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 2.물날. 흐림

조회 수 1191 추천 수 0 2011.11.17 03:16:59

 

 

심는 거라면 올 농사로는 마늘 하나 남았습니다.

마늘밭을 팹니다.

잡초를 걷어내고 풀을 갈아엎었지요,

무 좀 뽑아내고.

 

마을 회의가 있다는 전갈입니다.

소사아저씨가 나갑니다.

오랫동안 비워둔 보건소를 어찌 처리하느냐는 문제였지요.

인구가 줄며 결국 보건소가 문을 닫은 지 너샛 해 되나 봅니다.

마을에서 가장 말짱했지 싶었던 건물은

사람이 비워낸 티를 내며 날마다 낡아가고 있었습니다.

건물이 선 땅은 개인 거라

그 땅을 사서 거기 마을회관을 짓는다나 늘인다던가요.

그게 무엇이건 결국 건물 하나 또 짓는다는 얘기입니다.

시골마을마다 사람은 없는데 건물은 늘고,

궁극에는 난방비가 해결 안 돼 건물이 놀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또 건물을 세웁니다.

어디 지원이라고 나오면 결국 그렇게 표나는 걸 하는 게지요.

 

단식 이틀째.

마음 먹고 교무실 책상들을 정리합니다.

우편물은 어찌 그리 많은지요.

수필을 엮은 벗이 보내온 작품집도 있습니다.

오랜 소망을 담았다가 그리 풀어내는 이들이 있네요.

단식은 또 이런 과정을 함께 하게 하지요.

나랑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들이 내 죽음 뒤를 정리하고는 합니다.

우리가 그리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요.

그러나 곡기를 끊고 죽음처럼 잠시 삶을 ‘쉬는’ 듯 있으면

비로소 나를 둘러싼 것들이 보이는 거지요.

살아가는 일을 하느라고 못다 한 것들을

그렇게 미리 죽음에 들어 하는 것입니다.

바닥 청소도 일일이 걸레질로 구석구석을 닦습니다.

사과즙으로 인사들도 챙기지요.

오래 물꼬를 도와주셨던 기업가 몇 분과

그리고 논두렁 몇 어르신들께 보낼 것들을 준비합니다.

 

느린 능엄주를 틀어놓고 대배 백배와 선정호흡으로 해건지기를 한 뒤

오전에는 맨발로 마을을 걸었습니다.

학교 운동장에서 출발해 윗마을 느티나무까지 1시간을 좀 넘게 걸었네요,

아이랑.

느티나무 아래서 선정호흡도 하고.

이 가을, 그렇게 어딘가를 향해 맨발로 걷듯

저 역시 길을 찾고 있음을 문득 알아차렸습니다.

마치 길을 가다 멈추고 다음 목적지를 생각하는 중요한 기로의 사람처럼

그렇게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단식은 그렇게 돌아보고 둘러보게 하고 있답니다.

등배, 모관, 합장합척, 붕어운동,

그리고 풍욕으로 마무리.

 

사흘 단식을 저도 해보겠다고 나선 아이,

오늘은 좀 쟁쟁거렸습니다.

누가 하란 것도 아니고 저가 한 대놓고...

무어라 한 소리를 하지요.

화가 좀 올라오니 영락없이 몸이 힘든 반응을 합니다.

그렇게 너무나 선명한 감각들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도

단식을 하지요,

몸에도 마음에도 그 결에 아주 민감해지니.

이런 과정보다 더한 성찰이 없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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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2일 물날 따스함 / <단식 2일째>

 

  첫날에는 버틸 만했는데 오늘은 정말 버티기 힘들다. 어제는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는데 오늘은 배가 고파서 미칠 것 같다. 다리하고 손에 힘이 풀려서 걷거나 물건을 집거나 하기도 힘들다.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심한 어지럼증이 온다. 정말 생각이 안 난다. 아무것도 하기가 힘들고, 눈이 잘 안 보인다. 설사가 막 뿌디딕 나오며 배가 아프다. 입에서는 버섯 냄새가 난다.

  피곤하고 정신이 다 풀린다. 하루 종일 새벽에 일어나 오줌 살 때의 느낌 같다. 장이 다 뒤틀리고 먹을 거 생각밖에 안 난다. 피자 통닭 스파게티... 아보카도, 빵, 된장죽 등...

  그냥 채식(최근 얼마간 채식을 실천 중이다.)을 포기할까 싶다. 끝나면 먹고 싶은 게 너무 많다.

 

(* 그림: 먹고 싶은 것들)

 

(열네 살,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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