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쇠날 맑음, 100 계자 소식-둘

조회 수 1858 추천 수 0 2005.01.25 15:01:00

1월 21일 쇠날 맑음, 100 계자 소식-둘

며칠에 걸쳐 100 계자 소식을 듣습니다.
첫날 난롯가에 둘러앉아 얘기를 시작하기 전
삼촌도 상범샘도 희정샘도 고개를 절래절래 했더랬습니다.
"첫날, 샘 나가시고 계자일꾼들이 하루재기 하느라 앉았는데,
보름이 좌악 덮쳐오면서,
아이구 괜히 가시라 했구나 싶더라니까요."
첫날 연극놀이를 하며, 한데모임 그리고 대동놀이를 하며,
이미 녀석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보았던 터입니다.
나가면 학교일을 그리 걱정하지 않는데
(조옴 오랜 일꾼들이어야 말이지요)
왠지 싱숭생숭 마음이 자주 끌리기도 했더라지요.
주로 한 아이를 중심으로 이곳저곳으로 뻗쳤던 사건들이 큰 부분입니다.
읍내 나갔던 한 녀석이 차를 놓친 일도 있고
어느 녀석은 엉덩이 째진 줄도 모르고 사흘이나 지나 꿰매러가고
칼(식칼은 아니구요)을 휘두르질 않나
수제비담긴 그릇을 온 가마솥방에 뿌리고
싸워서 여자애 머리카락이 한 움큼 빠지기까지 하고
어른 지갑이 다 빈 일도 있었고...
"일주일 보내고 났는데, 어휴, 진짜 괜히 가시라 그랬구나 싶데요."
상범샘은 목이 다 쉈고(이만저만 단단한 목이 아니거든요),
물꼬에서 전무후무하게
다섯 녀석이 상범샘한테 종아리를 한대씩 맞기도 했고,
두 번째 '호숫가나무'가 끝나고 말입니다,
그게 어떤 시간인데, 기어가는 벌레 소리가 다 들리는 고요의 시간이거든요,
그래도 날이 가고 또 가니
이곳 대해리의 자연이 그리고 좋은 어른들의 흐름이
무엇보다 아이들의 관계가
그 아이를 가라앉혀주었던 모양입디다.
순해지더라데요.
기막혔던 사건들을 넘고 나더니,
하하, 그제야 소소한 즐거움들이 나오나 보데요.
밤을 새도 모자라 다음 날 담날로 얘기가 길어진 까닭입니다.

대나무를 베 오고 자르고 다듬고 하며 만든 연들,
내내 바람을 몬 뜨개질,
조무래기들끼리 모여 한 춤들,
지나샘의 이끔과 민재의 상상력이 돋보였던 이야기 그림책,
일곱 겹 여덟 겹 내내 붙여나가던 지난한 작업의 탈 만들기,
토끼도 몰고 지도도 만들던 '겨울산 겨울들',
돌도 쌓고 돌 글자도 새기던 '다싫다',...
다른 때보다 한 시간이 늘었던 열린교실은
그만큼 여유로이 공부하며 누렸다고 하대요.

자기 살고 싶은 집, 자기 꿈이 있는 집으로 흙을 다루어
마을도 같이 만들고,
따로 따로 하던 작업을 한날은 끼리끼리 모여
빵 가게, 바닷가 속, 자유학교, 우리 동네를 같이 만들기도 하였다지요.
예쁘게도 빚었다던 만두와
홍당무 김 수제비 그리고 자연색,
색깔 곱기도 했다는 사색 수제비는
주물럭 시간에 나온 성과물이었다지요.
보글보글방에선 돌아가며 저녁 반찬거리를 만들어 상에 올리고
그 사이 다른 패는 풍물을 울렸답니다.

"한껏맘껏은 뭣들 했대?"
궁금도 하였지요.
저마다 들로 산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이불 펴고 앉아 뜨개질에 책읽기에
어느 녀석이랄 것 없이 빠져있더라나요.
온 천지에 '달고나'가 진동하고,
모양을 잘 만들어 여섯 개나 먹은 녀석도 있었더랍니다.
아, 뜸도 떴다데요.

나뭇꾼과 선녀가 되어 산도 올랐다지요.
우리 지낼 동안 땔 나무들을 해 내렸답니다.
스스로 물꼬를 지키는 사수대라며
힘을 내던 사내 녀석들 무데기도 있었다지요.
그 길에 만난 겨울 저수지,
산짐승도 돌아가서 새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눈 위에
그리고 단단하게 받친 얼음 위에
일년 치쯤은 놀았을 법 했을 겝니다.
또 한 번 자연이 우리를 위해 마련한 선물을 풀었던 게지요.

