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아침입니다; 고마운 하늘.

며칠 동안 뒹굴었던 이부자리를 터는 것으로

해건지기를 대신합니다.

밥바라지 혜숙샘의 오늘 도움꾼 소정샘은

일찌감치 가마솥방으로 달려가 있습니다.

 

시와 노래가 있는 한솥엣밥의 밥상머리공연은

류옥하다의 플롯곡이었습니다.

대단한 실력을 갖추지 않아도 제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무대,

예술이란 것이

특정인이 아닌 누구나가 누릴 수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 아닐지요.

 

아침은 먹은 아이들이 차곡차곡 가방을 싸고,

모둠끼리 나눈 공간을 청소합니다.

우리 지낸 것에 대한 정리를 넘어

누군가가 또 이곳을 쓸 수 있도록 하는 채비로서의 먼지풀풀이지요.

곧 샘들은 마지막 빨래를 걷어와 주인을 찾아주고,

가져왔던 반찬통들 씻겨 담긴 큰 바구니도 들어와 이름자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갈무리 글을 썼고,

마지막으로 복도에서 ‘마친보람’(졸업식)이 있었지요.

 

학교를 나서기 전 둘러보니

역대로 가장 정리가 잘 된 계자였던 듯했습니다.

그래도 당연히 남은 이들이 할 일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리만 되어도 훨 수월하다마다요.

희중샘과 무열샘의 공도 공이지만

다른 샘들도 마음 많이 내었구나 싶습디다.

어젯밤 어른들 하루재기에서 무열샘이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번져갔나 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사람들이) 물꼬를 좋아하잖아요. 좋아서 오고.

그런데 우리들이 가고 나서 남은 자리가

옥샘이나 삼촌, 하다에게 폐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무언가를 사랑하는 건

그 대상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생각하는 거’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우리가 물꼬를 정말 좋아한다면, 물꼬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마음 먹먹해졌더랍니다.

어제는 들으며 그러하였고,

오늘은 그것이 옮겨진 행동들을 보며 그러하였지요.

 

영동역.

그래도 아직 빠뜨려놓은 물건들이 있어 역에서 ‘물꼬장터’ 열렸고,

이어 노래 하나 목청껏 부른 뒤 헤어졌습니다.

아, 엊그제 유아박람회서 손비누 박스가 세 상자나 들어왔습니다.

누가 또 이리 마음을 낸 것일까,

어쩜 이리 요긴한 것을 챙겨주셨을까 궁금했지요.

택배처에 보낸 이를 수소문했더랍니다.

“받으셨어요?”

규범이네였네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규범이, 애써 나무젓가락으로 만든 석궁을

결국 두고 왔다 역에서 울었습니다.

챙겨주마 했지요.

그런데 학교로 전화 넣어보니

벌써 모든 것이 불 속에 들어가고 없었습니다.

한 때는 그것 없이 단 한 순간도 견딜 수 없다싶지만

그것이 그리 별게 아니게도 되더라,

뭐 그런 문장이 위로가 되려는지...

 

그렇게 아이들 가고,

샘들은 읍내에서 갈무리모임을 가졌습니다.

희중샘, 물꼬가 참 좋고 고맙다 합니다.

그가 있어 더 고마운 물꼬이지요.

인영형님, 가면 갈수록 계자에 빠져든다는 그는

계자가 항상 새롭답니다.

“어떻게든 잘 돌아가고,

안될 것 같은 일들도 되고...”

우리 모두가 하늘과 함께 만드는 ‘물꼬의 기적’이지요.

‘물꼬에서 필요한 체력 만만찮다’고 운을 뗀 무열샘은

이번 계자,

형길샘(긴 세월 물꼬의 품앗이였던, 지금 한 대안학교 교사가 된)했던 말 생각이 나더라며

‘좋아서 같이 있는 것도 필요하지만

물꼬가 어디를 향해있나, 그 지향점과 내 지향점 생각해보자’데요.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언성을 높이지 않는 이곳,

그래도 혼낼 때 혼내야 하는데, 그러나 그 경계를 잘 모르겠는...

착한 선생이 좋은 선생이 되는 건 다른 문제인 듯...”

주영샘은 새끼일꾼들을 극찬을 잊지 않았습니다.

“체력을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새끼일꾼들의.

무열이가 10년 넘게 다녔다는 물꼬,

무엇이 무열이를 여기 계속 다니게 했는지 느끼며 뭉클했습니다.”

어머니가 그리워하는 것들을 이해하는 시간도 되었다는 소정샘은

“생태라는 이름에 걸맞는 화장실이며 계곡, 풀이름, 풀벌레, 강아지 짓고...”

아이들이 그 속에서

경쟁을 토대로 하는 공교육과 다른,

아카데믹한 것과는 또 다른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느꺼웠다지요.

