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6.쇠날. 저녁 비

조회 수 647 추천 수 0 2015.02.13 08:43:38


비 흩뿌리는 남도.

바다가 가까운 남도는 그찮아도 바람이 많아 몹시 쌀쌀하다.

자유학기제 코디네이터로 프로그램을 하나 짜게 되었다.

새 학년도에는 한국의 자유학기제 일을 좀 거들고자 한다.

현재 물꼬가 하는 역할,

과거 제도학교에 반한 선언적 학교였다면 지금은 제도학교를 지원하고 보완하는,

그것의 한 가지 쯤이겠다.

기획서만 내밀게 될지, 기획단계에도 참여할 지, 혹은 전 과정에 관여할 지,

무엇보다 먼 거리 때문에 주저하며

일단 현장을 보러왔다.

 

전지구의 중심화 단일화는 교육을 통해 더욱 가속화된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교육에 있어서 시도하는 지역화 다양화는 결국 탈중심화를 벗어나게 하는

일종의 저항이겠다.

물꼬에서 그간 해온 교육적 작업과 맥락 속에서 자유학기제를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거개 시골학교에서 가장 많이 하는 자유학기제의 학생선택활동들이

미용, 바리스타, 요리실습으로 모이는 것도 중심화의 대표 얼굴 아닌지.

꿈과 끼를 찾는다는 명분으로 진로활동만 보더라도

생산직에 대한 고민은 없다, 전혀 없다.

거의 모든 프로그램이 소비에 집중하는.

그러면 누가 농사짓고 누가 물건을 만드는가.

생산하는 이로서의 직업도 안내하고

더하여 시민활동가라든가 그런 방향의 직업들도 있음을 소개할 수 있기를.

그리고, 지역환경자원(당연히 자연환경, 그리고 지역 사람들 포함)을 잘 살려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그리고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자긍심까지 끌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는.


여담 하나.

아이들의 컴퓨터게임중독이 심각한 문제에 이르자 한 사람이 말했다.

“아이들이 안 하게 할 확실한 방법이 있어!”

무얼까?

“학교에서 교과목으로 가르치면 돼!”

“맞아 맞아, 학교에서 하기 싫은데 학교 마치고서까지 할 리가 없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들은 그렇게 ‘재미없는’ 것으로 종종 희화화 되고는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학교가 아이들에게 행복을 가르친다고 한다.

자유학기제를 통해 꿈과 끼를 찾는단다.

“또 뭘 한다고 그래?”

일선학교 분위기 일부는 교육부에서 하라니까 하나 더 늘어난 잡무로 보거나,

한편 정권이 바뀌면 또 없어질 수도 있을 것을 “일단은 해보지, 뭐”,

특히 시골 소읍의 작은 학교에서는 “그렇잖아도 한 교사에게 할당된 업무가 많은데...”,

그렇게 형식적인 절차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이미 너도 알고 나도 안다.

아이들 편에서 보자면, 시험 안 본다는데 뭔들 안 좋을까.

거기다 저 좋아하는 거 하라고 한다는데 반대할 게 무얼까.

그런데 그런 감각적인 반응 말고,

그저 스쳐가는 한 학기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정말 의미 있고 축적되는 시간이 되도록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여름 한 때를 아일랜드에서 보냈다.

자유학기제의 모델이 된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 관련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이 마지막에 입에 올리는 한결같은 말은,

전환학년제의 성공은 교사의 철학이 관건이라 했다.

그런데, 교사가 누구인가, 낡은 표현이지만 아이들이 있기에 존재하는 이.

자유학기제를 아이들 성장과 아울러 교사 성찰·열정의 기회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교육의 질은 교사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고전적 명제를 다시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정말 생의 소중한 한 철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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