이 겨울도 때 빼고 광내러 나가지 않았겠어요.
면소재지로 가던 길을 이번 참엔 읍내로 잡았다지요.
댑다 크기도 한 탕이 있더랍니다.
마침 손님까지 몇 없어 아주 헤엄을 치고 놀았겠지요.
그럼요, 이번에도 팬티 양말 하나씩이 입장권이었습니다.
(무식하게 빨래감 들고 갔다 마시고
산골 아가들 그리웠던 김나는 욕실에 초점을 맞추소서.)
살을 들춰가며 때 뺀 누구누구 소문이 오래 무성했지요.

아이들은 나날이 볕이 스러질 즈음 배 깔고 누워
그림놀이를 통해 하루를 그림으로 옮겼답니다.
어린 녀석들이 유난히 즐기더라네요.

대동놀이야 볼 것도 없이 달리고 또 달린 이어달리기 있었겠지요.
오제미도 하고 물꼬 축구도 하고
할 건 다했답디다.

샘들 날마다의 하루재기도 여전했겠지요,
돌아보며 미안해도 하고 힘도 내고 서로 배우고...
어느 밤은 '달고나' 예행연습으로 뜨거웠답니다.
지영샘은 이곳에서 두레일꾼으로 오래 일했던 경험 위에
지금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 시간을 잘 풀어주셨다지요.
새내기 품앗이샘들이 아이들 칼질이 아슬아슬해
다치면 어쩌나 졸였다는 말에
(역시 늘 나오는 얘기기도 한),
애들도 다쳐봐야 안다(?),
그런 경험도 중요한데 못하게 하다보니
몸 쓰는 것 도구 다루는 것 더욱 서툴러지는 것 아니냐 했다데요.
아주 거친 한 아이가 계속 입에 오르내리자
그 아이도 변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지 않느냐는 다짐도
어른들이 밤새 했답디다.
두 아들의 아버지 윤형샘은
일하고 난 뒤 집에 가서 피곤한 스트레스로 혼도 많이 내키고
방법을 몰라 서툴러서도 엄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이제는 아이들과 이전과는 다르게 너그러이 만나야겠다고,
많이 뒹굴어야 겠다셨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아이들이 마지막날 써놓는 갈무리글을 읽었습니다.
예외 없이 그 긴 날이 하루만 같았다는 아이들입니다.
'옥샘이 있을 때 너무 좋았는데
옥샘이 외국으로 잠깐 가시니까 앙꼬 없는 찐빵 같았다'
정훈이의 글처럼 형준이 영우같은 의리파들도 있습니다.
뭐 기분 좋지요.
첫날에 한 연극놀이와 대동놀이를 끝날이 가도록 기억해주는 아이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첫날 학교를 나서기 전 같이 부른 아카펠라 군밤타령은
보름 내내 입에 달고들 다녔더라지요.
유리 비스무레 한 것으로 깔아놓은 보일러에 대해
깨지면 이 겨울 얼음판에 잘 판이라는 첫날 엄포에
끝날까지 살살거리며 다녔다는(물론 끊임없이 잊기도),
장판 밑에 상설학교 아이들이 배양하는 바퀴벌레가 나올까(정말?)
걱정하며 절대 더 이상은 장판을 들추지 않았다는 이들입니다.
지나샘이 그랬다나요,
여기 오는 어른들의 마음처럼 애들도 마음가짐이 있나보다고,
그래서 말도 안되는 허풍도 믿거나 믿으려드는 것 같다고.
예 오면 모두가 그리되나 봅니다.
정말 이상한 매력이 있는 대해리지요.

이 불편한 곳에서도 즐거울 수 있었던 빛나는 아이들,
그리고 그 불편을 줄여주었을 어른들,
젊은 할아버지와 상범샘 기락샘 희정샘,
오랜 물꼬의 두레일꾼이었고 지금은 더 큰 일을 도모하고 계신 지영샘,
이들이 없었음 이번 계자 못했다 싶은
(아, 어느 샘인들 그렇지 않았을까마난)
물꼬의 큰 품앗이 승현샘과 선진샘,
이제 휴가를 다 써서 더는 짬을 못내지만
주말이라도 바친다 내려오신 나윤샘,
부부가 아이 둘을 떼놓고 와서 손을 보탠 윤형샘과 숙영샘,
이제는 새끼 쳐서 손을 보태는 선비 노근샘,
너무 힘이 들어 그만 돌아가고픈 맘도 금새 접고 움직여준 김지영샘,
감동의 피아노연주회를 마련해준 한나샘,
예정 없이 와서, 누구보다 큰 힘이었던 지나샘,
밖에서 열심히 나무랑 씨름한
물꼬의 밥알모임 식구 경훈샘 예비밥알 동인샘,
아, 그리고 우리의 자랑스런 새끼일꾼 수민이형,
정말 정말 애쓰셨습니다!

* 샘들이 돌아가며 밤새 불을 어찌나 지펴댔던지
떨어뜨린 달걀이 후라이가 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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