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4.달날. 볕 나고 갬

조회 수 1221 추천 수 0 2011.07.11 23:19:29

 

 

아이가 어릴 적부터 귀를 앓았습니다.

정확하게는 귀가 아니라 귀 언저리입니다.

인구 30%가 있는 증상인데, 그것이 일생 아무 일 없이 지나기도 하지만

자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지요.

여러 차례 염증을 일으켜 고생하기 수년,

결국 수술을 결정했습니다.

오는 쇠날로 수술날짜를 잡았고,

수술 전 확인할 몇 가지에 대해 오늘 결과를 받았습니다.

예정대로 수술케 되었고,

나무날 다시 서울 오르기로 합니다.

 

영동으로 돌아옵니다.

장마여도 여름임을 볕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금강에서 잠시 쉬었지요.

비가 저리 많이 왔더란 말입니까.

아이는 이 정부의 4대강 사업이

결국 현재 일어나고 있는 홍수재난의 심각성을 부른 거라고

분노하며 열변을 토합니다.

잠겨버린 둑방 길과 쳤던 차양이 겨우 지붕만을 남긴 풍광이

보로 넘치며 내는 물소리와 함께 무서움을 불렀습니다.

어쩌면 인간은 가끔 이런 풍경과 마주쳐야할 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쉽게 잊고 자만하므로.

 

읍내서 한의원을 들러 침을 맞고,

벗에게 들러 재미난 물건 하나 얻어왔습니다.

“어, 예쁘다!”

우체국에서 관리하던, 오래된, 나무로 된 낡은 우체통이었지요.

그리 중뿔날 것도 없지만

그 우체통이 서 있었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그것을 아름답도록 했습니다.

우체통은 물꼬 안에서 아이들과 뭔가를 할 좋은 매개가 될 듯도 합니다.

 

대해리에선 상자 하나가 먼저 맞았습니다.

티벳독립지지자인 한 선배분이 묵어간 뒤 보내오신 선물이었지요.

황하강의 잉어가 등룡폭포를 올라 용이 된다는 전설에서 나온 민화가 새겨진

어룡도 컵이었지요.

아이를 위한 선물이었습니다.

‘현 현실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것 같아’ 제게 읽으라 권하신

쿠바의료체계를 담은 책도 들어있었습니다.

섬세한 분인 줄 알았으나,

이렇게 상대를 꼼꼼히 헤아리며 보내온 선물이라니...

이런 마음을 넙죽넙죽 쉽게도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람들한테 늘 고맙고, 그리고 늘 미안합니다.

 

물꼬에서 먹는 밥이 최고입니다,

창으로 넘어오는 바람과 초록을 들이며

내 손으로 밥해서 내 속도대로 먹을 수 있는.

아, 대해리 돌아왔군요.

145계자는 마감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두 일정이 더 있긴 하나, 늦은 공지에도 평년 수준입니다,

직전에 방송을 타거나 하는 일이 없는.

 

지난 6월초 한 환경단체에서 공지글 하나 물꼬 홈피에 올렸습니다.

제주도에서 하는 환경캠프 안내로

한 외국은행과 공동 주관하여 무료로 진행하는 이 행사는

올해 10기에 이르고 있었지요.

중학생 80명을 선발하는데, 올 지원자는 무려 1,250명에 이르렀다 합니다.

삼수를 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고

유명 외국계 학교와 대안학교들에서도 신청이 넘쳤다지요.

1차는 제출한 에세이로 2배수 160명을 선발하고,

2차 면접에서 2대 1의 경쟁을 뚫고 나머지가 남게 되는 겁니다.

물꼬에 오간 아이들도 여럿 참가희망서를 냈다 들었습니다.

오늘 그 1차 발표가 있었습니다.

운 좋게도 류옥하다 선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료한 산골살이에 재미 하나 만들어진 거지요.

아이는 학교도 다니지 않고 고립된 듯한 산골에서

끊임없이 그렇게 세상과 소통할 창구를 찾아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로 시작하는

한 학부모의 메일이 기다리고도 있었습니다.

‘부모로서 제 아이를 똑바로 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함을 이번에 다시 느꼈습니다.

부족한 것 있을 테지만, 부족한 것 많을 테지만

한결 같이 잘한다고 격려 받으며 자란 아이들입니다.

이 아이들이 학교 밖 물꼬라는 공간에 놓여졌고

물꼬에 계신 선생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우리아이들에 대한 글을 읽을 땐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부모로서 가리고 싶고 숨기고 싶고 모르고 싶은 것이 있어서였겠지요.

아이들이 폭풍의 한가운데 있을 때 애써 냉정해지려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이 냉정도 내 새끼 감싸기의 방법이었지요.

우리 아이들과 떨어져 있는 동안 저는 부모로서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이야기 하다가 보면 걸리던 벽이 있었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벽이랄까요

그 벽이 이번 이동학교를 통해서 흔들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옹벽같이 튼튼한 벽이었는데 이것이 흔들렸으니 큰 성과라 생각합니다.

이 성과가 큰 희생과 아픔으로 이루어졌기에 마냥 기뻐할 수도 없습니다.

하다의 희생과 아픔이 깊은 상처로 남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제 자식 감싸기에 바빠 가까이서 자식의 아픔을 지켜봐야하는 옥샘의 마음도 뒤늦게서야 헤아려졌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물꼬와의 좋은 인연에 감사드리며

항상 건강하시고 늘 좋은 물꼬에서 행복하시기 바란다셨습니다.

 

처음 메일을 읽고는 유구무언이었고,

다음은 교사로서 부모로서 부끄러웠으며,

역시 교사로서 부모로서 좋은 본을 보여주신 당신께 머리 숙였습니다.

당신 자식 괜히 그런 반듯한 아이가 아니었던 겝니다.

어디 태교만 부모의 사람됨일까요,

부모 삶이 고스란히 아이들 삶일 것입니다.

그런 게 있지도 않았지만 혹여 서운한 거라도 제 마음에 남았더라면

이 글월이 그걸 다 갈음하겠다는 생각이 들더이다.

고맙습니다.

잘 배웠습니다.

 

그런데, 세상이란 참...

사과를 할 사람이 아니라 외려 칭송받을 분들은 어떤 사안에 깊이 사과를 하고,

정작 부끄러워할 이는 얼굴이 두꺼운 게 우리 사람살이입디다.

난 어느 쪽인가,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 밤입니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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