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계자 나흗날, 2009. 8.12.물날. 흐리고 비 가끔

조회 수 1169 추천 수 0 2009.08.27 00:19:00

133 계자 나흗날, 2009. 8.12.물날. 흐리고 비 가끔


재영이와 소현이가 못 일어납니다.
날씨 탓일까요, 아님 아침 잠이 많아서, 그렇지 않으면 너무 놀아서?
우리들이 좀 거하게 놀고 있기는 하지요.
이리저리 좀 살펴주며 아침을 엽니다.
안개구름 짙은 아침입니다.
해건지기로 아이들은 몸을 풀고 마음을 다진 뒤
달골에 올랐지요.
퍼진 칡향과 방아깨비와 두꺼비가 우리를 맞았습니다.
고운 아침입니다.
달골에 이르는 길을 오래 그 길을 알았던 새끼일꾼들,
옛날 아이 적 굉장히 길었던 길이 금방이더라나요.
그러게요, 우리들이 다녔던 학교에 어느 날 가 보고는 놀라지요,
그 작음에.
어느새 성큼 자라버린 겁니다.
우리 아이들도 어느 날 그럴 테지요.
말라버린 산딸기가 더러 아이들의 발을 붙드는 산길이었답니다.

달골 끝에서 마지막 복숭을 다 따냈습니다.
맛이 들었습디다.
벌레도 먹고 사람도 먹는 달골의 복숭아,
재영이는 툴툴거리면서도
먹을 수 있는 부분 다 먹고 있데요.
어느새 퍽 기뻐하면서 말입니다.
오늘날의 과일들, 얼마나 농약을 치며 기르는 작물인지요.
과수 농사 지어보면 압니다,
과일을 저농약 무농약으로 내기 얼마나 어려운지.

내려오는 길, 비가 내렸습니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라는 오래전 영화가 있었지요.
내용은 잊었지만 정말 수채화 같은 풍경이 잊힐 수 없는 영화였습니다.
굵어지는 빗속을
어린 미성이와 승민이가 빨간 남방을 같이 뒤집어쓰고 걷는데,
뛰지도 않고 말입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앴답니다.
한편 정현이는 이제 아주 장난을 다 드러내고 있데요,
그러게 사람을 새겨(사귀어)봐야 한다니까요.
물꼬가 코 앞에 오자 비는 더욱 굵어졌습니다.
집하장 처마에 모두 들어가기도 쪼르르 섰는데,
마치 제비 같기도 하고, 늘어선 꽃들 같기도 하고,
아, 이런 풍경들 사이 비는
얼마나 적절한 배경이었던지요.
비 맞는 걸 싫어한다는 이들조차
아이들과 비 맞으며 내려오는 길이 좋더라나요.
한편의 CF, 혹은 드라마 같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고,
비 맞으면서 뛰어가는 그 풍경이 너무 좋았다고,
샘들이 입을 모았답니다.

아침 밥상을 물리고 ‘우리가락’이 이어졌습니다.
한데모임 때마다 꺼내서 부르는 ‘물꼬노래집’을 정리하느라
민희형님 아람형님은 본관에 남았지요.
샘들의 그런 뒷바라지를 통해 더욱 즐거운 계자랍니다.
‘악기 소리가 모둠방까지 다 들리는데
그 소리가 너무 놓았고
듣는 내내 초등학생 아이들 수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잘하’더라
아람형님이 그랬고,
‘멀리서 소리를 들으니까 그 소리가 너무 멋지고 가까이서 듣고 싶어 아쉬웠’다
민희형님이 역시 그랬지요.
태훈이 형님도 말을 보탰습니다,
‘우리가락 시간에
배운지 20분 만에 모든 악기를 멋있게 하는 게 너무 신기했’다고.
‘애들이 열정적으로 해서 이뻤구 좋았음,
금방 그렇게 배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밌었다.
마음이 맞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다 같이 한마음이 돼서 좋았다.’
새미형님도 감탄이었답니다.
물꼬에 와서 우리가락마다 내내 북만 쳤던 희중샘,
아이들 두들겨대는 소리에
이제 다른 것도 해야겠단 마음 들었다지요.
잘들 합디다.
판소리 듣고
영동지역 농요 하나 배우고
그런 다음 친 풍물이었더이다.

‘보글보글 2’.
요리를 선보인 그림동화책 앞에 오글오글 모여든 아이들
저 눈망울들 좀 보셔요.
그 바깥에 샘들이 울타리처럼 앉아 같이 눈귀를 모으는데,
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어느 때라고 아니 그럴까만.
오늘 보글보글은
올 여름 세 계자 가운데 가장 안정적이었다는 중평입니다.
꼭 아이들이 적어서만은 아닐 겝니다.
서로의 기운이 그러하였겠지요.
어쩌면 가장 평안하였던 부엌샘 두 분, 미선샘과 김정희엄마,의
기운도 큰 영향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참 사람 기운이라는 게...

