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16.달날. 맑음

조회 수 1170 추천 수 0 2012.04.23 00:09:56

 

 

이른 새벽이라고 일어나보니 어머니는 벌써 학교 마당에 가 계십니다.

벌써 기도를 끝내고

부엌을 오가고 계셨지요.

이른 아침 소금물을 풉니다.

해뜨기 전 풀어야 소금이 다 녹는다지요.

어느 해, 해 오른 뒤 풀었던 소금이 녹지 않아

정말 그런 갑다 하게 된.

항아리에 메주를 담고 자른 대나무를 걸치고 돌을 야물게 누른 뒤

소금물을 부었습니다.

거기 숯을 띄우고 마른 고추를 띄우고 깨를 뿌리고...

 

올해는 잊지 않고 메주를 둘 남겼습니다.

지난 해 고추장을 담그며 메주가루 없어 아쉬웠더라지요.

잘 매달았다가 올해 담는 고추장엔 우리 메주가루 쓰려지요.

 

“저리 쪼아만 줘도...”

어느새 어머니는 마늘밭을 매고 올라오셨습니다.

반나절은 족히 걸리겠는 일을,

도대체 금시하고 올라오신 것입니다.

얼마나 살면, 얼마나 하면 우리는

우리들 어머니의 일 가락을 따를 수 있단 말인지요.

 

어머니 기차 태워 보내드리고 돌아와

뒤란 아이들 해우소를 정리합니다.

겨울이 길기도 하였지요.

겨울잠 자듯 보내는 겨울,

이제 겨울 몫만큼 움직여야지요.

쥐들이 견과류들을 훔쳐서 먹은 흔적들이며

정리되지 않고 자꾸 쌓이기만 한 짐들이며

가을 갈무리해서 잘 간수하지 못했던 먹을거리 두엇의 상한 꼴이며

아이들 쓰고 간 뒤 잘 단도리 해두지 못했던 것들이며...

그리고 어머니 드나드신 부엌바닥 흔적을 닦아내지요.

신발 벗고 신기 불편하실 것이라 오셨을 땐 바깥처럼 쓰는 부엌,

그렇게 다녀가신 흔적을 닦으며

‘무식한 울어머니’ 얼마나 더 살아낼 수 있으시려나

맘 울컥하였습니다.

 

이어 되살림터도 그 결에 정리합니다.

사람 사는 일이 어찌 이리도 늘 쓰레기를 만들어내는지요.

그래도 산골 사는 일이 좀 낫다 싶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털고 분류하고 정리하고 여미고...

그리고, 소사아저씨 닷새의 봄나들이를 끝내고 복귀.

 

곳곳에서 봄소식입니다.

해를 거른 뒤 드디어 극을 무대에 올린다는 이웃,

오래 준비한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는 선생님,

떠돌던 삶을 정리하고 이제 예쁜 집을 지어 뿌리 내리고

아내로 맞고 싶었던 여자를 곧 들일거라는 벗, ....

같이 기뻐할 일들입니다.

아이들도 이 봄에 훌쩍 자랐을 테지요.

 

한편, 마음은 자주 먼 곳으로 갑니다,

봄입니다.

어쩌면 지리산, 혹은 제주도를 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봄이라서, 흔들리기 좋은 봄이라서, 라고 핑계대고

마음껏 흔들리는 봄입니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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