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8.쇠날. 맑음

조회 수 1225 추천 수 0 2011.02.05 01:19:48

 

 

                                               어머니의 택배

 

 

                         물미역은 필요한 만큼 봉지 봉지 넣어라

                         얼려놨다 꺼내서 데쳐 먹으면 바로 한 것 같다

                         그 속에 도토리묵도 네 덩어리 넣었다, 안 깨질까 모르겄다

                         명태조림은 지난번에 보니 아도 잘 먹데

                         떡국떡이 찹쌀이 섞인 줄 모르고 해서 영 파이다

                         그래도 먹을 만은 하더라

                         가래떡은 심심할 때 연탄난로에 꿉어 묵어라

                         고사리도 좀 넣었고

                         시금치는 다 다듬었다, 살라면 돈이지

                         조개는 바지락이랑 대합살이다, 떡국 먹을 때 같이 너라

                         산지 좀 했다, 시원하게 둬야 엿이 안 녹는다

                         쥐치는 그냥 냉장고에 있길래 보낸다

                         과일도 몇 개 넣었네

                         명태는 무를 굵게 척척 썰어 넣고 암 것도 넣을 것 없다

                         마늘 탕탕 두들겨 넣고 파만 썰어 넣어도 시원타

                         모자반무침은 먹을란가 모르겠네

                         창란젓은 남자들이 좋아할 거다

                         또 뭘 넣었더라...

 

 

“엄마, 너무 행복해.”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끌어안고 쪽쪽거려댑니다.

그러다 또 어느 순간엔가는 축 늘어져 있습니다.

“아아, 피곤해. 힘들어, 사는 게.”

“야, 류옥하다, 무에 그리 쉽게 마음이 삐딱삐딱 하냐?

금새 행복했다가 또 금새 좌절하고...”

“내가 그랬나...

엄마, 아들이 ‘감정이 아주 풍부하다’ 생각해줘.”

그렇게 또 웃고 갑니다.

 

영동생평모임이 있었습니다.

새해맞이 마음 털기였습니다.

오고가는 마음들을 꺼내 상 위에 올렸더랬지요.

요새 하고 있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 되었습니다.

똑바로 살고 있는가, 성찰의 날들입니다.

돌아오는 밤길, 어, 달리는 가운데 길 한가운데서 시동이 꺼졌습니다.

날 하도 추워

연료필터가 문제이거나 기름이 얼었다는 소리를 더러 들었던 터라

당황하기 덜했습니다.

수습을 하고 일단 산마을로 돌아는 올 수 있었지요.

낼 수리점을 나가 봐얄 것입니다.

 

좀 처져있던 밤이었습니다.

누구를 준엄하게 꾸짖을 수 있을 것인가,

나야말로 잘 살고 있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어디 희곡에서만의 대사이던가, 무겁게 누웠는데

아이가 건너와 멀뚱멀뚱 천장을 보는 엄마를 보며 자장가를 부릅니다.

아이 어릴 적 엄마가 부르던 자장가를

이제 엄마를 토닥이며 아이가 부릅니다.

늘 사람을 보내는 일이 어렵습니다.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떠나는 이를 보내는 일은 늘 우물 같은 깊은 슬픔이지요.

생이 무거운 제자에게 보내는 글월도 그만큼 무겁습니다.

 

00야,

필요하면, 찾는 법이다. 누구라도 그렇단다. 나 역시.

필요할 때 네가 부를 수 있는 이름이라니, 고맙다.

내게도 그런 선생님들이 혹은 선배들이 있었더랬단다.

내가 무사히 오늘 아침을 맞을 수 있는 기적도

바로 그들의 힘이었음을 새삼 느끼는 밤이구나.

 

나도 부끄러운 짓 피해가지 못한 어른이라 무슨 위로의 말을 줄 수 있으려나 싶으이.

00아,

한순간의 잘못이 얼마나 한 인간을 지옥으로 몰고갈 수 있는지를

처절히 경험하는 시간을 얼마 전 지났다. 

아니, 사실은 아직도 그 시간을 건너가고 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내가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다.

길은 늘 두 갈래다. 살든가, 죽든가.

살자. 나도 살고, 너도 살자.

자, 살려면 어찌 해야 할까?

그렇다, 답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사실 누가 누구를 살리고 죽이겠느냐.

결국 나 자신이다.

 

그리고 덧붙이는 한마디;

때로는 자신의 명예, 혹은 자기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서도 사람들은 치욕을, 혹은 고통을 견디며 살기도 한다.

자, 우리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00아,

이 밤, 깊은 잠을 자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

내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이 한 문장으로만 남아있네.

잘 자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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