‘잘생긴 만두’는
예원 현수 준민 건표 미성 태현 현우 민재 인영이가 빚었습니다.
건표는 언제나 열심이고
인영이는 샘 하나 더 붙은 것 같았지요.
‘용감한만두는
현준 태형 세영 희주 정현이가 들어갔는데
말 좀 안 들었다는 후문이 있었다나 어쨌다나요.
정현이 슬슬 마음을 한껏 펴서
조금 버겁게 굴기도 하였겠다 짐작도 해보았지요.
씩씩했거나 혹은 그 비슷한 이름의 만두집에는
채림 부선 소현 주희 혜민 재영 큰지현 작은지현이가 모였습니다.
남자애들보다 여자애들이 더 잘 싸운단다,
여자애들이 좀 뺀질뺀질하고, 근데 또 하고 싶다고 하는 모습이 예뿌더라,
이 방 소식은 그리 전해졌네요.
채림이가 말을 심하게 해서 아이들과 마찰이 일기도 하였으나
만두 만드는 거며 샘들 돕는 건 또 최고였다지요.
여름이면 자주 감기도 걸리고 배가 아픈 소현이는
소현이는 아침에 감기기운으로 꿀차 먹고 달골 올랐는데,
만두 빚느라 다 잊었데요.
주희는 은근 고집세다는 아이들의 평을 들었는데,
자신이 하고 싶은 만두를 기어이 빚어내서 그랬던 걸까요?
혜민과 두 지현이는 다른 데 마실을 가 챙겨먹지 못했을까 걱정했다는데
가마솥방에서 칼국수 잘 얻어먹고 있더랍니다.
그런데 부선이가 가마솥방을 가서는 돌아오질 않았다는데,
무슨 일이었을까요?
거긴 만두피공장(?)이 있었는데...

그리고 ‘마음 넓은 보자기’.
만두피를 만들고 공급하는 공장이 가마솥방에 있었지요.
세훈 현곤 승민 하다, 또 누가 있었더라...
지난 겨울 만두피를 열심히 밀었던 부선,
이젠 전문가가 되어 초빙되어 와서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재영이와 큰지현이도 덩달아 눌러앉았더랍니다.
만두피의 끝은 칼국수였지요.
미리 반죽을 넉넉하게 준비해둡니다, 비장의 카드처럼.
못다 먹은 아이들이 와서 먹고,
시원한 국물로 어른들 사랑을 받고,
그렇게 마지막 잔치판을 벌이는 거지요.
세 차례나 끓여냈더랍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은 팥빙수!
바깥바라지 어른들이 준비한 선물입니다.
황학동골목에서 몇 해 전 실려 내려온 고전적인 빙수기는
아이들을 ‘황홀’하게 만들었지요.
그런 속에 아이들에게 말을 붙이며
그들을 둘러싼 세상을 듣습니다.
“승민아, 넌 몇 째야? 막내요?”
그렇답니다.
“그런데, 저 혼자 첫째도 되고 막내도 돼요.”
외동이었던 겝니다.
그는 비가 오면 걱정이 많습니다,
물꼬를 지키는 진돗개 장순이가 비 맞고 있을까 봐.

보글보글의 설거지는 샘들이 합니다,
워낙 그릇이 나오고 또 나오니까,
그리고 이 잔치의 뒷정리는
샘들이 아이들을 위해 온전히 자신들을 써야겠다 생각하니까.
샘들도 꼭 정하지 않고 먼저 끝난 방부터 와서 시작하면
알아서 적절하게 사람들이 교대를 해주지요.
물꼬의 이런 방식은 참 좋습니다.
‘마음을 내는 것’을 배우는 게지요.
“그런데요, 설거지 하는 데...”
남은 고추장 그릇에 다른 그릇 포갠 걸 봤다는 희중샘,
이제 그의 눈에 이런 것들이 셋 넷 눈에 들오롭니다.
그 곁에서 저는 즐거웠지요,
샘들의 눈의 성장사, 결국 그 샘의 성장사를 보는 게.
아이들의 성장사 못지 않은.

