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24.물날. 흐림

조회 수 631 추천 수 0 2015.01.04 22:27:10


꼭 72시간 만에 떠났던 버스가 돌아왔습니다.

엊그제부터 사라졌던 usb 말입니다.

밤에 작업하고 아침이면 가방에 넣는 것을

하룻밤 손 놓으며 그만 그의 행방도 놓아버려,

몇 달 작업하며 별 생각 없이 백업도 해놓지 않았던 무신경이라니.

그것이 떠나 있는 동안 의기소침해져서 아무것도 손에 잡지 못하고 있었고,

이제 좀 수습해서 일을 해야겠다 하는데, 불현듯 스친 생각,

너무 멀리 있어서 찾기 쉽지 않겠구나 싶은 물건이

갑자기 돌아올 수 있을 거라는 확신으로 변하더니

거짓말처럼, 정말, 눈앞에 나타났던 거지요. 기적!


그런데 물건이란 게 말입니다.

잃어버리고 나면 그것이 나로부터의 거리가 대개 가늠이 됩니다.

그게 물건과 내가 갖는 연줄이면 연줄, 기운이면 기운, 시간이면 시간.

잃어버린 물건에 귀를 기울여보면

그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지요.

그건 다르게 말하면 물건이 내 손에 있었던 흔적을 되짚는 것이기도 할 텐데

그러면 찾을 수 있는 물건인지 영영 떠날 물건인지를 알 수도 있는, 대개는,

늘 그렇기야 어렵더라도.

뭐 꼭 그렇다기보다 뭐 그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약간은 신비주의적인 생각.


해가 갑니다.

2014년의 대한민국을 건너가느라 누군들 상처를 안지 않았겠는지.

대학을 다니며, 특히 80년대를 관통했던 이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들을 읽는 가운데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의지를 키우고는 하였습니다.

그때보다 자본주의는 더 깊어졌으면 깊어졌지 못하지 않을 것.

자본주의 70년이 흐르는 동안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부서지고 서해페리호가 침몰하고

용산과 세월호 참사를 만났습니다.

너무나 많은 열거들 뒤 끊임없이 분노하고 싸워야 한다는 외침을 하도 들어서,

수십 년간 이어진 반민중적인 정권과 그 밑에 빌붙은 사람들이 행한

역사관과 가치관의 절명을 되살리자는 말들을 하도 들어서,

지금 변혁하지 않으면 우리의 후대는 더 절망적인 시대를 살리라고도 하도 들어서 귀는 쟁쟁하나

정녕 우리는 어쩌고 있는지, 연대는 요원한지.

(‘요원(燎原)이란 낱말을 되새김질 해보는군요.

요원, 불이 난 벌판...)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소외’ 속에 있습니다.

소외, 류동민 교수의 말마따나 어느 낯선 파티장에서

마땅한 대화 상대를 찾지 못해 어색한 포즈로 기웃거릴 때의 그 낯설어지는 느낌....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므로

그 ‘소외는 실존적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유발되는 감정’.

그러므로 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도

사회적 관계를 통해, 그 변혁을 통해 가능할 테지요.

유산층은 소외되어도 소외를 즐길 수 있는 자본이 있는 반면

무산대중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심지어 고통스럽기까지 한 소외를 갖고 있는.

그렇다면 그 소외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사적 소유의 욕망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평등한 공동체가 이루어질 때’ 가능하겠습니다.

맑스와 엥겔스가 일찍이 그리 말했지요.

연대!

다시 맑스를 읽을 수밖에 없는 까닭이겠습니다.


물날 저녁마다 해오던 10학년 상담을 마무리 짓는 날.

결국 물꼬에 한 달 동안의 위탁교육을 아이도 보호자도 원하였으나

물꼬의 1월은 계자며로 달래 쓸 시간이 없으므로 2월에 한두 주는 내보자 대답하였습니다.

시대를 건너가는 일이 아이들이라고 고달프지 않을지요.

어른들은 나름 통찰이라도 있지만

영문 모르고 따귀를 맞는 우리 아이들은 어쩐단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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