연규형님은 잊지 않고 물 얘기를 챙겨주었네요.

물이 아쉽다가 그 물이 나올 때 준 사소한 것에 대한 감사 말입니다.

“봉사하러 왔는데, 제가 더 많이 배운...”

서인형님은 결국 울컥하고 말았네요, 두 차례나.

하루는 긴데 훅 간, 아침에 일어난 기억도 없는데 며칠 훅 갔다는 혁샘은

‘마냥 재미있지만은 않은데 그만큼 얻어간다.’ 했습니다.

‘그저 놀게 하는 것도 아니고, 시설도 아이들한테 불편한데,

물꼬 교육 시스템이란 게 초등학교 나이에 학교가 정말 재밌는 곳이 되고 있’더라던가요.이런 게 앞으로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다시 오고 싶다, 뜻 깊었다 했습니다.

경이형님은 새끼일꾼 첫 해에 내리 세 계자를 뛰는 전설이 되었네요,

그것도 아주 잘 제 몫 이상을 해낸.

하루 먼저 일보러 나왔던 휘령샘, 갈무리를 함께 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샘들이 많이 모자라다 그랬던 계자였는데,

사이사이 샘들 들어오고... 물꼬가 돌아갈려고 그러는구나...”

이제는 자원봉사자이기보다 물꼬의 식구 같은 마음을 가진 그는

‘사람에 대한 편견을 늘 반성하게 하는 물꼬’라 했지요.

“이번 계자, 첫 계자 비해 순했던 것 같애요.

잔잔한 감동들도 많고...

그리고 제 마지막 인사.

“사람을 오래 보는 일 참 좋습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자라나는 걸,

어른들이 나이 먹어가는 걸 보아왔습니다.

한 사람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기쁨, 엄청난 복이지요.

좋다고 다 모여 살 필요는 없습니다.

이곳이 그저 소박하게 의미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곳이 어딘가 선한 일에 동행하는 한곳이길 서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우리가 잘한 것이 있다면, 그건 우리 모두의 공일 것입니다.

애쓰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아이들이 갔고, 그리고 어른들도 갔습니다.

여느 때라면 일정이 끝나고도 며칠 북적댈 것이나

이번엔 문상을 갈 일이 기다리고 있어

머무는 이 없이들 돌아갔습니다.

긴 긴 여름 일정이 그리 끝났습니다.

품앗이샘들, 새끼일꾼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

빛나는 그들입니다.

누구보다 훌륭했던 밥바라지에 대한 찬사야말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일이지요

; 선정샘, 인교샘, 지은샘, 무범샘, 경희샘, 혜숙샘.

모다 고맙습니다,

모다 사랑합니다.

무어라 말을 더할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1656 2011. 6. 7.불날. 맑음 / 단식 2일째 옥영경 2011-06-18 1194
1655 147 계자 이튿날, 2011. 8.15.달날. 흐림 옥영경 2011-09-01 1194
1654 2008.11.19.물날. 맑으나 매워지는 날씨 옥영경 2008-12-06 1195
1653 2009.10.17.흙날. 변덕 심한 하늘 / 산오름 옥영경 2009-11-04 1195
1652 2010. 5. 7.쇠날. 맑음 / 오페라와 뮤지컬 콘서트 옥영경 2010-05-23 1195
1651 2011. 9.21.물날. 맑음 옥영경 2011-10-04 1195
1650 11월 27일 흙날 맑음, 밥알 반짝모임 옥영경 2004-12-03 1196
1649 108 계자 닫는 날, 2006.1.16.달날.흐림 옥영경 2006-01-19 1196
1648 2007. 8.28.불날. 비 옥영경 2007-09-21 1196
1647 2008. 3.27.나무날. 맑으나 춥네요 옥영경 2008-04-12 1196
1646 2008. 5.21.물날. 맑음 옥영경 2008-06-01 1196
1645 2005.12.11.해날.맑음 옥영경 2005-12-13 1197
1644 2006.8.27-30.해-나무날 옥영경 2006-09-14 1197
1643 2006.11.27. -12. 3.달-해날 / 낙엽방학, 그리고 입양 계획 옥영경 2006-12-05 1197
1642 2006.12.28.나무날. 눈발 옥영경 2007-01-01 1197
1641 2007. 6. 1.쇠날. 맑음 옥영경 2007-06-15 1197
1640 2007. 9. 1.흙날. 구멍 뚫린 하늘 옥영경 2007-09-23 1197
1639 2008. 5.10.흙날. 맑음 옥영경 2008-05-20 1197
» 147 계자 닫는 날, 2011. 8.19.쇠날. 맑음 옥영경 2011-09-06 1196
1637 2009. 2.18.물날. 맑음 옥영경 2009-03-07 1198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