은정 태영 누리 재현 유진,
어둑해서야 학교로 들어온 아이들은 얼마나 아쉬워했던지요.)

덩-덩-쿵따쿵...
해가 지자 대해리에 난데없는 풍물가락이 요란키도 합니다.
학교 마당을 한바퀴 돌고 경로당 앞까지 길놀이를 하는데
마을 어르신들은 이미 올 준비를 하고 서성이고 계셨습니다.
저녁 일곱 시,
< 몸짓과 이바구 한마당 - 창호생각 >이라는 작은 공연 하나가
물꼬 큰방에서 올려졌지요.
자계예술촌이란 곳에서 순회공연 마지막 일정으로 물꼬에 왔습니다.
무대에는 이 땅 곳곳의 춤양식을 상징하는 허수아비가 탈을 쓰고 있고
조명은 퍽이나 밝습니다.
어른과 아이가 꼬박 백 명은 들어섰지요.
앉자마자 막걸리에 파전에 시루떡도 딸려 나왔습니다.
정화의식으로 시작한 극은 문둥북춤을 잠시 보이고
벽사 의식무와 북부탈춤 봉산 은율 강령춤으로 이어집니다.
산대놀이가 이어지자 잠시 무대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때
우리들의 추천(?)을 받은
규중이 아부지, 보건소 소장님, 성길이네 아줌마도 무대로 가서
한바탕 잘도 노셨습니다.
다시 극은 오광대와 야류의 춤으로 이어지더니
시작할 즈음 잠시 보여주었던 문둥북춤을 마무리 하는데...
문둥이, 소고를 내려두고 꺼이꺼이 우는 장면을 보던,
우리의 종화 선수가 선진샘한테 그랬다네요.
"선생님, 사업이 망해서 우는 거예요?""음..."
"그래서 우는 거예요."
다시 일어서서 훨훨 춤추는 문둥이를 보고 종화는
선진샘 가까이로 몸을 기울이더랍니다.
"서류를 모아서 다시 사업을 일으켰어요."
작은 풍자극 하나로 극이 갈무리 되자
풍물패 가락에 아이들도 어른들도 우르르 무대로 넘어가
어깨춤 덩실거렸더이다.

"저는 오늘 저녁 공연이 참 감동적이었어요."
공연을 본 감동을 말하려는 것이겠지요.
이근샘이 말을 이었습니다.
"(여러)세대가 다 모여서..."
무대보다 외려 관객을 중심으로 한 풍경이야기입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평생에도 서너 번이나 볼 수 있을까..."
그는 경이롭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그랬지요,
만 다섯 살을 넘긴 우리 아이들에서부터
여든이 한참 넘으신 우리 마을 상쇠 꺽중이 할아버지까지.
전 세대가 함께 그리 자리할 일이 얼마나 되겠는지요.
출렁이는 마음의 물결이 우리를 그득그득 차게 했더랍니다.

달빛이 참 곱기도 한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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