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안학교에서 준비한 3박4일 청소년 캠프가

신청이 없어 결국 1박2일로 규모를 줄여 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물꼬의 청소년 계자를 엽니다.

곳곳에서 올 겨울의 일정들이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 걸까요?

할 만하다면 외국으로 가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양극화는 아이들의 방학 양상도 그리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1주 동안 특수학교에서 온 7학년 아이의 위탁교육이 있었습니다.

아이를 데리러온 가족들이 과일을 부려주고 갔지요.

아이랑 보낸 한주로 가족들과도 각별한 마음이 듭니다.

또 볼 겝니다.

부산한 시간이라 앉지도 못하고 떠났습니다.

이해해주시리라...

 

7학년 도영 해찬 재창

8학년 현진 세훈 성재 재호 효민 예슬 민지 하다

9학년 주인 경이 유진

10학년 인영 해인

11학년 주원 진영

12학년 은희 도언

신청한 아이들은 이러했으나...

 

눈에 묻힌 길을 올라오지 못해

버스는 헐목에 차를 세웠고,

2킬로미터의 얼어붙은 길을 아이들은 걸어왔지요.

“어, 그런데, 네들만 왔어?”

듬성듬성합니다.

예슬 효민 현진 수현, 이우 중고 아이들이 못 온다 했고,

연락 없었지만 처음 오기로 한 민지도 같은 학교이니 동일한 까닭일 테지요.

해인이가 동아리 일로 안타까워하며 못 오게 됐고

공연으로 못 온 도영이는 대신 계자에 합류하지요.

12학년 도언이가 아무 연락 없었네요.

거기 더하여 이곳의 류옥하다.

하니 열 둘.

주원이의 소개로 온 진영이만 새 얼굴.

오붓한 계자이겄습니다.

 

“눈부터 좀 치울까?”

교문이며 해우소며 사택이며 오가자면 길부터 뚫어얄 테지요.

대개 청소로 시작하지만

이번에는 상주하는 식구들이 이틀 동안 청소를 이미 했습니다,

눈을 치우는 일을 같이 하면 좋겠다 싶어.

여러 곳으로 길을 만든 뒤 점심 때건지기.

 

속틀 안내: 왼발, 오른발, 양발.

우린 그렇게 한 발 한 발 내딛을 것이고

양발로 뜀틀을 넘듯 도약하기에 이를 것입니다.

서로 소개를 하고, 거기엔 물꼬하고 맺은 인연들을 빼놓을 수가 없지요.

이어 물꼬소개도 합니다;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하는 물꼬 소개.

참 자랑스러운 곳이구나, 퍽 따뜻한 곳이구나, 정말 특별한 학교이구나,

학교를 넘어 집이고 외가이고 친정이고 쉼터이고 은신처이구나,

들으며 소중한 곳이란 생각을 덩덜아 하게 되데요.

 

다시 눈을 치우러 갑니다.

일을 통한 배움, 물꼬 배움의 큰 축 하나이지요.

일이 갖는 의미, 물꼬에서 하는 교육의 의미도 짚어보고

아이들이 눈삽이며들을 울러 메고 학교를 나섰더랍니다.

달골 오르는 마지막 곡선 길, 봄이 와도 가장 더디 눈이 녹는 곳,

그래서 그만큼 위험한 길의 눈을

두툼하게 얼기 전 쓸고 깨기로 했지요.

주원이와 하다, 진영이가 모래주머니를 챙겨 곳곳에 뿌려가며

무리를 앞장서 갔습니다.

이번 모임의 분위기가 그리 듬직합니다.

 

“춥지?”

산골짝, 해 넘어가면 무섭게 내려가는 기온입니다.

아이들은 어스름을 등에 달고 들어섰지요.

눈을 치우는 아파트 경비 아저씨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우리의 삶을 위해 힘을 쏟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일깨우며

공부가 제일 쉽다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유자차를 냅니다.

뭐 뻔한 이야기,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맛난 유자차 처음이라는.

“선영샘네서 온 유자로 만들었어!”

품앗이 선영샘의 안부를 묻는 아이들.

이렇게 얽힌 인연들이 새삼 또 얼마나 고마운지.

 

“저녁 먹기 전 숙제검사 좀 할까?”

아이들이 다른 이들을 위해 준비한 글, 혹은 이야기,

한 편의 시이기도 하고 책이기도 하고 직접 쓴 글이기도 하고...

이번 모임은 시가 대세입니다.

자작시를 들려주는가 하면

시를 외워 낭송하는 운치를 보여주기도 했고

교과서를 벗어나 처음 마음을 울린 시를 들려주기도 하였으며

철학자의 강렬했던 글 한 줄을 읽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아주 재밌는 사연과 얽힌 글을 들려주기도 했고,

의미 있었던, 한편 자신을 성장시켰던 글의 일부를 읽기도 하고.

잔잔하고 또 깊이 있는 시간이었지요.

 

얼음 동동 뜨는 식혜를 후식으로 먹은 저녁 때건지기 뒤

우리는 다시 둘러앉았습니다.

“숙제에서 시가 대세였던 것만큼 책에 대한 소개가 드물었으니...”

하여 각자 자기 삶의 책 한 권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로 했지요.

앉아서 열두 권의 책을 읽은 셈.

고전은 여러 시대를 아우르기 마련.

고 3이 읽고 중 1이 읽기도 한, 낼 모레 육십인 이 할머니도 읽은.

하여 우리 생을 관통하는 거대한 줄기를 만난 것 같았던 시간이었더랍니다.

서울 낮 기온이 영화 10도라던가요.

그래도 여긴 좀 낫다 싶은.

춥겠거니 하고 앉았으니.

 

다음은 공동작업이 있었습니다.

“물꼬에 좀 많은 게 있잖어?”

“단추요.”

함께 뭔가 만들어보기.

재잘거리고, 머리 맞대고, 손을 움직이고...

그 사이 밤참을 만듭니다.

“내가 그랬잖아, 야참이 최고라고. 역시 최고지?”

세훈이 후배 해찬에게 던지니

“응!”하고 돌아오는 대답.

어른들은 곡주도 한 잔.

 

달골에 오릅니다.

숨꼬방이냐, 본관이냐, 아니면 사택이냐,

그러다 이번 청소년계자는 달골에서 자기로 했더랬습니다.

혹 추울까 이불을 하나씩 껴안고도 올라갔지요.

“목도리처럼 감고 가요.”

짐이며들을 서로 잘 나눠

개미떼들처럼 달빛을 이고 밤 산길을

한 줄로 천천히 걸었답니다.

 

‘실타래와 고리’.

거실에서 주전부리를 먹으며

한해를 되돌아보며 성찰하기도 했고

자기 이야기를 흠뻑 하고 한편 소중하게 듣기도 했지요.

더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여기에 계시지 않았으므로,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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