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5.불날. 맑음 / 이동학교

조회 수 1176 추천 수 0 2011.04.13 17:22:35

 

    

     어서 오셔요,

     여기는 대해리.

 

     이른 아침 잠을 깼습니다.

     서울에서도 서둘러 아침을 열고 있겠다 싶습니다.

 

     어제는 올 들어 처음으로

     무논에서 개구리가 울었습니다,

     저녁이 내리는 온 산마을을 채웠습니다.

     퍼뜩, 아, 아이들이 오는구나,

     마음 가득 기쁨 번졌습니다.

     오늘은 청명입니다.

     논 가래질도 이즈음하고,

     봄 오기를 기다리며 겨우내 미루었던 일들을 하기 좋다는 날입니다.

     좋은 날 좋은 손님들을 맞게 되어

     느꺼운 마음 더욱 큽니다.

 

     강유진, 강다운, 김유진, 김다형, 민승기, 민하은, 박여해, 윤가야,

     오선재, 장진하, 편해수, 현홍준,

     그리고 안준환 샘, 박희진샘, 여희영 샘,

     버선발로 마당을 내려서겠습니다.

     둘러친 산을 열고 살구나무와 소나무 사이를 잰걸음으로 오셔요,

     목 빼고 기다린다지요.

 

 

서울의 한 대안학교 7학년 아이들이 이번 학기를 여기서 보냅니다.

이번 학기 불날마다 농업교육이 있는데,

일이 되라고 이번 주는 쇠날로 옮겨졌습니다.

무사히 아이들을 맞을 수 있었지요.

준비 안 된 것들,

그제야 눈에 띄는 것들,

다, 다 지내면서 해나가면 되겠지 합니다.

같이 산다는 건 그런 것일 겝니다.

그런 게 허물일 것 없을 겝니다.

 

오전엔 남은 달골 청소를 마저 했습니다.

류옥하다가 쓰던 시방의 짐들을 하늘방 베란다로 옮기고

공간마다 허랑한 곳은 없는가 살폈습니다.

본관도 두루 돌아보지요.

정작 부엌은 손이 못다 갔습니다.

밥을 하며 짬짬이 하자 합니다.

이런! 아무래도 사택에서 보낼 날이 많겠는데,

날 풀렸으니 내려와 지낼 때도 되었는데,

간장집도 손대지 못했네요.

걸음 종종거리는데,

덜컥 자전거들과 짐을 실은 화물차가 먼저 들어섰습니다.

류옥하다 선수와 소사아저씨가

바삐 자전거집에 쌓여있던 비닐을 치워낸 뒤 자전거를 들여놓았고,

류옥하다는 달골에 올라 다른 짐을 부렸습니다.

그리고, 오겠지 싶은 시간을 훌쩍 지나서야,

그제야 또 평상에 쌓인 먼지가 눈에 띄어 걸레로 한참 훔치는데,

승합차에서 아이들 일부와 샘 둘 내리고,

그리고 머잖아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다른 아이들과 샘 하나 들어왔습니다,

그 학교 안에 있는 미니샵에서 산 빵과 쿠키를 선물로 내밀며.

그런 거 예서 귀한 줄 아는 게지요.

모다 아이 열 둘, 어른 셋.

“저녁을 주실 수 있나요?”

그럼요, 그럼요, 그냥저냥 지나다 들어와도

때 아니라도 밥 나누고들 가는 이곳인데,

아무렴요.

첫 밥상을 흡족하게들 잘 먹었습니다.

늘 그렇기도 하지만, 만만찮은 먹성이 될 것 같은 예감입니다요, 하하.

 

예서 만들었던 천연비누가 얼마 남지 않아

멀리 비누 만드는 후배에게 부탁해 며칠 전 상자를 들였습니다.

좋은 거 주고 싶고,

좋은 거 멕이고 싶습니다.

그리 할 것입니다.

‘무식한 울 어머니’ 계산법,

1억으로 사업을 시작해 여러 해를 지나 일을 접을 적

수중에 3천만 남아도 벌었다십니다.

그간 자식 잘 키우고 잘 먹고 잘 살셨단 말이지요.

오는 학교에서 배움값으로 얼마를 준다하여도

결코 물꼬에서 지내는 값을 계산할 수는 없을 겝니다.

단순히 돈으로 환산되지 않고

고마운 마음이면 더없이 큰 값일 테지요.

물꼬 또한 그 학교에 그러할 것입니다.

돈을 생각하면 돈만큼만 하고파질지도 모를 일이지요.

서로 미처 마련하지 못한 것들도 있을 겝니다.

하지만 예 온 뒤로는 어떻게든 이곳에서 우리 같이 살아갈 것입니다.

그 물건이 무엇이건 이곳에 있는 것들은

이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쓰일 것입니다.

다른 대안학교 아이들 한 학년이 모다 한 학기를 예서 보내는 것이

어째 처음엔 상황에 밀려 한 결정이 되었던 듯도 하며 적잖이 부담도 있더니,

아이들 올 때 되자 흥겨운 기다림으로 바뀌고,

아이들이 눈앞에 나타나자 그 마음 더욱 흔쾌해졌더랍니다.

그들이 다른 학교 소속일지라도

여기 와선 물꼬 아이들입니다!

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은 천국이고 정토이고 극락입니다.

오직 하늘처럼 섬기겠습니다.

온 마음으로 지극하게 만나겠습니다.

아이들의 성장사에 참여할 영광을 누리게 됨을 느꺼워합니다!

 

한밤 전화가 왔습니다,

멀리서 온 아이들 있다고 여러 곳에서 마음을 써줍니다.

정부발표가 어떠하든 방사능수치가 아무리 미세량이라 해도

아이들 비 안 맞히는 게 좋겠다는 원전관련 연구원의 전갈이었습니다.

기락샘도 신신당부해왔지요.

 

저녁 밥상에 앉았을 적,

선재가 무릎 뒤쪽 어디께 가시가 들어갔다 불편해했습니다.

탈의실로 가 옷을 벗어 금새 빼냈지요.

우리가 보낼 날들도 그리 갈 것입니다.

가시에 찔리면 가시를 빼내면 되지요.

엎어지면 무릎 탁탁 털고 일어나면 됩니다.

다, 다 잘 될 겝니다,

빛나는 한 학기가 될 테지요.

그저 아이들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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