아, 그리고 올 여름 계자에서 유일하게 등장했던 ‘한낮의 대동놀이’,
이름하야 ‘너에게 나를 보낸다’.
난장도 그런 난장이 없었습니다.
마당 한 가운데 아주 커다란 물통 두 개와 물줄기를 연결해놓고
이어달리기 한 판이었습니다.
그러다 물을 담을 수 있는 건 패트병에서부터 죄 나오고,
부엌샘들도 나와,
바깥바라지샘들도 붙어서,
물, 물, 물 천지였지요.
빗방울도 섞이더니 어느새 물러갔습디다.
남자방 여자방 청소를 하느라 나오지 못했던 샘 두엇,
왁자지껄 하는 소리가 소음이 아니라 듣기 좋은 소리더라고
그래서 창문을 너머다 보고 있었지요.
물놀이의 매직이라는 선아형님 표현처럼
모두가 친근해졌고
조금 미운 아이들도 사랑스러웠다는 한 샘의 고백도 있었더랍니다.
이 분위기를 타고 우리는 내일
모두가 하나 되어 산을 오를 것입니다.
그런데, 귀가 불편한 현우 귀마개를 잃어버려
아이들 멀찍이서 안타까이 왔다갔다했지요
(아, 밤에 찾았지요, 가방에서. 다행입니다.).
그래서 현우는 다음 여름에 꼭 와야 한답니다.
대동놀이에 밀려 연극놀이는 물 건너갔네요.

재영이가 오늘 여러 번 등장이네요.
다들 밥 먹으러 달려 나갔는데
책방 책 정리 하고 있던 게 그였습니다.
세훈이는 풍금 앞에서 작곡 중인, 아직 미완성이지만, 곡을
여럿에게 들려주고 있었지요.
그의 자작곡은 영어와 불어버전이 있고
악보를 정리해 놓지 않아서 건반으로 음을 맞추는 중이라 했습니다.
저녁 먹고 둘러앉은 아이들,
세훈 주희 채림 현곤 준민 태현 현우 그리고 또 또 또 ...
별의별 얘기들이 다 나오는데,
그 내용들이 험해서 샘들이 놀랐답니다.
요새 아이들이라고 이 시대를 어디 안 사나요,
다 어른들 책임이겠습니다.
‘교통사고 경험담, 유괴범, 깡패, 강도 만난 이야기,
엄마를 갖고선 보이스피싱하는 전화 받은 이야기며들이
너무 위험천만해서’
우리 생이 문득 험난하더라는 샘들이었지요.
주희랑 류옥하다는 오늘 잘한 일이 많았다는데
노래집도 정리하고,
하다는 엄마를 아침 저녁 도운다 합니다.
칼국수 먹던 세영이, 자꾸 집에 안 가고 여기 살고싶다던데,
미성이도 그러던데,
큰일났네요, 그 댁들은, 이 예뿐 딸들 잃겠습니다요.

한데모임이 끝나고
모두방(모둠들이 쓰는 방과 다르게 모두가 모일 때는 이리 부름)에서
한바탕 작은 대동놀이하려는데,
승민이가 턱 아래서 묻습니다.
“춤명상(명상춤) 안 해요?”
지리할 것만 같은 춤명상을 그리 챙기는 아이들이 있지요.
강당이 아닌 방에서 하는 대동놀이는
마치 겨울저녁 불가의 수다들 같았습니다.
따스하데요, 재밌고.
이어 낼 아침의 산오름 안내가 있었더랍니다.

집에 가고 싶다던 일곱 살 민재,
“옥샘, 나 내일 아침 여기로 오면 돼?”
집에 가는 문제를 낼 아침부터 교무실에서 의논하기로 했지요.
일단 산에는 다녀오기로 이미 결정했고,
그 뒤 어찌 집에 가냐는 문제입니다.
산에 다녀오면 저녁인데,
그때 집에 가는 얘기를 나누겠다는 건데,
어떤 얘기들이 오고 갈지요.
내내 주위를 맴돌았던 민재를 통해
엄마는 뜨개질도 잘하고 인형도 만들고 노래도 가르쳐준다는 것도 알았고,
그리고 어제는 아빠랑 가끔 산에 가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게 길이 되어주었지요.
집에 가고 싶다고 왔길래
산에는 다녀오고 난 뒤에 얘기하자 했더랬습니다.
그가 아빠랑 잘 오르는 바로 그 ‘산’ 말입니다.
아이들의 문제는 아이들 속에 해답이 있지요,
언제나 문제가 그 문제 속에 답이 있듯이.
우리는 다만 아이들에게 귀를 기울이면 됩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생긴 문제에 어떤 답을 주는 게 아니라.
퍽이나 간단한 일이랍니다.

아, 드디어 산오름입니다,
올 여름 계자가 정말 끝이 날라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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