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26.달날. 맑음

조회 수 1225 추천 수 0 2012.01.03 22:05:40

 

흙집에 문을 달고 보니

흙집 안 다른 곳의 바람구멍이 그제야 숭숭하게 보입니다,

커다란 크기의 휑함에는 뵈지 않던.

어찌 이렇게나 부실하게 했더란 말인가,

겨울 한가운데서 망연하였지요.

아이들 뒷간으로 가는 나무 문틀에 솜으로 된 문풍지를 붙이고,

문구용 글루건으로 문의 나무 틈새들을 메우고 있는데

아이가 공사용 글루건을 찾아왔습니다.

한순간 일은 속도가 붙지요.

적절한 도구는 그리 일을 수월케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구를 구비하는 것일 테구요.

 

간밤 아이가 울었습니다.

흙집 수도가 결국 얼고 말았지요.

아이가 물이 들어오는 관에 열선도 감고 꼭지를 틀어놓기도 했는데,

간밤 어른들이 잠시 신경 놓은 사이 그만 언 것입니다.

흙집이 구조적으로 부실한 데다,

공사를 한 이가 수도관 부품을 요새 찾기 어려운 구식으로 해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을 써오던 참입니다.

“계자 할 때까지 물 안 녹으면 어떻게 해...”

“아, 문제가 일어나면 어른들이 어떻게든 하겠지.”

“젊은할아버지도 잘 모르고, 엄마도 잘 모르는 일이니까...

내가 신경 안 쓰니까 그리 됐잖아...”

부실한 어른들이 아이의 삶에 무게를 자꾸 더하는 것도 있겠지만

성격입니다요, 성격.

 

옷방에 이곳저곳 걸 커튼들을 가지러 갔다가

또 여기 저기 보이는 상자들을 뒤집습니다.

이걸 정리해놓으면 저 상자가 보이고, 다른 상자가 또 눈에 들어오고...

어느 순간은 끝이 없겠기 멈춥니다.

커튼부터 달아야지요.

고추장집부터 단도리를 합니다.

오기 전 살피지도 못하고 밥바라지 샘들이 묵었습니다,

여름엔 장마를 지나고도 거풍 한번 제대로 못한 채,

겨울엔 문틈 단도리도 못한 채.

올 겨울은 내내 부지런을 떨어보지요.

그리 표나게 나아질 수 없어도

분명 사람 손닿으면 나을 게다, 기운으로라도 그럴 게다 하고.

문틀에 솜 문풍지도 붙이지요.

된장집과 고추장집 곰팡이자국도 지워봅니다,

들어서는 이들이 이왕이면 좀 나으라고.

 

교무실에선 겨울계자에 움직일 새끼일꾼들에게 개별통지.

새끼일꾼은 늘 신청자가 넘습니다.

일만 생각하면 고학년 중심, 왔던 아이들 중심이 되기 쉬운데

그래도 처음 오는 이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 역시 기준 하나랍니다.

물꼬 편에서의 일 중심으로만 생각지 않고 아이들 편에서도 소중한 경험이 되도록

균형을 잃지 않고 잘 배분해보기.

도교육청에서 지역교육청에 보낸 공문도 들어와 있습니다.

이젠 교과부 차원에서 모든 대안학교들의 재정현황, 운영현황들을 살피고

이탈하는 교육권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길을 찾고자 하는 것이겠지요.

오늘 보내고 낼 달라는데, 이런, 시기가 시기여...

 

달골도 한 바퀴 돌았습니다,

긴 겨울 비기도 할 것이라.

창고동과 햇발동 말고도

컨테이너며 원두막, 콩밭 포도밭 둘레까지 다 돌아보지요.

어지러운 창고를 들여다보며 아이가 묻습니다.

“엄마는 짜증 안나?”

늘려있고 정리 되어 있지 않으면 마음이 좋지야 않지요.

하지만 누구를 탓하나요.

내 손이 닿지 않은 걸, 미처 하지 않은 맡은 이만 나무랄 일이 아니지요.

하면 됩니다.

꽃 피는 봄날이 여러 모로 기다려지는 날들이네요.

 

희중샘이 보내온 글을 읽습니다.

계자에서 아이들맞이는 여러 해 그가 맡았던 일입니다.

흙날 밤 일을 마감하고 자정 넘어 오겠다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공간이고, 제가 좋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니

힘들거나 고생을 한다 해도 개의치 않는다’ 하였지요.

‘들어오는 버스에 태워주고 역에서 돌아가면 한결 낫기야 하겠지만

 

흐지부지 아이들을 대강대강 모으고 버스를 태워 보낸다면

제 마음이 좋지 않을 거 같’다며

‘미리 모임은 참석 하지 못하더라도 새벽에 닿아 계자 꾸리는 샘들과 인사도 한 뒤’

맞이 갔다가 학교까지 다시 들어와 떠나겠다지요.

뭉클하였더랍니다.

 

선정샘의 글도 닿았습니다.

그대는 글 써야해, 자주 그에게 하는 이야기이지요.

 

‘...

남들 하는 걸 대체로 다 하지 못하던 때에는

남들 하는 걸 하지 못 하는 열등감에 흐린 날도 있었고

언제쯤 하게 될까 괜히 내 속을 내가 긁는 날도 많았어요.

그런데요, 옥샘,

수도꼭지에서 콸콸 쏟아지는 물을 바라보고

변기물을 내리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하염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잠깐을 올라가다가

돈만 내면 얼마든지 물건을 집을 수 있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서다가

문득문득 무언가 어정쩡한 마음이 돼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다들 이렇게 사니까 이렇게 사는 게 아무렇지 않아야 되는 건가

멈출 수 없는 수레바퀴에 다들 올라서 있다고 고백하고

굴러가는 걸 창피해 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생각해요.

그렇다고 달라지는 게 있지도 않아요.

날마다 정신 사나운 아침을 보내고 어떻게 어떻게 하루가 가고

애들이랑 싸우고 먹이고 먹고 씻기고 버리고 추리고 그러다보면

시간이 깡총깡총 뛰어가니까

잠깐씩 그러고 마는 거예요.

 

저같이 사는 사람들한테 물꼬는

죄를 사함을 받는 면죄부 같은 공간이었고

깔끔하고 스마트하게 아이를 키우면서 또 새로운 세상을 접(!)해 보라는

부모들의 얄미운 욕심에 넉넉하게 응대해 주는 물꼬였으며

엄청난 카리스마와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능력으로

의연하게 지금까지 이어온 진한 역사였어요.’

 

그리고 물꼬의 많은 일들이

고스란히 이곳에 사는 아이에게까지 짊어진 그 짐에 미안해하며

‘갑자기 되돌아보니 지친 마음이 너무나 몰려와 버리는 바람에

마음 가라앉지 말라’ 위로도 더해주셨지요.

참, 참,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갑니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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