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로 학교가 몰입한 동안

달골이며 학교며 풀은 또 무섭게 자라 있었다.

계자하기 직전에 예취기로 또 잔디깎기로 혹은 손으로 맨들하게 해놓았는데,

이즈음의 풀은 아침저녁 자라는 게 보인다더니 딱 그랬다.


서울 37도.

이곳은 여전히 내리꽂히는 햇살이어도

그늘 아래는 벌써 가을을 품고 있었다.


널려있던 빨래를 걷어온다.

수건에 묻히겠다.

아이들이 가고 남은 흔적은 수건만이 아니다.

산오름에 챙겨갔던 여벌옷들이

소나기 만나 잘 쓰이고 한 짐이 되었던.


냉장고를 정리한다.

거의 비웠으니 넣을 때보다 손이 덜 가기는 하다.

계자에서 남은 음식이라고는 짜장 밖에 없었다.

밥바라지 1호기 정환샘과 2호기 화목샘이 잘 꾸려준 밥상이겠다.

3호기 윤실샘이 그야말로 할 만치 정리를 해주고 나간 뒤끝이겠다.


교실에서 나왔던, 그래서 교무실과 컨테이너에 쌓여있던 물건들이

다시 제자리로 간다.

유리제품들은 무슨 이삿짐처럼 샘들이 신문지 말아 야물게도 넣었댔다.

푸는 마음이 새 살림을 차리는 듯.


그리고, 복사 통조림을 만든다.

아이들이 원 없이 먹고 가도 아직 쌓인 복숭아였다.

썩은 부위가 늘어나고 썩은 알이 옆으로 무섭게 전염되고 있었다.

씻고 껍질을 벗기고

물에다 설탕을 3분의 1쯤, 그리고 소금 한 숟갈과 레몬즙 두 숟갈을 넣고 먼저 끓인다.

복사가 투명해질 때까지 저었다,

거품이 일어나면 걷어내면서.

우리들의 진하고 가슴 뜨거웠던 2019년 여름이

유리병에 담긴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5014 2019.10.24.나무날. 좀 흐림 옥영경 2019-12-10 599
5013 166 계자 이튿날, 2020. 8.10.달날. 비 옥영경 2020-08-14 599
5012 2019. 9.27.쇠날. 해 나왔다 오후 사라진 / 두 발의 총성 옥영경 2019-10-31 600
5011 168계자 여는 날, 2021. 8. 8.해날. 소나기, 풍문처럼 지나다 [1] 옥영경 2021-08-13 601
5010 5월 물꼬stay 이튿날, 2019. 5.18.흙날. 비 옥영경 2019-07-19 603
5009 2019. 7. 3.물날. 맑되 잠깐 구름 / <사람은 사람으로 사람이 된다>(나쓰카리 이쿠코/공명) 옥영경 2019-08-14 603
5008 2020. 2. 4.불날. 갬 옥영경 2020-03-05 605
5007 2024. 2.11.해날 ~ 3. 4.달날 /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옥영경 2024-02-13 607
5006 5월 빈들 이튿날, 2019. 5.25.흙날. 다소 흐림 / 느티나무와 홍단풍 모시다 옥영경 2019-07-24 609
5005 2019. 7.31.물날. 맑음 / 날마다 하늘을 밟고 사는 이 옥영경 2019-08-22 610
5004 2019. 9.20.쇠날. 흐려가는 오후 / 굴착기 옥영경 2019-10-30 610
5003 2019.11. 9.흙날. 오후 흐림 / 바짓단 옥영경 2019-12-30 610
5002 2019. 6.29.흙날. 비 / 칼국수를 노래함 옥영경 2019-08-14 611
5001 2019. 7. 4.나무날. 맑음, 날씨 좀 보라지! / 제도학교의 물꼬 나들이 옥영경 2019-08-14 611
5000 171계자 사흗날, 2023. 1.10.불날. 흐림 옥영경 2023-01-12 611
4999 2019. 6.26.물날. 흐리고 비 / 물꼬 해우소는 더럽다? 옥영경 2019-08-13 612
4998 2022. 8. 6.흙날. 맑음 / 170계자 샘들 미리모임 옥영경 2022-08-08 613
4997 5월 빈들 여는 날, 2019. 5.24.쇠날. 맑음, 31도였다나 / 열두 마리 버들치! 옥영경 2019-07-24 615
4996 2019.10.21.달날. 맑음 / 오늘은 오늘치의 삶을 살아냈고 옥영경 2019-12-05 615
4995 2022. 1.26.물날. 맑음 / 교육재정을 들여다보다; 풍요는 낭비가 아니다! 옥영경 2022-01-31 616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